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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_이야기(20)] 단원 김홍도의 작품③

행려풍속도8폭 ? 후원유원(後苑遊宴), 파안흥취(破鞍興趣)

박태숙 작가 승인 2019.05.24 12:44 의견 0

김홍도의 <사계절 행려풍속도> 세 번째 시간입니다. 꽃피는 봄과 녹음이 푸르른 여름을 지나 어느덧 황금 들녘이 펼쳐진 가을까지 도착했네요. 이번 주는 <후원유원>과 <파안흥취>를 알아보겠습니다.

¶ 후원유원(後苑遊宴)

▲ <후원유원(後苑遊宴)> 모사도 ⓒ 박태숙 작가


<후원유원>은 무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사이의 정취가 담겨있습니다. 조선시대 상류층 대갓집 양반들의 연회 모습이 그려진 그림입니다. 잠시, 그 흥겨운 잔칫집에 방문해볼까요

그림의 제일 앞쪽에는 한상가득 차린 잔칫상을 분주하게 나르는 여인 둘이 보입니다. 여인 둘 옆에는 한쪽 귀퉁이에서 기생과 잡담하는 남성이 보입니다. 황토색 두루마기를 걸친 또다른 사내는 담벼락 너머로 들리는 음악소리를 집중하기 위해 귀에 손을 대고 있네요.

대갓집의 뒤뜰로 들어가는 통로로 보이는 울타리가 있습니다. 짙은 초록빛을 띠는 게 일반 담벼락은 아닌 것 같네요. 이 담벼락의 이름은 취병(翠屛)입니다. 비취색 병풍이라는 뜻으로 살아있는 나무나 덩굴 식물을 심어 담장이나 병풍모양의 울타리를 만든 것입니다.

취병은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고, 외부의 시선을 가려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천연 담벼락인 셈이죠. 또한 살아있는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연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방에서는 병풍을, 정원에는 취병을 설치해 늘 자연을 곁에 두고 살았다고 합니다. 취병은 18세기 초반에서 19세기 후반까지 서울 양반가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20세기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취병을 지나 뒤뜰로 들어가면 네모반듯하게 만든 연못과 대나무로 아름답게 장식된 정원, 뒤뜰에 보이는 학까지 아주 잘 가꿔진 정원이라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아무래도 정원의 주인은 꽤나 높은 자리에 계신 양반인가 봅니다. 아, 저기 집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계시네요.

흰색 보료(안방이나 사랑방 등에 항상 깔아두었던 요) 위에 앉아 나무로 만든 장침에 팔꿈치를 괸 채 비스듬히 누워서 음악을 감상하시는 저분이 이 집의 주인인 것 같네요. 주인 옆에는 주인과 꽤 가까운 사이로 보이는 선비가 장죽을 물고 연주를 감상하고 있습니다.

악사들은 멍석 위에서 거문고와 대금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세 명의 기생 중 한명은 부채로 바닥을 내려치며 장단을 맞추는 모양새가 퍽 흥겨워 보입니다. 한 소년이 작은 문 사이로 이 연회를 엿보고 있네요.

¶ 파안흥취(破鞍興趣)

▲ <파안흥취(破鞍興趣)>의 모사도 ⓒ 박태숙 작가

이 작품은 길가던 사내들이 여성을 훔쳐보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앞에는 후원에 자리를 잡고 앉아 흥을 즐기는 양반의 모습을 담았다면 이번 그림에는 마른 나귀를 타고 헤진 안장 위에 올라탄 선비가 등장합니다.

행색이 초라한 선비는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목화를 따는 시골아낙네를 몰래 훔쳐봅니다. 선비 체면이 있으니 누가 볼까봐 부채로 얼굴을 감추고 조심스럽게 보고 있지만, 목화를 따는 여인들을 따라 돌아가는 고개까지는 막을 수 없나 봅니다. 어머, 주인 뒤를 따르는 시종도 주인을 따라 고개를 왔다 갔다 반복하네요.

아이를 업은 여인과 바구니를 맨 여인은 허리를 구부린 채 목화를 따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중간 중간 흐르는 땀을 닦느라 바빠 자신들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네요.

지친 나귀와 새끼는 여인네들을 보고 싶어 하는 주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갈길을 가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서로 반대로 바라보는 시선이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단원 김홍도의 작품에는 훔쳐보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노상파안(路上破顔)>과 <빨래터> ⓒ 위키백과


훔쳐보는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표현해 그림에 익살스러움을 더합니다. 대표적인 그림으로는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실린 <노상파안(路上破顔)>과 <빨래터>가 있습니다.

개울가에 늘어진 갈대와 그 위에 까치가 앉아있는 모습, 저 멀리 섶다리를 건너는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의 모습까지 섬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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