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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12)] 살인자들의 처벌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2.17 09:00 의견 0

그는 아직 완전히 얼어붙어 있지 않았던 네바강에 던져졌다. 익사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시체 해부 결과는 탄환이 위장에 박혀 다량의 출혈이 발생했던 것이 사인으로 밝혀졌다.

라스푸틴은 저격을 받기 전에 극심한 고문을 당했던 것으로 시체부검에서 나타났다. 부검 결과를 볼 때, 암살자 일당은 라스푸틴으로 부터 “독일 출신 알렉산드라 황후와 성관계 또는 황후와 간첩 모의를 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극심한 고문을 가했던 것이 틀림 없다.

암살은 곧 황실에 알려졌다. 알렉산드라 황후 측근을 제외하고 황실 일족들은 라스푸틴 살해 사건을 모두 애국적 거사로 칭송하며 살해자들을 벌하지 않아야 한다는 청원에 서명했다. 니콜라이 2세는 “살해할 권리를 부여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약한 황제는 살인자들을 기소하게 하지도 재판에 회부되게 하지도 않았다. 반면, 알렉산드라 황후는 살인자들의 처벌을 요구했다.

니콜라이 2세의 당숙(5촌)으로 선대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손자인 알렉산데르 미하일로비치(Alexander Michailowitsch)가 바로 차르를 찾아가서 그의 사위 유수포프를 포함해 모든 암살범들에 대해 살인죄를 묻지 말 것을 사면청원서와 함께 부탁했다. 만약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황제의 권좌도 온전히 보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로마노프 왕가 전체의 이름으로 협박하였다.

차르와 그의 당숙 알렉산데르는 ‘살해 주범인 펠리스 유수포프는 그의 시골 장원에 하방해 있고 차르의 조카 디미트리 대공은 페르시아 전선으로 보직 변경’하는 선에서 타협해서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외의 암살 공범들도 무사하게 되었다. 특히 직접 저격에 가담했던 블라디미르 푸리쉬케비치 두마 의원은 의회의 지도적 인물로 다시 활개칠 수 있었다.

차르의 사촌형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는, 황족들의 생각을 나타내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일기를 남겼다. “(살해) 행위는 성공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라(황후)와도 반드시 결론을 내어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살해 계획을 갖고 있다. 구체적 계획은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불가결한 계획이다.”

농민의 아들 라스푸틴이 황족들에 의해 살해되고 귀족 살해범들은 아무런 죄값도 받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 뉴스가 러시아 전역에 유포되었다. 니콜라이 2세 황제의 권위와 리더쉽은 당시 러시아 인구의 4분의 3이나 되었던 농민들의 울분과 함께 추락하였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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