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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3)] 알렉산드라와 니콜라이 2세의 만남과 결혼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1.19 17:34 의견 0

라스푸틴의 역할과 차르 황실에서 미친 영향력을 이해하기 위해 라스푸틴을 총애했다는 니콜라이 2세의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1908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다.

니콜라이 2세의 부인이 된 12세의 알렉산드라(표도로브나)와 니콜라이는 알렉산드라의 언니 엘리자베스와 니콜라이의 삼촌인 러시아 대공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Sergej Alexandrowitsch)와의 결혼식이 있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처음 만났다. 언니와 세르게이의 결혼은 정략결혼이 아닌 사랑의 결혼이었다.

니콜라이는 만나자마자 알렉산드라를 좋아했다. 어머니를 일찍 잃고, 종교에 깊이 빠져 있었던 알렉산드라는 수줍어하고 조용한 내성적 성품을 갖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이렇게 잘난 척하지 않으며 나서지 않는 가정적 성품의 여인을 선호했다. 니콜라이의 모친인 마리야 표도로브나(Fjodorowna)가 어릴 때부터 그러한 가정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그녀의 사교적이지 못한 성품은 나중에 로마노프 왕가로 시집간 후에는 큰 문제가 되었지만 니콜라이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니콜라이도 역시 영국인 가정교사로부터 러시아에서는 특별한 영국식 신사 교육을 받았다. 그는 조용하고 침착하며 책임감이 강한 신사로 자라났다. 물론 유약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성품이 제왕이 갖춰야 하는 성품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니콜라이의 부친 알레산드르 3세와 모친인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아들이 알렉산드라와 결혼하는 것을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라의 모친이 덴마크의 공주 태생이다. 독일 슈레스비히-홀슈타인이 덴마크에 대항해 치렀던 3년간의 전쟁(1848 1851)으로 인한 반 독일 분위기에서 성장했던, 알렉산드라의 시어머니가 될 마리야는 독일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헤센 대공의 딸은 왕국의 공주보다는 신분이 낮았기 때문에 신분상의 이유에서도 그 결혼을 탐탁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눈먼 아들은 알렉산드라에 함빡 빠져있어서 그녀와의 결혼을 끝까지 고집했다. 종교 문제도 걸림돌이었다. 그녀는 헤센 공국에서 루터 신교를 믿고 있었고 또 아주 신앙심이 깊었다. 그래서 러시아로 시집가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니콜라이의 그녀에 대한 사랑은 종교의 차이도 넘어설 수 있게 했다. 니콜라이는 그녀에게 러시아 정교로 개종을 재촉하지 않았고, 언니가 러시아 대공과 결혼했지만, 두 종교를 함께 가지며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었기에 종교 문제는 별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는 결국 사랑한다는 이유로 결혼에 골인하였다.

성공한 제왕은 사랑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관계를 고려해 결혼해야 한다는 사례가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의 경우다. 빅토리아 여왕은 알렉산드라의 외할머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딸들을 모두 정략결혼을 시켰다.

음모와 술수가 기다리는, 부패한 라마노프 왕가에 시집온 독일 출신의 순진무구한 황후가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어떤 운명에 처할지는 결혼 당시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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