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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유나의거리] 길 위의 사람들(12) "정월 대보름에 내린 눈"

성유나 작가 승인 2019.02.20 00:03 의견 0

▲새벽부터 눈이 내렸다. ⓒ 성유나 작가

새벽부터 눈이 펑펑 내렸다. 마른장작 마냥 까칠한 겨울 끝이 아쉬웠는데 하늘이 사람들의 기대를 외면하려니 미안했나 보다.

입춘도 지나고 살랑거리는 봄이 저 만치서 종종거리더니만, 강아지만큼은 아니어도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내리는 눈의 축복을 맞이했다.

지난 겨울의 춥고 아팠던 모든 인간사를 씻어내려는 듯 숨죽이며 쏟아지던 눈이 그치자 거리는 부산히 바빠진다.

▲ 베란다 창 밖으로 보이는 눈내린 풍경 ⓒ 성유나 작가

사무실에서 정월대보름 척사대회를 열었다. 오랜만에 시끌벅쩍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한 해 수고했다고 여기저기서 보내온 음식들이 즐비하다. 동우회 회장 선거를 마친 뒤라 후보를 둘러 싼 알력과 긴장감으로 서먹할 듯한 데도 음식 앞에서 껄껄 화기애애한 모습들이 참 보기 좋다.

내면을 악착스레 파헤치고 상처 난 자존심을 분노로 폭발시키는 칼의 노래보다 부족한 모습 덮는 흥얼거리는 혼잣말 같은 노래를 닮은 삶!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어울렁 더울렁 뭉클하다.

척사대회를 마치고 나오니 눈이 다 녹아 마치 비 내린 거리처럼 촉촉하게 젖어 있다. 구색나물에 든든한 찰밥까지 먹었으니 봄이련가

함박눈을 맞은 정월대보름의 하루가 소박하게 지나고 있다. 한해의 건강과 평안함을 기대해 본다.

▲ 흥겨운 척사대회 풍경 ⓒ 성유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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