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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플라뇌르 대프리카를 말하다(56)

조연호 작가 승인 2019.04.17 11:59 의견 0

진보의 정신 - 진보 성향의 후보를 지지

현 상황과 위 표를 비교해 보면,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 대구경북을 연구하는 대부분 학자가 대구 특성을 보수 혹은 수구라고 인정하는 현시점에서 위 표는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적인 투표율을 보면, 70 : 30 정도로 이승만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대구지역은 반대였다. 제3대 대통령 선거 득표율 그뿐만 아니라, 1952년에 치러진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조봉암 후보는 23%의 득표율을 보였다(당시 이승만 후보는 40%의 득표율을 올렸다). 조봉암 후보는 현재 좌파라고 비판받고(대구에서는 거의 공산당 취급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네티즌의 댓글을 봐도 더불어 민주당을 빨갱이, 좌파, 공산주의 등으로 표현하는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있는 현 정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좌익 경력이 있었다.

그런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지역이 바로 대구였다. 어떻게 보면, 진보 정신이 가장 먼저 화개 한 지역이 대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보수와 진보가 우열을 나누는 기준은 아니지만 지금 대구의 보수적인 성향이 애초부터 있었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니면, 가부장적 독 선적 권위로 통치했던 이승만 독재에 대한 정의로운 저항 정신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까

대한민국 민주화의 정신 - 2 28 학생운동

228학생 운동은 낯설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학생운동인데, 대구에 살면서 228공원을 여러 번 가보고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역사를 확인하지 않았다.

“228 학생운동은 대구 시내의 고등학생들이 벌인 반독재 투쟁이었다.”

자유당 정권은 민주당 장면 부통령 후보의 대구 유세장에 고교생들의 참석을 막기 위해서 일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내세워, 강제로 학생들을 등교 시켰다. 이에 부당함을 느낀 학생들이 반독재를 외치면서 뛰어나온 것이 바로 228 학생운동인 것이다(228운동에 대해서 대구 시민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필자와 비슷하거나 어린 세대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잘 모르고 있었다).

419혁명은 알다시피,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헌법을 수립할 수 있게 한 역사적인 혁명이다. 그리고 그 도화선이 바로 228 학생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대구는 대한민국 민주화 정신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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