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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_이야기(11)] 그렇게 시카고에 왔다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2.16 10:00 의견 0

뭐할까 하다가 고시는 능력도 안 되고 관심도 없고 하니 전공을 살려 기자나 한번 해보자 덤벼들었다. 당시 대기업 평균 초봉이 3천 좀 안 됐는데 조중동 매경 등은 모두 그 이상 아님 훨씬 위였고 심지어 한겨레 경향 등 형편이 좋지 않은 언론사도 롯데보단 많이 줬다. 무슨 사명감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서울대 나왔는데 평범한 월급쟁이는 좀 그렇고 가오나 살려볼까 해서 해본 거다. 졸업 후 1년 동안 면접들도 가고 그랬는데 결과적으론 다 낙방했다.

입에 풀칠이나 하자고 대기업 계열 상사를 들어갔다. 좋은 분들이 많았지만 다니기가 넘 힘들었다. 원래 출근 시간은 8시 그러나 신입은 아침 7시반까지 나와야 했다. 퇴근은 저녁 8시 정도 그것도 기러기 부장님이 “자 이제 저녁이나 먹으러 가지~” 하셔야 회사 문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집에 바로 가지 않고 술자리는 업무의 연장이라는 회사방침()에 따라 의무적으로 부장님 이하 팀원 전체가 저녁 + 반주를 같이 했다. 1주에 이틀은 그렇게 보내고 하루는 바이어 또는 셀러 룸빵 접대, 나머지 이틀은 과장님 이하 개별 유대 관계 형성을 위한 소맥 전투를 하다보니 죽을 지경이었다. 요새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상사 특성상 별 차이는 없겠지만 그래도 정도가 많이 약해졌을 거라 생각한다.

1년에 두번 해주는 직장인 건강검진을 저동 백병원에서 했다. 의사가 따로 조용히 부르더니 이 회사 계속 다닐 거냐고 묻더라. 지난 자료를 보면 당신 선배들 한 5년 있다 죄 당뇨 고혈압 생기는데 동생 같아 해주는 말이니 딴 데 알아보란다. 의노 주제에 어따 대고 감히 나는 상사맨으로서 뼈를 묻으리라 하기에는 내 의지가 너무 약했다. 그래서 1년만에 때려치고 다시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다. 어떤 회사 최종면접에 다시 갔고 또 떨어졌다. 이젠 오지 말라는 주의()와 함께… 멘붕이 왔다.

나는 이제 뭐하지, 그냥 죽어야 하나 고민으로 지새우던 나날이었다. 갑자기 큰아버지한테 연락이 왔다. 병신처럼 빌빌대지 말고 LA 막내삼촌 집에나 몇달 갔다오라며 비행기표를 끊어주신댔다. 시카고에 가있는 마찬가지 빌빌이 전직 고시생 과 친구 생각이 났다. 잠깐 들르게 LA 경유해 시카고 가는 걸로 해달라니 비행기표가 그렇게 부킹이 됐다. 그렇게 나는 시카고에 오게 된 것이었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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