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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38편: 코로나 걸린 목사(1)

조인 자가 승인 2020.11.01 17:15 의견 0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서 저 좌파 정권의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한 폐렴에 걸리지 않습니다. 혹, 걸린다면 그것은 우리를 탄압하려는 악의 무리들이 바이러스를 살포한 거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넓은 도로에 평소에는 차들이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광장에 언제부터인가 차대신 사람들이 주섬주섬 개미 모이듯 모이면, 어느새 광장은 위에서 쳐다보면, 콩나물시루 안의 콩나물처럼 빼곡하게 검은 머리만 가득하다. 통근 시간 만원 전철 속, 아무리 열차가 움직여도 몸이 그대로 서 있는 놀라운 경험을 광장에서도 할 수 있을 정도다. 

국가적으로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는 코로나 방역으로 한창인데, 왜 치사율이 높다고 밝혀진 노인들이 모여서 집회를 해야만 했을까? 김 노인은 부산에서부터 올라와 참석했다. 전세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휴게실에서 한 번 쉰 것을 빼고는 계속 버스 안에만 있어야 했다. 간혹, 그렁그렁 대는 목소리로 가래 낀 기침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전염병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뭐야? 상태가 안 좋으면, 타질 말아야지. 누굴 죽이려고 저....’

답답한 마음도 마음이지만, 주머니 속에 약간의 용돈이라도 챙기려 상경하는 중이다. 

‘설마, 좋은 일 한다는데 지랄 같은 병에 걸리진 않겠지?’

인간은 사실보다는 보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고 싶을 뿐이다.

“영감님, 이번에 광화문에서 모임을 하는 데 같이 가시죠?”
“응? 그 먼 데를 어떻게 가?”
“당연히, 차로 가셔야죠. 도시락도 드리고, 용돈도 챙겨 드립니다.”
“그래? 그래도 자식 놈들이....”
“자녀 분한테 말하고 가실 필요 있을까요? 당일치기입니다.”
“음. 그래 얼마나 주는데?”

상황이 상황이고, 시국이 시국인지라 자녀들한테는 말도 못 하고 혼자 집을 나섰다. 막상 나서고 보니, 후회도 되고 몰려온 사람들을 보니 행색도 변변찮아 보여서 괜히 나왔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오늘 모이신 분들은 정말 애국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분들입니다. 코로나가 대수입니까? 
지금 나라가 망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탄압받고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공산당의 잔혹함을 모릅니다. 우리는 6·25를 겪었습니다. 전쟁의 무서움, 공산당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무서움을 모르는 세대는 코로나를 앞세워 우리를 몰아세우지만, 국가가 있어야만 개인이 있는 것이지, 내 건강 차린다고 나라가 망해 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또다시, 나라를 잃을 수는 없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막상 인솔자의 자신 넘치는 소리를 들으니, 후회했던 마음이 뜨거운 화로에 물 끓듯이 다시 뜨거워진다. 

‘그래 애국하는 길이야!’ 

“콜록! 콜록!”

다시, 듣기 거북한 기침 소리가 들린다. 김 영감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다. 어느새 생긴 이마의 주름에는 김 영감의 삶의 역경이 삐죽삐죽 삐져나와 있다. 그렇게 새벽부터 출발해서 4시간 남짓 걸려 서울에 도착했다. 도착해 보니, 큰 서울 광장이 막혔고 주변에는 경찰들이 보인다.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왠지 경찰이라는 존재가 고개를 떨구게 만든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화장실 한 번씩 다녀오시고, 다시 이 자리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말씀드린 교통비는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대부분 사람이 걱정하는 이야기를 안내자가 한 번 더 강조해주니, 마음이 편하다. 

‘그래 약속은 지킬 거 같구먼.’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단 근처로 이동한다. 어린 시절 아무 생각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녔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는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다 들었지. 그냥 명령에 복종하는 게 미덕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때가 다르지 않은가?’

집회의 주최 측 지도부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연단에 선다. 내용은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여서 서너 명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들을 필요 없는 이야기였다. 

‘같은 소리만 되풀이 하는구먼. 이거 원 지겨워서.’ 

답답함을 잠시 피하려고 주위를 둘러보니, 김 영감과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많은 사람은 속내야 어떻든 열심히 호응도하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다. 목사들이 이야기할 때는 ‘아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정부를 욕할 때는 같이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최측은 인간의 심리를 잘 아는 듯했다. 그래서 어렵지 않은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반복하면서 세뇌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단순 노동을 하는 공장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잔뜩 긴장한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눈을 감고도 자기 일을 무리 없이 해낸다. 고작 한 걸음 움직이고, 양팔을 30센티미터 정도 움직이면 되는 일이 대부분이니 생각의 속도가 몸을 다스릴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몸이 기억하면, 공장은 사고 없이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간다.

‘좌파 정권’, ‘공산당’, ‘망국’ 등이 핵심 단어여서 연설은 듣지 않아도 괜찮았다. 과거 시골 교회 새벽 기도회를 나가면, 글씨를 몰라서 성경도 읽지 못하는 할머니들이 그렇게 열심히 기도한다. 혹여 도시 교회에서 농활이라도 지원 가서 새벽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예배당에 나가서 기도라도 할라치면, 수십 명의 청년이 한 할머니의 기도 소리에 놀라서 본인들이 할 기도는 까먹고, 할머니의 기도 소리에 ‘아멘’을 하고 돌아온다. 할머니의 기도는 딱 세 단어면 족했다. “아멘”, “아버지”,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버지! 아멘!”

좋은 뜻임에도 청년들은 탈곡기에 털린 곡식처럼 정신이 탈탈 털려서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자, 제가 이제 축복 기도를 하겠습니다. 
지존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우리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존멸에 처한 국가를 구하고, 주님의 핏값으로 세운 교회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현재 우리는 가혹한 좌파 정권의 음모에 온 국민이 속고 있으며, 이를 아는 우리들은 탄압하는 악의 무리와 대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힘으로 이겨낼 것입니다. 우리는 전염병도 두렵지 않고, 오로지 치유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병으로부터 구해 주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비록, 하루의 짧은 시간이지만 오늘 이 모임이 시발점이 돼 대한민국을 저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해주소서.”
“아멘”

“뭐라고? 우리 교회 일대가 재개발 지역으로 확정됐다고?”
“예. 목사님.”
“보상은 얼마나 될 거 같아?”
“한 오륙십 억 될 거 같습니다.”
“뭐? 그것밖에 안 돼?”
“네?”

목사는 내심 더 기대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보수 교회들이 모이는 단체에서 대표를 한 이유도 다 자신의 위상을 높여 보상액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감히 나한테 똑같은 대우를 해봐라! 내가 어떻게 하는지.’

수십 억의 보상액이 책정됐다는 기쁜 소식을 알리러 달려갔던 박 장로는 목사의 반응에 방금 전 격앙된 목소리에 사슬을 채워 수면 아래로 끄집어 내렸다.

“대책을 세워야 할 거 같아.”
“네.”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한참 선거가 다가오니까.”

목사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이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비범한 재주가 있었다. 여전히 기복신앙이 먹히는 대한민국에서 목사의 위세는 제법 괜찮았다. 

‘내가 쓴 돈이 얼만데, 겨우!’

변호인단을 구성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돈을 약속하면 됐다. 초기 비용은 조금 주고, 나중에 성과급을 넉넉히 책정하면 됐다. 보수 정권을 지지하다가 현 정권에 와서 찬밥이 된 법조인들이 수두룩했다. 그들은 지금 정권을 무조건 싫어했다.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난다고 해도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대하려는 사람들이다. 

목사는 보수 정권과 결탁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적어도 교회를 대표하는 회장을 역임했기에 선거를 앞둔 보수 후보들과 접촉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보수를 자처하는 기독교 세력에 기대면 과거 MB처럼 지지율 상승도 바랄 수 있다고 여겼다. 

‘교회 모임의 회장이라고? 음. 괜찮은 연대일 거 같구먼.’

하지만 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세상에 교회만큼 잘게 쪼개진 조직이 없다는 걸. 보수도 하나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교회 70%가 보수라고 하는데, 왜 30%가 보수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큰 차이도 없는데, 굳이 구분해서 갈 길이 다른 것처럼 꾸민다. 그러다 보니, 프리즘을 통과한 태양 빛의 다양한 만큼이나 교회의 분열 스펙트럼도 찬란하다. 

목사의 예상과는 달리 선거 결과는 처참했다. 처음에는 잘 모르고 연대하려고 했던 정치인들도 선거 날짜가 다가오니,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도움이 될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지율에 악영향을 끼치는 수준이었다. 여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었지만, 코로나를 잘 대응했다는 외신의 보도와 재난지원금을 주겠다는 공포에 지지율이 반등한 것이다. 게다가 야당은 뚜렷한 대안도 없이 정권을 비난하다가 잘모르는 기독교 단체와 손을 잡았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거, 무슨 목사가 말만 하면 지지율이 떨어져? 당장 관계를 정리하라고!”

야당의 대표는 늦게서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손실을 볼 만큼 본 상황이었다. 오히려 거리를 두기 시작하자 지지율이 상승했다. 유권자들은 극단적인 걸 싫어했다. 젊은 세대와 나이 있는 세대의 지지율이 크게 차이 난다고 하지만, 40%는 부동층이다. 움직이지 않는 이들이 승패를 가른다. 이들은 극단적인 걸 싫어한다. 그래서 광장에서 극보수라고 선언하는 자들을 싫어한다. 마찬가지다. 이들은 진보라고 외치는 자들도 싫어한다. ‘우리△△당’과 ‘정□당’이 한계에 봉착한 이유이다. 

‘다 똑같은데 저렇게 극단적으로 설치는 당은 찍지 말아야겠어! 시끄러워서 원!’

선거는 야당의 참패로 이어졌다. 목사의 참신한 불협화음도 한 몫 거들었다. 아무리 기도해주고, 지지를 호소해도 부동층의 마음은 바꾸지 못했다. 적어도 그들은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장 극단적인 보수들이 모여 사는 대구지역에서도 ‘우리△△당’의 후보들의 낙선은 면치 못했다. 3선을 지내고 의회의 깡패라는 별명을 가진 의원도 선거 막바지에는 과거에 탈당했던 야당에 다시 복당하겠다고 얼굴에 철판을 깔았지만, 야당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패하는 현실을 피할 수 없었다. 아무리 전 여성 대통령을 팔아서 동정표를 얻으려 해도 부동층은 외면했다. 

‘참패로구먼.’

목사는 1차 계획이 실패했음을 알았다. 그러나 잃기만 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그의 존재를 전국에 알릴 수 있었다. 방송에도 그의 이름과 얼굴이 나오고, 선거가 치열한 보수지역에서는 후보와 악수하는 그의 얼굴이 잔뜩 붙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이미지든 그렇지않든, 공인이 돼버린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나서야 할 때가 왔다.’

그는 몰락한 극보수 정당과 지방 보수적인 교회들을 연합한 집회를 계획했다. 혼자는 부러지기 쉽지만, 여럿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는 걸 성경에서 배웠던 것이다. 

‘원래 삼겹줄은 끊어지기 쉬운 법이 아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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