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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아빠! 그냥아빠?(14)] 드디어 아빠가 됐습니다 : 기저귀 가는 아빠

조연호 작가 승인 2020.12.28 14:10 의견 0

◇ 응가를 치웠어요!

안아의 신생아 시절, 아무도 없이 안아와 단둘만 있었을 때 안아가 울지 않고 제품에 얼굴을 묻은 채 잠이 들었던 순간 ‘나를 아빠로 생각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감격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이제 아빠가 됐구나!’ 라는 경험을 말해보려고 합니다. 아이가 있다고 해서 ‘아빠’가 바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빠는 '아빠가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빠가 된 순간을 나눠볼까 합니다.

먼저, 과거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랑 막냇동생은 나이 차이가 꽤 납니다. 열아홉 살 차이니까 동생이 어렸을 때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와의 관계를 삼촌 조카로 보기도 했습니다.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몇 달 지났을 무렵입니다. 부모님께서 잠시 외출을 하셨습니다. 동생은 침대에서 놀고 있었고, 한 시간 이내에 부모님이 돌아오실 예정이어서 그 정도는 제가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셔도 보채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충분히 돌볼 자신이 있었죠.

하지만, 만용(蠻勇)이었습니다. 평범하게 놀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얼굴이 바뀌더니 울기 시작합니다. ‘뭐지?’ 라고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는데 결론은 기저귀였습니다. 그리고 기저귀를 살펴보니 소변을 쌌네요.기저귀를 한 번도 갈아 본 적은 없었지만, 여러 번 지켜봤기 때문에 쉽게 갈아 줄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형이 기저귀 갈아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말했지만, 형이 미덥지 못했을까요? 계속 웁니다.

동생은 울고 기저귀는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렵게 기저귀를 찾고 앞뒤를 구분하고 나서 동생의 젖은 기저귀를 벗겼습니다. 솔직히 기저귀를 벗겨주면 우는 게 줄어들 줄 알았는데, 저만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나마 하체를 감싸고 있던 기저귀와 내복이 벗겨지니 썰렁했는지 동생은 더 정신없이 울어 재끼기 시작했습니다. 사내아이라서 그런 건지, 어찌나 울음소리가 크던지 저는 공황 상태가 됐습니다.

그래도 심기일전(心機一轉)해서 기저귀를 동생 엉덩이에 깔고 기저귀를 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여러 번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동생은 이제 우는 수준을 넘어서 악을 쓰는 상태가 됐습니다.

저는 그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도망쳤습니다.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근처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동생 울음소리가 따라왔습니다.

“미안해! 미안해! 형이 미안해!”
라고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동생 기저귀도 갈아주지 못하는 저 자신을 많이 자책했습니다. 그렇게 한 5분이 지났을까. 혼자 두고 온 동생이 걱정됐습니다. 심적으로 안정되니, 이성이 눈을 떴습니다.

‘맞다!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지!’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가는 길이 몇 킬로미터는 떨어진 듯했습니다. 4층까지 성큼성큼 뛰어올라서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고요했습니다. 한창 울고 있을 거로 생각했던 동생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동생을 눕혀놓은 침대에 가봅니다. 동생이 아래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새록새록 자고 있었습니다. 울다가 지쳐서 잠든 것이었습니다. 하체를 이불로 덮어줬습니다. 그러고 나니, 더 미안했습니다. ‘난 형도 아니다!’라고 자책했습니다. 잠시 후 부모님이 돌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왜 애가 옷은 벗고 있어?”
“제가 기저귀를 갈아 주려고 했는데…….”
“그래? 알았다.”

어머니께서는 대충 사정을 짐작하셨는지 더는 묻지 않고 자는 동생의 기저귀를 갈아주셨습니다. 이후로 저는 기저귀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감히 넘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15년이 흘렀습니다. 저에게는 동생이 아니라 딸이 생겼습니다. 그것도 남아(男兒)가 아니라 여아(女兒)입니다. 안아를 돌 볼 때는 항상 주위에 아내, 장모님, 어머니 등 여성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저귀를 가져다주기는 했어도 갈아 본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용변을 본 기저귀를 정리해주면 버리기는 했습니다.

아내도 과거 동생 기저귀 사건을 들었기 때문에 저한테 많은 걸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여아는 신체구조가 다르니 더 조심스럽기도 했고요. 그런데, 올 것이 왔습니다.

처형 집에 잠시 방문했는데, 아내와 처형이 한 시간 정도 외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안아는 자고 있었고, 대개는 한 시간 정도 충분히 잤기 때문에 저는 잘 다녀오라고 하고는 안아 곁에 누웠습니다.

한 20분 정도 지났을 무렵입니다. 조심스럽게 누워있는 저를 쳐다보는 아이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쳐다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안아가 저를 쳐다봅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울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제 코에 다가와 키스를 합니다.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키스여서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안아야, 응가 했어?”

이렇게 물어도 대답하지 못하는 안아였습니다. 이제 세 가지 방법만이 남았습니다. 첫째, 갈아준다. 둘째, 아내한테 전화한다. 셋째, 울더라도 아내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작은 용변도 처리하지 못한 제가 큰 용변을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과거의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싶었나 봅니다.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던 기저귀를 다시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작은 용변은 벗기기가 아주 쉽습니다. 내복을 벗기고, 기저귀를 벗기면 끝입니다. 그런데, 큰 용변은 과정이 다릅니다. 내복을 벗기고, 기저귀를 벗기되 다 벗기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변에 용변이 다 묻게 되니까요.

그래서 저도 그동안 다른 사람이 갈아준 모습을 생각하면서 기저귀를 일단 벗긴 상태에서 물휴지로 엉덩이를 닦아 줬습니다. 여아라서 방향에도 주의하면서 용변을 잘 처리했습니다. 한 3장 정도에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용변을 닦은 물휴지를 기저귀에 넣고 둘둘 말아서 정리했습니다.

“성공했다!”

드디어 15년 만에 기저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쳤습니다.

“이제, 나도 아빠다!”

단순한 용변 처리였지만, 굉장히 자랑스러웠습니다. 얼마 후 아내와 처형이 돌아왔습니다.

“안아가 깼네? 언제 깼어?”
“여보 나가고 한 20분 후에.”
“그래? 그런데 전화도 안 했네?”
“응, 나도 아빠잖아!”
“그래.”

라고 하면서 아내가 웃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곧 기저귀를 발견합니다.

“안아 기저귀 갈아줬어?”
“응. 아빠잖아.”
“올~ 진짜네.”
“응. 똥 쌌거든.”
“뭐? 똥? 정말 여보가 갈아줬어?”
“응. 그럼 누가 갈아줘. 아빠니까 갈아줘야지.”
“오! 대단한데!”

아내도 신기했는지, 한동안 대견스럽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그동안은 잘 알지 못하고, 잘못하는 아빠라고 생각했다가 조금씩 발전하는 남편을 보면서 흐뭇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이제 나도 아빠다!’라는 자부심이 용솟음쳤습니다.

◇ 좋은 아빠 TIP

1. 육아와 관련한 일들을 계속 시도해야 합니다. 안 하면 완전히 못하지만, 시도하면 어느 순간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응가 냄새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계속 기저귀를 갈아주다 보니 이제는 견딜만합니다.

2. 아빠가 기본적인 돌봄이 가능하면 아이도 아빠를 의지하게 됩니다. 의식주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면 아이가 평안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보호자도 아이와 단 둘이 남아도 걱정 없습니다.

3. 육아 시절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은 아이의 기본적인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못하면 계속 시도하고, 잘하면 더 자주 해주는 게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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