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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20)] 아무도 모르는 나락과 운명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3.17 09:30 의견 0

5월 말 달도 나타나지 않는 어둠의 밤이 오고 있었다. 이 축제 장소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는데 서로 먼저 자리를 잡겠다고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오고, 선두 그룹의 사람들은 뒤에서 밀어붙였기 때문에 뒷사람들의 힘에 눌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덮치고 또 덮쳐서 압사하고 질식사하고… 죽고 또 죽고.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전투 연습장에 이곳저곳에 파 놓았던 참호가 죽음의 함정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이 참호에 빠진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빠져 나올 방법이 없는데, 다시 제2의 인파 무리가 참호 속으로 빠졌들어와 이미 참호 속에 있는, 압사 직전의 사람들을 덮치고 있었다.

먼동이 터 올 때까지 50만 명의 인파가 밀려들었으니 차르의 즉위를 축하는 천당의 장소는 아비규환阿鼻叫喚, 지옥이 되었던 것이다. 질서를 잡아야 할 경찰의 힘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모습이 연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새벽 6시에 이미 황제의 선물이 참가자들에게 분배되기 시작했다는 유언비어도 참사를 키우는 데 한 몫을 했다.

1389명이 짓눌려 질식해 죽었다. 비참한 광경은 지옥의 모습 그 자체였다. 참호 속에 빠진 인간들 무리에 의해 뒤엉켜 압사한 수많은 사람들은 거대한 묘지 속으로 들어가 있지 않는가. 큰 부상을 입은 사람도 무려 1300명이나 되었다.

황제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부상자들을 위로했다. 사망자 가족에게 황실비용으로 1000루블 씩 위로금을 주었고 장례식 비용도 국고가 아닌 황실비용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악화된 민심을 돌리기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동맹국은 프랑스가 유일했다. 니콜라이 2세는 애도 분위기 속에 모든 축하 행사를 취소하였는데, 삼촌이며 동서(니콜라이 2세의 황후 알렉산드라의 언니의 남편)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가 프랑스 사절단이 개최하는 황제 즉위 축하 무도회에는 친선 동맹관계의 강화를 위해 꼭 참석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무도회에 참석하였던 것이다.

러시아 국민들은 황제가 참사로 인해 정신적 대혼란에 빠져 있는 국민의 감성을 이해 못하는 무정한 황제라고 분노하였다. 위자료와 장례비 등 돈만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다 국민축제를 조직했던 최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가 높았으나, 그 최고 책임자가 바로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였다.

그러나 세르게이는 모스크바 시 행정청장으로 결재권만 행사했으므로 궁내대신과 모스크바 경찰청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행사 진행과 경비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다. 러시아 국민의 분노와 상처는 이 참사 이후 마음속의 앙금같이 깊이 남아 있었다.

황제 즉위식과 축하 페스티벌에서 발생했던 사상 최대의 집단 패닉 참사는 그 이후에도 다가올 불행의 징조로서 러시아 국민의 내면의 깊은 밑바닥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예언자 라스푸틴도 이 참사에 이어 일차대전이란 대참사와 로마노프 왕가의 참사를 예감하고 경고했던 것이다.

몇 시간 뒤의 나락과 운명을 모르는 가운데 공짜를 탐내는 50만 천민들이 이 땅에는 없을까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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