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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_이야기(27)] 성당 청년들과의 에피소드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4.13 12:23 의견 0

하도 이상해 은근히 물어보기도 했는데 왜 사람을 의심하냐고 그러니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나로선 조용히 있을 수밖에. 나중에 시카고대에서 포닥을 하던 형이 따로 알아보고 이런 저런 경로로 추적해 진실이 드러나긴 했다.

내 눈에는 굳이 그렇게 디벼 파지 않아도 쌩구라가 분명한데 대부분 암 생각없이 우와우와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웃기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그랬다. 들은 바로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기대가 너무 커서 없는 사실을 지어내고 성적을 주작하다 보니 결국 뮌하우젠증후군이 온 것 같다고.

S의 거짓말이 공개적으로 뽀록나던 날, 그녀를 쫓아다니며 거의 숭배하던 부회장 C는 찔찔 짜며 세상 믿을 게 하나 없다는둥 너무 충격적이어서 이제 아무도 못믿겠다는둥 울고불고 했다. 사람들은 다들 놀랍다면서 C가 그렇게 믿은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위로하는데 그 꼴이 하도 우스워 몇 마디 했다가 나는 완전 싸가지 없는 인간으로 찍혔다.

나는 원래 눈치도 없고 하고픈 말이 있음 그냥 해버려서 미움을 많이 받는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쁨을 받아볼까 노력도 좀 해봤는데 EQ에 문제가 있는지 잘 안 된다. 청년회 부회장 C에게도 S의 지난 행적을 보면 그걸 믿는 게 더 이상하다고 했다가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한소리씩 들었다.

회장 B의 집에선 매일 같이 술파티가 벌어졌다. 그래도 명색이 교회 다니는 청년들인데 가끔 진지빨고 신앙 고백류의 대화를 하거나 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날 Easter 전야였던가, 부회장 C의 주도로 예수 부활에 대해 각자 믿음을 얘기하고 신앙을 치켜세워주며 서로 탄복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술이나 빨리 먹지 옆에서 보고 있자니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서 시간아 빨리 가라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근데 나 보고도 부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거다.

순간 고민이 됐다. 듣기 싫은 말하면 또 왕따될 텐데. 그냥 일반적인 정답을 말할까 하다가 양심상 거짓말은 못하겠고 에라 모르겠다 내가 언제는 인기남이었냐 그냥 솔직히 말했다. 내세의 부활은 그게 진짜든 거짓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설사 정말 물리적 부활이 있다 해도 다음 세상의 다시 살아난 나는 삶의 연속성이 없기에 지금의 나와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존재다. 예수는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원했고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게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부활은 예수가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 하늘나라를 바로 지금 여기 만들어가는 것이지 좀비처럼 죽었다 살아나 주님 찬양하세 병신처럼 하루종일 노래나 부르는 게 아니다.

라고 했더니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뜨악한 표정들이었다. 회장 B가 분위기를 수습하며 자 이제 술이나 먹읍시다 했으니 다행이지 더했다가는 싸움날 것 같았다. 부회장 C로부터는 부활 믿지도 않으면서 교회는 왜 나오냐고 한 마디 들었다. 솔직히 술먹고 놀고 싶어 나온다고 말은 못했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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