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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유나의거리] 길 위의 사람들(15) "응급실의 기억"

성유나 작가 승인 2019.03.08 12:38 의견 0

▲ 응급실의 기억 ⓒ 성유나 작가

잠결에 큰딸의 목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딸에게 달려갔다. 백짓장 같은 얼굴로 배를 움켜쥐고 있다.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부여잡고 119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빈 침대가 없어 보조 침대에 딸을 눕혔다. 무덤덤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간호사와 의사가 야속하기만 하다.

혈관이 나오지 않는다며 가느다란 팔에 바늘을 여러 번 꽂는 모습을 눈뜨고 보기 힘들다. 딸은 이번엔 머리가 아프다며 머리를 흔들며 눈물을 보인다. 정말 다시는 오지 말자고 했던 응급실인데 또 다시 오고 말았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19년 전 그 날도 3월이었다. 내 인생 최악의 날. 응급실에 실려 간 큰딸이 수술실에 들어갔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수술 시간을 견뎌내려니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딸을 잃을까봐 두려웠다.

▲응급실의 기억 ⓒ 성유나 작가

그때처럼 두려운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일까 걱정을 하는 와중에 기본 검사와 CT촬영이 끝났다. 이전에 수술한 후유증으로 장이 압착되고 탈장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전화벨이 울렸다. 작은 딸이었다.

"엄마 힘들지 엄마 생각하니까 맘이 아파 언니도 불쌍하구..."

울먹이는 작은 딸의 목소리에 울고 말았다.

그래도 괜찮다! 엄마라서 다 괜찮다!

▲응급실의 기억 ⓒ 성유나 작가

새벽부터 6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아침이 밝아 있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옆 침대에 먼저 와 계시던 노부부는 내내 한 마디 말이 없다. 할머니는 묵묵하게 앞만 응시하고 누워계신 할아버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무심한 부부라기 보다는 병간호에 지친 늙은 여인의 모습 같아서 안쓰럽다.

약을 처방받고 다음 진료예약을 하고 나서야 응급실을 나선다.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세상이 뿌옇게 흐리더라도 마음은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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