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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_이야기(22)] H마트 시카고 입성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3.24 09:00 의견 0

교회 일도 열심이어서 같이 청년회를 했던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L을 호인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한번 실체를 까발린 적이 있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고 되려 나만 험담쟁이 취급을 받은 일이 있어 그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굳이 찍어먹어봐야 똥인줄 아는 사람은 어찌됐든 반드시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요새 들리는 얘기로는 영주권을 받고 로스쿨에 가겠다며 기자를 그만 뒀는데 처가의 도움으로 학비 해결 후 이혼, 다른 재력녀와 재혼 등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한다.

L이 즐겨 다니던 주요 취재처는 한인 그로서리와 뷰티서플라이 등이었다. 커뮤니티에서는 그나마 규모가 있으면서 돈을 버는 업체들이다.

이외에도 상공회의소나 무슨무슨 협회 같은 게 있는데 동네 아저씨들 복덕방 하듯 차려놓고 시간 때우며 나름 동포사회를 위해 주류 정치인에 줄을 대서 사진도 찍고 암튼 바쁜 단체다.

뷰티서플라이는 주로 흑인들을 상대로 하는데 한인이 소유한 시카고 지역 한 도매업체가 전국구 규모일만큼 크고 업계 자체를 한인들이 꽉 잡고 있다. 요새는 다른 인종들의 진출이 많아져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하나 서브프라임 전까지만 해도 온갖 도매업체가 난립했음에도 불구하고 호경기에 다들 지화자 니나노 잘먹고 잘살았었다.

L이 자주 드나들었던 전국 1위 J뷰티는 이북 실향민 출신 한인 이민자가 맨손으로 일궈낸 회사다. 개인으로선 입지전적인 성공이요 커뮤니티 차원에서도 고용과 원만한 상품 공급으로 기여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북출신들이 흔히 그러듯 창업자는 1전 한푼 허투루 쓰지 않고 근검했다고 하는데, 그럼 뭐하나 사후에 아들들은 맨날 룸빵 가고 비서로 있다 재취한 사모님은 돈을 펑펑 쓰면서 한인회장 역임 후 정치권을 기웃거리신다. 버는 놈 따로 있고 쓰는 놈 따로 있다더니 딱 그짝이다.

기자 노릇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벤트는 H마트 시카고 입성이었다. 한국에서야 동네에 이마트가 들어오든 말든 슈퍼 하나 생겼다고 무에 큰일이랴마는, 워낙 없이 살던 시카고 한인들은 그동안 몇평 되도 않는 시골마트에서 장을 보다 대형 H마트가 들어오니 가뭄에 비 온 격이요 온동네 잔치가 돼 버렸다. 개장 첫날 만 명이 왔던가 발디딜 틈도 없이 읍내 마실 나와 장을 보는데 밀집도로만 보면 명동 한복판 저리가라할 정도였다.

그 뒤 7시 계열 아씨마트가 들어오고 H마트는 전두환의 29만 원이 투자된 나아쁜 업체라는 소문이 퍼지며 한동안 양강체제가 유지됐다. 요즘엔 멀리 있던 중부시장도 한인들의 읍내라 할 수 있는 나일스-글렌뷰 쪽에 지점을 크게 내 경쟁 중인데, 한인 뿐 아니라 타인종도 잘 공략해 계속 번창하는 H마트와는 달리 아씨는 날이 갈수록 폭망 중이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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