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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_이야기(12)] 견인과 함께 시작된 시카고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2.17 10:00 의견 0

빌빌이 고시생 친구는 한참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에 있었다. 저 웬수 같은 기자놈을 빨리 처리해야 할 텐데, 생활 패턴이 밤낮으로 서로 반대라 마주칠 기회조차 별로 없어서 답답하게 시간만 보내던 차였다. 그러고 있을 때 내가 전화해서 LA 찍고 들를 테니 잘 씻고 아니 깨끗이 하고 아니아니 방청소 잘 해놓고 있으라고 통지를 해온 것이었다.

당시 친구와 기자가 살고 있던 한인 용자 아재의 지하실에는 방 2개와 화장실 하나가 있었다. 친구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내가 도착하면 바로 기자의 방을 쓰는 대신 기자는 마루 한쪽 구석에 공간을 만들어 거기서 자든지 말든지 한다는 것이다. 기회를 계속 엿보다 슬쩍 자기 방으로 잠입하던 기자를 포착하고 현장을 덮쳤다. 렌트비와 각종 유틸리티 등 그간 밀렸던 재정 분담 상태를 주지시키고 채무 상환을 하든지 아님 내가 도착하면 바로 방을 양보하라고 제안했다.

돈도 안 내는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었겠는가. 기자는 순순히 받아들이고 재테크를 위해 다시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했다. 카지노로 가기 전 기자가 친구에게 넌지시 알렸다. 자기는 어차피 미국 오래 있지 않을 거라고. “오잉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럼 다니고 있는 신문사에서도 사람을 뽑겠네” 물어보니 그렇단다. 친구는 전화로 징징대던 나를 떠올렸다. “님 내 인생 이걸로 아마 대충 끝난듯 미국 가서 똥이나 푸면 잘 살 수 있나” 징징징 징징징. 내가 원래 좀 한 징징 한다. 친구는 내게 연락해 미국 올 때 현지 신문사 사람을 뽑을 수 있으니 자기소개서랑 졸업증명서 같은 걸 준비해오라고 했다.

나는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잘됐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물어보니 해외 언론사 지점들 대우가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다른 뾰족한 수가 없지 않은가. 굿한 김에 떡 먹는다고 놀러간 김에 면접이나 보기로 했다. 잘 되면 몇 년 미국에서 개기는 거고 안 되면 한국 돌아와 목이나 매야지. 굳은 결심으로 인천공항을 떠났다.

시카고는 시작부터 별로 좋지 않았다. 오헤어공항에 내려 친구와 오랜만에 상봉했다. 거지 두 마리가 서로 반가워하며 궁상을 떨다가 터미널 밖으로 나가보니 친구 차가 사라져버렸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시카고는 알카포네의 전통이 아직도 살아있단 말인가. 두 놈이 넋이 나가 헬렐레 하고 있는데 공항경찰이 다가오더니 터미널 출구 앞에 정차 주차 금지 모르냐며 견인해갔으니 어디어디 전화해서 알아보란다.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양키들 잠깐 5분 세웠다고 그새 차를 끌어가 나중에 알았지만 미국 공항들, 특히 오헤어처럼 복잡한 공항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걸리적거리면 바로 치워버린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과 차가 다님에도 불구하고 공항의 교통 흐름은 그리 나쁘지 않고 원활하다. 훗날의 일이지만 칼 같은 법 집행은 모두가 지키는 질서의 근간이 되고 그것은 결국 나의 이익이 된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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