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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파크] 너무나 한국적인, 그래서 이국적인, <검은 사제들>

강동희 기자 승인 2018.07.14 09:09 의견 0

김 신부(김윤석 분)가 사제로 있는 성당의 ‘영신’이란 소녀에게 엄청난 힘의 악령이 쓰입니다. 엑소시즘 경험이 있는 김 신부는 악령을 쫓는 '구마의식'을 행하기 위한 보조 신부를 성당에 요청하고, 여러모로 자격 미달이지만 마땅히 대체할 이도 없는 탓에 이제 겨우 7학년에 나이도 스물아홉에 불과한 최 부제가 그의 보조를 맡게 됩니다.

맞습니다. 엑소시즘 이야기입니다. 신부가 악령과 싸우는 이야기요. 우리는 엑소시즘이라는 키워드만 가지고도 걸작 <엑소시스트>부터 최근의 <컨저링>까지 수많은 영화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엑소시즘 소재의 호러 자체가 (오컬트물과는 또 다른) 공포 영화의 하위 장르로 자리매김한 겁니다. 그리고 이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장르의 특성상 어느 정도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물리쳐야만 하는 상대와 싸우는 선한 이를 주인공으로 세운 영화에서 나올 수 있는 결말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검은 사제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두 신부가 엄청난 악의 힘에 맞서 매우 힘겹게 할 일을 해나가는 내용입니다.

한국적인, 매우 한국적인, 그래서 이국적인

그런데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선 배경이 한국이라는 점입니다. 사소한 차이처럼 들리지만 다른 엑소시즘 호러와의 차별점, 즉 영화 <검은 사제들>만이 가진 고유의 맛과 질감 대부분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주 배경은 명동이고, 한국 아저씨의 표준처럼 보이는 (그리고 그런 느낌을 누구보다 잘 연기하는) 배우 김윤석이 의식을 치르는 신부로 등장합니다. 학장 신부로 출연한 김의성이나 몬시뇰 역의 손종학 등 다른 배우도 사제복만 입었을 뿐 전형적인 한국 아저씨의 얼굴을 하고 있고, 또 그런 느낌으로 말하고 행동하죠.

재미있는 건 영화가 이 어울릴 턱이 없는 조합을 자연스럽게 뭉쳐내는 대신 그 '충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길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주인공인 김 신부가 굿을 하러 온 무당더러 "실력 있다"고 하는 장면까지 나오니 말 다했죠. 한국인 관객인 제가 한국 영화를 보는데 이국적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드문 경험이었습니다.

엑소시즘 이야기 아래 흐르는 '최 부제의 성장기'

의식을 주도하는 신부와 보조 사제인 최 부제의 합이 잘 맞지 않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보통 이런 영화에서 구마 의식을 둘 이상이 치를 경우 그 합과 균형은 이야기의 긴장을 빚는 기본입니다. 영화 <컨저링>에서는 구마 의식을 시행하는 두 인물이 아예 부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 강동원이 연기하는 최 부제는 엑소시즘 의식의 주도자인 중년의 김 신부에 비하면 '새파란 놈'에 불과하고 구마 의식은 구경해본 경험조차 없습니다. 둘은 첫 대면에서 싸울만큼 성격도 안 맞아요. 심지어 엑소시즘 도중 김 신부가 최 부제 때문에 기절하는 일까지 발생하지요.

그런데 이 어긋남에서 또 다른 드라마가 생깁니다. 각본을 쓰면서 굳이 두 인물을 부자뻘로 설정한 데엔 작가의 의도가 있겠지요. 우선 어린 사제인 최 부제는 동생이 자기 때문에 개에 물려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사제의 길을 택한 인물입니다. 다른 신부들보다 사제의 길을 택한지 얼마 안 된 젊은이이기도 하고요. 외모도 앳됩니다. 벌써 인물의 기본 설정부터 이 인물이 영화 속 사건을 지나면서 무엇을 극복하고, 또 어떻게 성장할지가 그려지지 않습니까

좀 더 들어가보죠. 세 구간으로 나누어 읽어봅시다. 먼저 김윤석이 연기한 김 신부와 그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보세요. 김 신부는 막말 화법으로 최부제가 가진 동생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너무 쉽게 건드립니다. 이에 선배 사제들에게 늘 깍듯했던 최 부제는 발끈하지요. 김 신부를 최 부제의 상징적 아버지로 생각한다면 이 장면은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도전이며 이는 아들의 성장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을 볼까요. 구마 의식 도중 최 부제는 잠시 이성을 잃고 김 신부의 목을 조릅니다. 이후 최 부제는 악령과 단독으로 대면하죠. 이는 아버지를 넘어(김 신부를 목 졸라 기절시킴) 세상에 자기 두 발로 처음 맞서는 순간 (악령과의 독대)을 은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는 악령의 공격에 겁에 질려 신발도 챙겨 신지 못하고 도망 나왔다가 어릴 적 개에게 물어뜯기는 동생을 보고도 무서워서 한쪽 신발을 버린 채 도망쳐버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도망쳤던 최 부제는 다시 김 신부에게 돌아와 의식을 재시작할 준비가 됐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김 신부에게 "신발을 놓고 와서" 돌아왔다는 의미심장한 농담을 던지죠. 이는 어렸을 적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즉 의식을 성공시키는 것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많은 것들을 바로잡을 기회임을 깨달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영화는 '최 부제의 성장기'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 물에서 나오는 최 부제의 모습을 보세요. 물에 빠졌다가 다시 나오는 것은 가톨릭을 비롯한 여러 종교에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죠. 그는 젖은 사제복 차림으로 한강 다리를 걷습니다. 영화 속 사건으로 최 부제의 삶은 앞으로 영원토록 이전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스스로 아는 최 부제의 마지막 웃음소리는 정말이지 심금을 울리더군요.

패기있는 신예의 독창적인 각본...소재의 다양성 기대돼

이렇게 한국적임에도 (또는 한국적이어서) 이국적인 독특한 분위기가 성공적으로 연출되고, 또 호러 영화이면서 한 인물의 내적 성장 과정까지 심도 있게 그려낼 수 있었던 공은 탄탄한 각본에 있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각본이에요.

적잖은 엑소시즘 소재 영화가 의식을 치르는 클라이맥스까지 가는 길을 그냥 기능적인 것으로 취급하곤 합니다. 위기와 절정이 있으려면 발단과 전개가 있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밋밋한 이야기들을 습관처럼 집어넣는 것이죠. 하지만 <검은 사제들>은 본격적인 호러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러닝타임도 낭비하지 않아요. 귀신들림 현상에 회의적인 신부들과 김 신부의 갈등, 최 부제를 조카처럼 챙기는 학장 신부의 따뜻함, 철딱서니 없는 최 부제의 모습을 늘어놓는 코미디까지 알찹니다. 첫 장면부터 엑소시즘 장면을 지나 최 부제가 새로 태어나는 끝 장면까지 즐거움이 끊이지 않는 영화입니다.

덧붙임.
“사실 개봉 전엔 작품 자체보다 사제복 차림의 배우 강동원으로 더 이목을 끌었던 영화입니다. JTBC <뉴스룸>에 홍보차 출연해 수줍은 얼굴로 날씨를 이야기하는 강동원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이 영화의 예고편보다 조회수가 높았다는 말도 들립니다. 하지만 개봉 후 '제대로 된 엑소시즘물'이라는 소문이 저 같은 마니아들 사이에 퍼지면서 영화는 어느덧 3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이렇게 드문 소재의 작품이 높은 호응을 얻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죠. 연출자인 장재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점도 눈길을 끕니다. 앞으로도 데뷔작만큼 새로운 시도를 많이 보여주시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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