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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알자] 코로나19와 일본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

정회주 일본지역연구자 승인 2021.07.07 13:15 의견 0

지난 달 6월 4일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대회 개최 확률은 100%”이고, “무관중 개최”까지 각오한다고 언급했다.

지금 올림픽 개최지인 도쿄도는 3번째 긴급사태선언의 연장으로 신규 감염자는 감소하고 있지만 변이바이러스가 8할 정도 수준이며, 긴급사태 해제시에는 단기간내 재확산할 위험이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신규 확진자 뿐 아니라 사망자도 우리보다도 높고, 반복적으로 의료핍박이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올림픽 개최를 주장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한국인으로서 의문이 든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다.

◆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아시아 통계는 일본의 목표가 아니다

일본 총 인구 1억 2천만 중 매년 130만 여명이 사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코로나19로 사망한 인구는 연간 사망자수의 1/100 수준인 1만 3천여 명 정도 수준이고, 자연재해 및 사고로 사망한 인원(1,300여 명)의 10배 수준이다. 한국보다 총인구가 약 2.4배 많은데도 누적 확진자(약 5.3배)와 사망자(약 6.8배)는 2∼3배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도 사망자 13,481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일본 사회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G7 선진국 중에는 가장 적은 사망자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 일본의 상황이 나쁘다는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즉, 일본인 자신들이 보고싶은 데이터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 국가를 위한 희생 강요와 무심한 감정표현

1945년 패전이 임박했던 당시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을 저지하겠다고 제공권도 없는 상황에서 전함 ‘야마토’를 오키나와로 보냈다. 이는 자살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무언가는 해야 한다는 강박감의 결과다.

이런 심리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이라는 대의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사회적으로 묵인하는 보이지 않는 분위기, 즉 그들 말로 ‘쿠우기(空氣)’가 작용한다. 질 줄 알면서도 ‘1억 총옥쇄’를 주장하였던 당시 일본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지금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코로나19의 확산이 예상되는 일본사회 속에서도 그런 ‘쿠우기’를 읽을 수 있다.

여기에 올림픽 개최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표출하게 되면 정권의 나팔수와 이를 따르는 극우세력들이 집단으로 비방을 함에 따라 함부로 말을 못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동일본대지진 때 우리와는 달리 방송에서 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간해서 볼 수가 없었는데, 이는 타인의 시선을 극심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의 에도시대 사무라이(무사)가 ‘부레이우치’(無礼討ち)라고 해서 무례한 평민들에 대한 즉결처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게 되었던 데서 기인한다고도 한다.

◆ 일본인의 죽음에 대한 풍토와 문화

또한 일본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재해재난으로 인한 죽음이 많다. 이때 일본인들은 ‘시카타 나이/쇼가 나이’(しかたない/しょうがない: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쓴다. 즉, 재해재난이 많은 환경에 적응된 풍습과 문화의 결과가 죽음에 대해 비교적 무딘 감정을 갖게 했다.

과거 이들 속에서 보여진 우리와는 다른 대표적 사례를 보면 ‘마비키’(間引き)가 있는데, ‘마비키’란 솎아낸다‘는 의미로 주로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유신 이전까지의 습관이었다. 태어난 아기를 죽이는 영아살해 풍습인데, 이는 유아사망률이 높았던 당시 상황과, 유아는 ’가미노 고‘(신의 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신에게 ’돌려준다‘라는 생각이 반영되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재해로 인한 대기근시 식량과 세금을 아끼기 위한 방법이었다.

또한 1937년 12월 13일 도쿄 일일신문은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 소위와 ’노다 쯔요시‘(野田 毅) 소위는 남경 침략 때 100명에 대한 목베기 시합을 했고, 노다가 105명, 무카이가 106명을 베었다고 보도했다. 보도 외 각종 진술 등이 증거로 제출되어 두 사람은 남경군사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아 처형되었지만, 이런 상황은 사람의 죽음을 마치 스포츠 경기처럼 인식했고, 이들을 전쟁영웅으로 취급한 것이 당시 일본인들의 모습이었고 할 수 있다.

https://youtu.be/_2NGhS2EY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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