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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 In 호주(20)]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칼럼니스트 레이첼 승인 2019.06.13 10:42 의견 0

호주가 한국에 비해 물가가 비싸다고 생각해서 출국 전 미리 머리를 짧게 잘랐다. '수입이 없다면 지출을 줄이면 되지.' 하지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해가 떠서 지듯 머리카락 역시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자라났다. 조금만 더 길러볼까하고 버텼지만 탈색과 염색으로 상한 머릿결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부스스한 머리에서는 탈피하고 싶고, 돈은 아끼고 싶었던 내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호주는 한인 사이트가 많이 발전해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영어,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중 하나를 선택해 자기 나라 언어로 글을 볼 수 있다. 그중 브리즈번에는 '썬브리즈번'이라는 사이트가 활성화 되어 있다. 보통 숙소나 구인구직을 할 때 많이 이용한다.

구직을 위해 구직글을 열심히 읽던 중 한 단어가 눈에 꽂혔다. ‘헤어모델 구합니다.’ 아카데미 수강생이나 수습 해어디자이너 선생님들이 실습을 하기 위해 헤어모델을 구하는 글을 보게 된 것이다. 대부분 한인들이 모여 사는 남쪽지역에서 이런 소식이 종종 올라왔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바로 연락을 드렸다.

디자이너가 왔으면 하는 날이 마침 일을 쉬는 날이었기 시간 약속을 잡는 것도 수월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간 곳은 쇼핑센터 안에 위치한 미용실이었다. 내 머리를 손질해주신 선생님은 10년간 미용을 하시다가 다른 일을 한 뒤에 다시 미용으로 돌아오신 분이었다. 굳은 손을 풀기 위해 모델이 필요해서 글을 올리셨다고 했다. 다행히 내 머리는 어느 정도 자랐기 때문에 좋은 모델이라고 해주셨다.

선생님께선 머리를 자른 뒤 머리도 감겨주시고 고데기도 해주셨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잘려 나갈 때마다 복잡한 생각들도 잘려나가는 것처럼 머리도 마음도 가볍고 상쾌해졌다. 공짜로 자르니 더 짜릿했던 것 같다. 날씨도 좋고 머리는 새 단장을 마친데다가 남쪽 지역을 구경할 수 있어서 그날 하루 전체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지불한 비용은 고작 교통비뿐이었지만 값진 하루를 보냈다.

우리는 매일을 선물 받고 살아간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선물받은 하루를 값지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버는 데에서 값진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할 것이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값진 하루를 보냈다고 여길 것이다.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불안과 걱정 근심에 짓눌려 행복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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