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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아빠! 그냥아빠?(13)] 육아는 엄마의 것이 아니라 부부의 것입니다

조연호 작가 승인 2020.12.07 14:25 의견 0

◇ 부부 공동 육아

육아는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부부가 함께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도움을 줄 사람이 많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적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닙니다.

엄마, 아빠의 편의를 위해서 많은 도움을 받는 게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닙니다. 아이는 부모가 가장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육아하는 게 정말로 중요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메리칸 인디언 오마스 족의 격언』

위의 격언 그대로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적어도 양 가족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은 당연히 부부겠죠.

현대인들의 육아와 관련한 부분은 과거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주로 여성들의 몫입니다. 제가 들었던 소리 중에는 “남자한테는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유전자가 없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여성들이 아이들을 더 잘 돌본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적어도 둘째가 생기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었죠.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는 엄마와 10개월 동안 한 몸으로 지냅니다. 그 기간에 아빠가 여러 가지 역할을 잘했다고 하더라도 엄마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이후 태어나서도 모유 수유를 하는 경우 젖 먹을 때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겨우 가림막을 쳐주는 정도입니다. 특히, 여아일 때 아빠는 더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욕도 마음대로 시켜주기 힘들고, 기저귀조차 쉽게 갈아주기 힘듭니다. 특히, 응가를 했을 때 처리하는 과정도 남아랑은 다릅니다. 그러니 가장 사소한 것도 배워야만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육아는 여성에게 특화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무리 각오를 단단히 하고 다짐해도 막상 아기가 태어나면 아빠는 조금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몇 년 후에 깨닫게 됐습니다. 둘째를 키우면서 말이죠.

누구나 처음에는 힘듭니다. 하지만, 익숙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면 엄마처럼 육아를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힘이 센 아빠가 엄마보다 더 쉽게 아이를 돌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육아는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훈련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한 부모가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한 사람만의 역할로 고정해서는 안 됩니다. 괜히 엄마와 아빠가 있는 게 아니거든요. 부부는 아이를 두고, 생활, 훈육, 교육 등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상의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물론, 아이가 성장하면 아이의 의견도 반영하겠지만 그전까지는 부부가 공동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초보 아빠는 이런 사실을 이론적으로도 잘 몰랐고, 그래서 잘 실천할 수도 없었습니다. 프란스시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육아도 아는 게 힘이라는 사실을 둘째가 생기고 나서 알게 됐습니다.

◇ 멀고 먼 처가 집으로

지금도 생각하는 부분이 ‘산후조리원 이후 처가 집에서 육아했다면 어땠을까?’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힘든 방법이었습니다. 제 생활도 그렇고, 아내와 장모님 생활을 고려해도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아내는 당시 수도권에서 취업을 생각했고, 장모님은 퇴직 후에 본인의 여가를 마음껏 누리고 싶어 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커다란 사건(고부간의 갈등)이 있었고, 원만하게 종료됐지만, 좀 전까지 좋지 않게 보였던 모습이 좋게 보일 이유가 없었고, 이미 한평생 살면서 굳어진 생각과 행동 또한 쉽게 변하기 어려웠습니다.

“여보, 차라리 나 우리 집에 가 있으면 어떨까? 계속 산다는 것도 아니고, 잠시 몸조리하러 내려가는 거면, 우리 엄마도 크게 부담 느끼지 않으실 거야.”
“응. 여보가 편한 대로 해. 나는 여보가 생각하는 대로 따를게.”

한 1주 정도 아내는 고민했습니다. 사건 이후 곧 내려가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실질적으로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걸 본인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내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여보, 이번 주 주말에 내려가자!”
“응. 알았어. 내가 부모님께는 잘 말씀드릴게.”

그렇게 안아는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지나서 외가댁으로 갔습니다. 그때는 당분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저까지 내려와서 처가댁 근처에서 살고 있네요.

한참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어머니께서 아내한테 전화하셨습니다. 미안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며느리가 내려가는 모습이 좋지 않으셨던 것이죠. 그러나 당장 그렇게 떨어져 사는 게 낫다는 것을 서로 인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저는 수도권과 대구를 오가면서 살아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흔히 말하는 주말부부 기간이 시작됐습니다.

◇ 주말 부부

1주일에 한 번 아내와 안아를 보러 갔습니다. 바쁠 때는 2주가 지나서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주로 금요일 오후에 내려가서 월요일 새벽 기차로 다시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처음에는 ‘뭐, 일주일에 한 번인데 크게 힘들 거 같지 않다.’라고 생각하며 KTX 여행을 즐겼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간단히 저녁을 먹기도 하고, 카페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좁은 좌석이지만, 흔들림이 크지 않아서 밀린 논문을 읽거나, 교재를 훑어보기도 했죠. 왕복 4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알차게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정도는 재미있게 주말 부부 시절을 보냈습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이었죠. 아내는 불만이 서서히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어서 떨어져 살게 된 데다가 거의 혼자서 육아를 해야 했으니(물론, 장모님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보는 남편이 반가우면서도 원망스러웠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떠나기 전날에는 항상 변하지 않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보는 이번에 내려와서 남편과 아빠 역할을 잘한 것 같아?”

이렇게 아내가 추궁하면 답은 간단합니다.

“아니, 미안해!”
“금요일 저녁에 내려와서 월요일 새벽에 올라가는데 단 이틀을 제대로 못 보내네.”

할 말은 많았죠.

‘생각해 봐! 나도 놀다가 내려오는 게 아니라 대학원 공부에 아르바이트에 정신없이 보내다가 내려오는 거잖아. 그리고 오가는 열차 안이 편한 것도 아니고. 난 다시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공부하고 할 일 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그러나 이런 말은 속에서만 토로할 뿐. 현실에서 절대로 내뱉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걸 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런 부분에서는 지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6개월이 지나니 왕복 4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새벽 열차로 서울로 다시 올라갈 때는 거의 반쯤은 비몽사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전날 밤에 아내한테 좋지 않은 소리를 들으니, 떠날 때는 ‘빨리 가자! 그게 내가 살 길이다.’라는 심정이었죠.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월요일 밤이 되면, 아내와 안아가 보고 싶었습니다. 아내도 전날의 열분(熱憤)을 가라앉히고 다정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금요일 저녁이 돼 대구에 내려가서 이틀을 보내고 나면, 역시 월요일 아침에는 ‘얼른 올라가자!’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1주일 혹은 2주일 만에 보는 안아는 정말 무럭무럭 성장했습니다. 뒤집기도 못 했던 아이가 어느 날 기기 시작하고, 그러더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말 신기함 그 자체였습니다.

‘네가 내 딸이구나!’라는 뿌듯함과 감격에, 눈물을 흘린 적도 꽤 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머리숱이 별로 없는 머리에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뽀뽀 했고, 손과 발은 하도 만져대서 닳아서 없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의 머리카락은 계속 늘어가고 닳아 없어질 거 같던 손과 발은 볼 때마다 커졌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오랜만에 보는 아빠였지만, 잊지 않고 낯설지 않게 웃어줬고 성장하면서 계속 아빠를 행복하게 반겨주었습니다.

‘안아야, 정말 미안해! 하지만, 정말 사랑한단다.’

대구에 있는 동안에는 제가 주로 안아를 재웠습니다. 정말로 기적의 100일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100일이 지나니 안아는 한 번에 4시간 이상 잠을 잤습니다. 그전에는 수시로 깨서 엄마의 젖을 먹기도 하고 보챌 때는 다시 엎거나, 안고 재워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매일 겪어야 했으니 아내가 저를 좋게 보지 않았을 수밖에요.

안아를 위해서 자장가를 불러줬는데, ‘쇼팽의 야상곡’에 가사를 붙여서 불러주기도 하고, ‘넬라판타지아’의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서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아빠의 마음은 잠을 재우는 것도 있지만, 나중에 커서 좋은 음악에 관심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죠.

안아는 성장하면서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음악적인 재능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아빠가 열심히 노래해준 보람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는데 안아는 아빠가 들려준 클래식보다는 외할머니께서 듣는 트롯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둘째도 어린 시절에 불러줬던 노래와는 상관없이 트롯을 더 좋아합니다.

◇ 좋은 아빠 TIP

부모를 기억합니다. 그러니 떨어져 있더라도 많이 안아주고 애정 표현을 정말 많이 해줘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애정 표현을 해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주 양육자를 찾습니다.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매일 아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내의 수고를 격려해 줘야 합니다. 물론, 떨어져 사는 아빠도 결코 편안한 생활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이와 함께 있는 아내를 위해주는 게 현명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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