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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아빠! 그냥아빠?(2)] 서른 둘, 인생 막장?

조연호 작가 승인 2020.09.11 00:55 | 최종 수정 2020.10.19 10:15 의견 0

◇포기 세대

30대 중반에 결혼했습니다. 기적과 같은 결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평생(?) 같이 산다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현실적인 상황이 결혼과는 너무나 동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서른이 넘어서고 나서는 ‘결혼은 내 인생에 없어!’라고 체념하고 살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3포 세대’였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N포 세대’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한 마디로 다 포기한 상황이었죠. 아무리 의미를 찾아 산다고 해도 세상은 절대 만만치 않았습니다. 좋은 일을 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었습니다. 있다가도 사라졌습니다. 괜찮은 대학에 다녔고,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삶이 싫어서 선택한 시민운동의 길이었습니다.

육군 장교로 전역한 첫 해 열심히 모았던 봉급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을 했으니 다음 해에는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자위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다음 해에 좋은 일은 없었습니다. 견고할 것 같았던 자리에서도 나와야만 했습니다.

이후 1년 정도 일용직 근로자로 살았습니다. 공사판에도 나가고, 가끔은 L사의 공장에 나가서 쉼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서 18초에 한 개씩 앞으로 다가오는 패널에 기계적으로 같은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기계인지, 기계가 나인지.’를 구별하기 힘들었습니다.

마르크스를 신봉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이래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30대 초반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꺼지지 않는 공장의 불빛 아래서 인간이라는 정체성은 꺼버리고 살아가면서 언젠가 꺼지는 불빛처럼 소멸할 것 같았습니다.

심신이 힘들었습니다. 특히,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한 번은 함께 동행한 아저씨 한 분이 나이를 묻습니다.

“서른둘입니다.”
“그래? 그러면, 다른 일을 알아봐!”
“네?”
“이런 일은 인생 막장일 때 하는 일이야! 아직 젊고 한 창이잖아!”

‘인생 막장’이라는 표현에 좌절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막장 인생을 사는구나!’

그래서 다른 일을 알아봅니다.

◇방문 학습 교사

일용직을 그만두고는 학원 강사나 과외 자리를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제시간에 맞출 수 있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급여도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학원 강사는 포기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벼룩시장’을 펴보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의 방문 학습 지점 교사 모집 광고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000에 살고요. 한 번 방문하려고 합니다.”
“네. 여기는 000고요. 언제 오시겠어요?”
“네. 한 2시간 내로 가겠습니다.”

지점장은 30대 중반 여성으로 열정이 있었습니다. 저와 나이 차이도 많지 않아서 요구 사항을 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첫 달에 최소 70만 원 맞춰 주시면 할게요.”
“네. 그렇게 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일단, 본사 교육을 1박 2일 다녀오셔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일정 정해주시면 다녀올게요.”

얼마 후 본사 교육 1박 2일 받았습니다. 잠은 집으로 돌아가서 자려고 했기에 숙박과 관련한 부분은 요청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집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육장 부근에 있는 찜질방을 이용하게 됐습니다.

평일임에도 찜질방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또 인생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제 좀 나아질까?’

교육 마지막 날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요식행위긴 한데, 시험이라고 하니 조금 긴장됐습니다. 100점 만점에 문제는 스무 문제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점장이 홍보용으로 적절히 활용했고, 그 덕에 한동안 과목 수가 계속 늘었습니다.

시험을 치르기 전 옆에 있는 40 중반 정도로 보이는 다른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서른둘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시려고?”
“네.”
“그런데, 이런 일은 대학 졸업하고 정말 할 일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하는 일인데.”

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일용직과 관련한 조언을 해줬던 아저씨와의 대화와 다른 점은 ‘대학 졸업’이라는 단어뿐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상황이 ‘인생 막장’에만 귀를 기울이게 했습니다.

‘인생 막장이라? 이렇게 살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인가?’

희망이 있는 사람은 어려운 역경도 극복할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작은 장애물도 넘기 힘듭니다. 이유는 넘어서려는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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