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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무의식에서 행동으로 표출된 ‘남성 속 여성성’

[무의식과 트렌드] ‘젠더 플루이드’ ②

김혜령 기자 승인 2019.03.15 20:28 | 최종 수정 2019.07.04 03:10 의견 0

여자들도 신고 걷기 힘든 뾰족한 하이힐, 현란하게 꾸며진 가면을 쓰고 유쾌한 웃음을 짓는 사진 속 남성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기괴하다”, “저런 사람이 어디 있나” 싶으실 겁니다.

 

▲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오방신 이희문 ⓒ KBS 홈페이지

 

사진 속 남성은 이희문. 중앙선데이와 가졌던 인터뷰 <하이힐 신고 마돈나 꿈꾼 ‘상남자’-“둔갑하면 다른 자아가 생겨요”>(https://mnews.joins.com/article/23393737#home)에는 의미심장한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가면을 쓰는 거예요. 다른 자아가 생기거든요”

 

그가 말하는 ‘다른 자아’는 사실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이 말하는 ‘원형’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바꿔 말해 오방신 이희문과 그의 퍼포먼스의 의미는 융의 분석심리학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융이 말한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융은 스위스의 정신과의사이자 프로이트와 쌍벽을 이루는 심리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개인이 가진 무의식에 집중을 했다면, 융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가진 집단무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연구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후일 융은 자신의 이론을 분석심리학이라 명명합니다.

 

융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여러 가지 단계로 나뉘어 있습니다. 융은 자아가 무의식의 다양한 부분을 발견하고 통합해간다고 봤는데요. 이러한 무의식의 자기 실현화 과정을 ‘개성화 과정’이라 하며, 분석심리학의 기초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 페르소나 가면을 쓴 외적 인격

 

 

페르소나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가면’으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원래 가지고 있던 인격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집단생활 과정에서 집단으로부터 기대되는 역할로 살아간다는 것이죠. 좀 더 정확하게는 집단이 요구하는 역할의 가면을 만들어내고 그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외적 인격-페르소나’는 개인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영화계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영화계에서 특정 감독과 계속 작업하는 특정 배우를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부릅니다. 감독에게 있어 그 배우는 자신의 영화세계, 자신이 지닌 세계관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영화 속에서 감독의 내면세계를 외적 인격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양한 페르소나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 그림자 페르소나에 억압된 자아

 

 

이 페르소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림자는 ‘억압된 자아’를 설명해 줍니다. 융은 그림자는 본능적이고 비합리적이며 투사적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투사적 경향이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개인의 욕구를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리는 일을 말합니다. 또한 인간은 이성의 작용에서 벗어나는 일을 그림자-억압된 자아 때문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융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그림자를 발견하고 이를 숨기고 억압하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림자를 없앨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또 그림자가 부정적인 존재인 것도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다만 그림자를 계속해서 억압하게 되면 비뚤어진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에 자아와 마주하며 화해해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 아니마 & 아니무스

 

 

이희문의 인터뷰 내용 중에는 의미심장한 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내게) 여성적인 면이 없지 않다. 어려서 몰래 엄마를 따라하던 기억이 있다”

 

융의 이론에 의하면 ‘아니마’는 남성에게 나타나는 여성성, ‘아니무스’는 여성에게 나타는 남성성을 뜻합니다.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나타내는 행동에서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남성은 어릴 적부터 남성다움을 강요받고 살아왔습니다. 특히 40대 중후반의 남성들은 웃어른으로부터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사내구실 못 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가정에서도 남성은 가장의 역할을 강요받으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여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여성들은 집단 속에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여자가 큰 소리 내면 집안이 망한다”, “조신하지 않고 칠칠치 못해 여자답지 않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을 것입니다.

¶ 남성성과 여성성 사회가 만든 허상

 

 

남자다운 것은 무엇이고, 여자다운 것은 어떤 것일까요 사실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는 상당히 모호합니다. 다만 집단이 설정한 기준, 사회적 통념이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페르소나를 정의하고 여기에 남성과 여성을 맞추게 합니다.

 

남성성이란 주로 개념적이며 정의를 내리려는 경향성을 보입니다. 언어가 단호하기 때문에 명사적으로 지시해서 말을 하지요. 강한 힘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위계질서를 강조합니다. 목적 지향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며 결과 중심적으로 일을 끌고나가죠. 여성성이란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정서적인 교류를 중요시 여기며 누군가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강해집니다. 과정 중심으로 업무를 추진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연결을 중요시 여기죠.

 

융은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개념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억지로 구분하며 놓쳤던 내면세계를 밝혀줍니다.

융에 따르면 각 성별에게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조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남성 안에 갇힌 여성성, 여성 안에 갇힌 남성성은 발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내면세계와는 별개로 남성상 혹은 여성상의 페르소나로 살아가게 되고, 이것이 오래되면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자신의 본질이 외면당하게 됩니다.

 

이는 정신의 깊은 곳에서부터 비뚤어진 형태로 발달하게 됩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아니마/아니무스를 지속적으로 억압할 때, 허영심, 변덕스러움 그리고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이야기합니다.

 

한편 이렇게 억압된 자아는 창조적이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지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아가 균형 있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니마/아니무스도 고루 발전하는 편이 좋습니다.

 

¶ 자아와의 화해

 

 

이희문은 이렇게 억압되었던 자아-아니마를 무대를 통해 풀어내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스타킹도 신고, 하이힐도 신으면서 스스로 가둬두었던 자아를 해방하며 억압된 자아와 화해하는 것이죠. 이는 이희문이 지닌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화해로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남성상이 강요되어 결핍된 여성성을 무대 위의 퍼포먼스 속에 펼치며 진정한 자아의 통합을 이룹니다.

 

요즘은 남성들과 여성들 모두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남성들도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해 화장을 하거나 피부 미용에 힘씁니다. 처음에는 남성이 화장을 하는 것을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지금은 ‘자기 관리’의 일환으로 인식됩니다. 젊은 남성들뿐만 아니라 중년 남성들에게도 비비크림을 바른다거나 마스크 팩을 하는 등 피부관리에 힘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워 졌습니다.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이돌 팬덤 현상입니다. 몇 년 전, 고민상담 TV 프로그램 <안녕하세요>를 통해 어머니가 2PM의 광팬이라 고민이라는 사연이 등장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여성이 중년에 이르면 여성 호르몬이 줄고 남성 호르몬이 늘어나며 자신의 내면에 갇혀있던 남성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주변에서 자신의 남성성의 모델을 찾기 어렵다보니 젊고 멋진 남성을 통해 우상화하게 되고, 이것이 아이돌 팬덤 현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예전에는 ‘오빠 부대’라 불리는 청소년 팬덤이 컸지만, 요즘은 ‘아줌마 부대’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무의식과 트렌드] ‘젠더 플루이드’ 시리즈

① 또라이가 오방가는 시대 - 새로운 문화아이콘 ‘오방신 이희문’

② 무의식에서 행동으로 표출된 ‘남성 속 여성성’

③ 박수: 무의식의 매개자

④ 드래그퀸의 드래그퀸에 의한 드래그퀸을 위한 쇼 -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⑤ 서브컬쳐에서 대중문화로 “젠더 플루이드 트렌드”

⑥ 외모를 관리하는 남성들 - “그루밍족 시장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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