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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100분간 쓰여지는 러브레터 ? 연극 "러브 스토리"

박앵무 기자 승인 2018.11.13 10:45 의견 0

▲ 연극 '러브 스토리' 공연사진 ⓒ 두산아트센터

연극 연출가 이경성의 신작 <러브스토리>다. ‘이경성’이라는 이름 세 글자에 서둘러 예매창을 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가 언제부터 연극계에 날아올랐는지는 모른다. 다만 필자가 처음 본 이경성의 작품은 2015년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비포 에프터>였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검열이 당연시되던 시기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이경성의 언론 인터뷰를 기억한다. “나 혼자만 예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럽다”던 그였기에 이전보다 자유로운 세상에 어떤 무대를 올려놓을지 기대가 컸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이경성은 연극<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면서 도라산 통일 전망대를 찾으며 이번 공연의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작품을 시작해야겠다 마음먹었을 때에는 국가 경제적 관점에서 개성공단이 재개되기를 바라던 정도였다고 한다

무대 위 칠판에는 ‘상상하기’라는 네 글자가 적혀진다. 말 그대로 극은 배우들이 상상하는 과정을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 세 배우는 관객들과 동일한 입장에서 시작한다. 무대 위에 띄워진 스크린에 구글 검색창이 뜨고, 검색어에 ‘북한’이라는 단어를 입력한다. 이윽고 화면의 스크롤을 내리고 구글어스를 이용해 북한 땅으로 들어간다.

우리도 북을 들여다 보려면 그들처럼 인터넷 검색창을 이용하고 이미 찍혀져 있는 사진을 보아야 할 것이다. 구글 어스로 검문소를 통과하고 또 통과하면서 실제로는 1시간 즈음이 걸린다는 7km의 거리를 손그림을 그리며 지나간다. 이어 구글 어스 속 개성공단을 확대하고 또 확대한다.

연출가 이경성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표현하라면 ‘살금살금’ 이라는 말이 제일 적당할 것 같다. 공연의 시작이 출발점이고, 끝이 도착점이라면 많은 질문들을 놓치지 않고 풀어내고서 간다. 이런 세밀한 감성이 이경성이라는 세 글자만으로도 관객을 극장으로 달려오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이경성은 공연 내내 관객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알지 못하는 만큼 공연을 만든 연출자와 스탭, 배우들도 북한에 대해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차이점이라면 공연을 만들기 위해 이들이 북한에 대해 우리보다 더 많은 검색을 하고 인터뷰를 했을 뿐이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 그 누구도 북한으로 들어가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알려져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최송아, 리예매, 김뿔’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 냈다. 배우 나경민은 개성공단 통근버스 운전수 ‘최송아’를 배우 우범진이 상상한 개성공단 노동자인 ‘리예매’를 그리고 배우 성수연은 상상한 개성공단 내 편의점 직원인 ‘김뿔’을…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한과 북한. 73년 넘게 갈라져 있는 동안 서로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뉴스에서 북한 사람들이 김정일과 김정은의 사진을 걸어 두고 충성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저럴까’ 하고 생각했었다. 사회적 이념의 차이에 대해 누구나 한 번쯤 던져 봤을 평범한 질문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에 연출가 이경성과 배우들이 접근하는 방법이 매우 독특하다.

극 속에서는 배경음악으로 우리가 잘 아는 아리랑이 깔리고 ‘민족애 테스트’를 시작한다. (이 ‘민족애 테스트’는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고, 이번 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뿔’역 성수연 배우가 극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한일전을 하면 챙겨보게 된다.’,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이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민을 가고 싶다.’ 등 우리가 한 번쯤 인터넷에서 보았을 법한 질문들이다. 배우들은 ‘네’ 혹은 ‘아니오’ 하고 소리 내어 대답한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를 수 있다.’ 라는 질문에는 나조차도 부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는 내면의 나와 관객들을 마주한다. 배우들은 북에서 매일 20시 55분마다 한다는 ‘율동체조’도 영상에 맞춰 따라한다. 웃음기 하나 없는 모습으로 열심히 체조만 한다.

낯선 율동이 우습기만 했다. 관객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 관객들과 함께 웃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장면에서 웃어도 되는 걸까 저 너머의 누군가에게는 습관이고 문화인데 내가 웃는 것이 실례는 아닐까 매일 매시간에 반복하는 체조가 그들의 몸에 습관처럼 물들고 우리의 애국심과 그들의 애국심 역시 별 다를 바 없는 습관이라면

한 개그프로에서 북한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가 ‘북’의 문화에 대해 편견으로만 점철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닐지 웃어버리는 우리가 당연한 실례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던 북의 사람들을 하급시민으로 보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과연 인간으로서 북의 사람을 아랫사람처럼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세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2016년 2월을 시점으로 급히 마무리된다. 뒷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어도 모두에게 열린 결말로 남겨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와 닮았다. 상상의 끝에서 이보다 더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문득 이경성의 작품 <비포 애프터> 에서 ‘국가’로 지명된 배우가 침몰된 세월호를 보며 “마음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고선 “국가는 마음이 없다”고 대답했던 장면이 떠올렸다.

분명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러브스토리를 완성했다. 영영 갈 수 없을지도 모른 곳을 향해, 그들은 분명히 형태조차 알 수 없는 이를 향한 러브레터를 적었으며 100분간의 러브스토리를 지켜보게 한다.

그렇지만 매끄럽지 않던 공연의 흐름에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공연을 완성해가는 방식의 연출로 인한 부작용인지, 그간 남북간의 매끄럽지 못한 대화와 제스쳐를 극의 또다른 표현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공연의 회가 거듭되고 그들이 상상해낸 북한의 친구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도 쌓여 갈 때면 지금보다 더 나은 러브 스토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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