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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림화실' 민화작가 박태숙(2) “풍속화와 동양화까지, 새로운 화풍을 향한 도전”

김혜령 기자 승인 2018.12.28 10:49 | 최종 수정 2019.10.25 11:21 의견 0

윤인수 선생님 밑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을 당시엔 선생님을 따라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시간이 지나면서 중요한 건 배움이 아니라 익히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그림에 대한 지식이 10개라면, 그 중 3개도 자기 것으로 익히기 힘들기 때문이다.

박태숙 작가 자신이 그림 연습을 하는데 지루함을 느끼는 체질이기 때문에 같은 작품을 반복해 그리는 대신 비슷한 분위기의 다양한 작품을 그렸다. 이 자체가 연습이지만, 새로운 작품을 대하면서 자신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의 영역도 조금씩 넓힐 수 있었다.

 

▲박태숙 작가와 윤인수 선생님. 박태숙 작가는 윤인수 선생님 아래서 새로운 화풍을 접하며 민화에 대한 새로운 눈을 떴다. ⓒ 편집부


지금은 민화를 가르치는 입장이 된 박 작가다. 수업에 임할 때마다 “지도를 받으면서도 끊임없는 연습으로 나만의 필력으로 익히고, 이를 그림에 응용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하고 있다.

 

종이 위에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는 예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기에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특히나 병풍과 같이 8폭, 10폭의 그림은 1년 이상의 작업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작가 자신이 아무 것도 없는 종이 위에 선 하나, 색 하나가 더해지며 완성되는 인고의 과정에서 희열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박태숙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관람객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 또 그만큼 공을 들이다 보니 그림에 애착이 많이 간다.

 

김홍도 풍속화의 투박한 멋에 빠지다

 

윤인수 선생님 밑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닦아가는 가운데, 풍속화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호작도(虎鵲圖: 호랑이와 까치 그림), 화조도(花鳥圖: 꽃과 새 그림) 등의 상징적 그림을 그리다가 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풍속화는 민화와는 다른 범주의 개념이다. 민화는 ‘서민화’로, 그림을 그린 주체가 평민임을 말하는 용어다. ‘풍속화’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것으로, 그림을 그리고 향유한 주체가 아닌 그림의 내용으로 구분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또한 서민이 그린 ‘풍속화’와 궁중 화원이 그린 것으로 나뉘기도 한다.

▲ 박태숙 작가가 그린 김홍도의 행려풍속8곡병. 김홍도 풍속화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현재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8폭의 그림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정취를 담아냈으며 김홍도 그림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 박태숙 작가


박 작가가 풍속화에 도전하기로 한 것은 김홍도의 8폭 병풍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또한 창작 풍속화를 그리기는 아직 미숙하지만, 모사는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김홍도의 그림을 모사할수록 거칠면서도 힘 있는 붓의 필력에 젖어들었고 풍속화에 대한 애착이 강렬해졌다.

 

김홍도는 대충 그린 듯 무심하고 거칠지만, 여러 그림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을 때 조화되는 멋이 있다. 화풍도 유행을 타는 데다 당시 화풍은 중국의 경향을 많이 따라가고 있지만, 김홍도는 자신의 화풍을 밀어붙인 예술가였다. 특히 현실감 있게 표현해낸 배경은 그림에 소소함을 찾는 재미까지 더해주었다. 또 동 시대의 다른 풍속화가 신윤복과 달리 인물을 투박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소박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처음 풍속화를 그렸을 때는 ‘과연 그림이 잘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시작했다. 색감과 선의 표현이 지금까지 그려왔던 방식과는 달랐기 때문에 고심하며 검은 먹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 위에 옅은 색을 입히며 완성된 작품을 조우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으로 다가왔다고.

 

한국전통민화협회 공모전 대상, 동양화를 향한 새로운 도전

 

그렇게 처음 그린 풍속화는 <2017년 한국전통민화협회 전국공모전>에서 대상을 타게 된다.


그러나 수상의 기쁨보다 슬픔이 더 컸다.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해야 했고 규정상 제출된 작품은 돌려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뷰 도중 “상을 받음으로써 인정받았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받은 상과 상금을 돌려주더라도 내 작품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으면 했다”고 소회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 내 자식이 곁을 떠나는 듯한 아픔을 맛봤지만, 오히려 더욱 폭넓은 작품활동의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녀는 민화에서 동양화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풍속화를 공부하면서 깨달은 사실이지만 옛 도록이나 책에는 동양화, 민화의 구분이 따로 없다.

 

실제로 민화작가로 활동하시는 분들 중에는 동양화와 민화의 경계를 허문 작품 활동을 하시는 분들 있다. 민화는 선으로 표현하는 세밀함의 미학이 존재하지만, 동양화는 두꺼운 면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림을 아우르는 매력이 있다.

 

▲ 왼쪽부터 김정희의 난맹첩과 신사임당의 초충도. 왼쪽은 동양화의 단골 소재로 꼽히는 사군자 중 난의 그림이다. 난에 핀 꽃잎이 주로 선이라기보ㄷㅏ는 하나의 면으로 표현되어 있다. 초충도는 아기자기 한 색감과 섬세한 선의 표현이 돋보인다. 특히 수박의 무늬나 쥐의 털 표현이 도드라진다. ⓒ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


박태숙 작가는 선이 없는 동양화를 선으로 표현하는 민화와 접목하면 더 좋은 작품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양화를 배워 풍경화를 멋들어지게 그려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동양화 배우기를 시작했다.

 

풍속화를 그릴 때에 김홍도의 작품이 자극제가 된 것처럼 새로운 계기를 만든 경험도 있었다.

 

2018년 초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장에서 마주한 2점의 창덕궁 희정당 벽화다.


희정당 벽화는 창덕궁 희정당 양쪽 벽에 걸려있던 금강산 그림으로, 비현실적일 정도의 스케일을 자랑한다. 두 그림 모두 너비가 833cm로 거대하다.

 

두 작품이 주는 아우라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30분 이상 작품 앞에 머물며 눈 앞에서 펼쳐진 진한 먹선이 내뿜는 향기, 엷게 입혀진 색들의 깊이에 탄복하며 직접 금강산 속에 들어간 기분을 느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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