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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알자] ‘스가’ 정권 탄생과 일본의 침로(針路)

정회주 일본지역연구자 승인 2020.10.05 09:18 의견 0
스가 요시히데 총리 (사진=스가 요시히데 공식 인스타그램)

일본 자민당은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과 ‘새로운 일본을 만든다’고 주장하던 ‘이시바’ 전 간사장을 선택하지 않고 아베의 ‘아바타’라고 불리는 ‘스가’ 관방장관을 99대 신임총리로 선택했다. 국민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민당 스스로 변화보다는 안전운전을 선택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자민당 총재는 세습 국회의원이 대부분이다.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친족으로부터 지반을 이어받지 않은 총리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가 처음이다. ‘카이후 도시키(海部俊樹)’와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는 파벌에는 속했으나 세습은 아니었다. ‘스가’는 아베 전 총리처럼 암반 보수 지지세력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자민당 국회의원들이 소속해 있는 파벌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자민당의 암반 지지층인 극우 보수층의 요구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스가’가 선장인 일본이라는 배는 어디를 향할 것인가? 총리 취임 전인 지난 9월 8일 ‘스가’ 총리는 자민당 선거 소신 연설회에서 “내가 목표로 하는 사회상은 ‘자조(自助), 공조(共助), 공조(公助), 그리고 인연(緣)’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능한 것은 자신이 스스로 먼저 해결하고 가족, 지역 간에 상호 돕고 그리고 나서 정부가 책임을 가지고 대응을 한다. 이렇게 해서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신뢰받는 정부로 나아가고 싶다”라고 언급했다.

일본에서는 유치원에서도 재해재난에 대비해서 ‘자조, 공조, 공조’를 배우고 실천하도록 가르친다. 대규모 재해재난이 발생해 지자체가 피해를 입는다면 제대로 기능발휘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개인이 스스로 구비(自助)할 수 있으면 평소에 재난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가’ 총리가 연설을 통해 주장한 것은 정부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 못할 때는 정부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가 살길을 찾으라는 뜻이다.

향후 총리가 될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국민과 언론은 별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결국 일본 국민들이 ‘스가’라는 인물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의 말을 빌리자면 ‘스가’는 코로나19로 인한 현 정부의 상황을 재난으로 가정했고 ‘스가’ 스스로가 힘없는 정부라는 것을 먼저 선언한 셈이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해 원전이 폭발하는 상황 속에서 일본인들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즉, 동일본대지진 때처럼 ‘기즈나[인연:緣]’를 강조하면서 국민 단합을 유도한 것이다. 일본 국민들이 ‘스가’의 이런 폭탄성 발언에 큰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베의 아바타인 그에게 큰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총리 취임 후 ‘스가’가 언급한 내용은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아베총리가 지병으로 중간에 그만둔 것을 국난으로 칭했다. 그는 “아베내각이 지속해온 것을 계승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나에게 부과된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둘째, 코로나 대책에 관련해 “내년 전반까지 모든 국민이 맞을 수 있는 백신을 확보하겠다.”라고 언급했다. 셋째, 이번 각료 등 인선 중점에 대해 “기득권익을 타파하고 규제를 개혁한다는 ‘국민을 위해 일하는 내각’”이라고 칭하면서 “관청의 다테와리(縦割り: 부처간 이기주의)와 전례주의”를 타파하겠다는 등의 포부를 밝혔다.

(사진=정회주 제공)

이와 같은 주장에서 핵심은 “관청의 다테와리와 전례주의”를 타파한다는 행정개혁인데, 9월 17일 야후재팬의 접속랭킹(오전 8시 30분 기준) 1, 2순위가 전부 ‘고노 타로’ 인 것을 보면 국민들은 행정개혁대신인 전 방위대신 ‘고노 타로’ 대신에게 높은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행정개혁대신은 내각부 소속이기 때문에 실제 움직일 수 있는 행정부처인 손발이 없다. 즉, ‘스가’는 ‘고노’에게 엔진은 주지 않으면서 추진력만 강조한 것이다. 대다수가 평균연령 71.4세의 남성인 각료들인 점을 고려하면 말로만 돌파력을 강조하면서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조성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가’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현실적으로 다른 주요국보다 관심도가 떨어진다. 그는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인 외교는 “아베 전 총리와 상의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언급했을 뿐 아니라, 양국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다. 따라서 더 이상 양국 정상 간의 결심만 가지고는 회복이 불가하고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양보도 필요하다. 게다가 ‘스가’ 총리는 지난 2013년 11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에서는 이제까지 안중근이 범죄자라는 것을 한국 정부에 전달해 왔다.”라고 언급한 바 있으며, 그의 국회의원 블로그에는 자민당이 야당시절인 2011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또 지난 2012년 2월 22일에는 시마네현 ‘다케시마(독도)의 날’에 자민당 국회의원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스가 관방장관이 총리가 되었다고 일본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가지기 어렵다. 임기 1년 동안 자신의 의지대로 해보고 그 이후에는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는 한, 그가 주장하는 개혁의 기저에는 변화를 기피하는 자민당 ‘보수 우익’세력들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스가’ 역시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일본 정치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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