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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알자]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 76주기를 맞이하여

정회주 일본지역연구자 승인 2021.08.09 09:00 의견 0
히로시마 평화기념식에 참석하여 희생자를 애도하는 스가 총리 (사진 출처: 일본 총리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도 원폭이 투하되었다. 그래서 매년 8월 6일에는 히로시마에서,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서 평화기념식전이 거행된다.

일본인들에게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가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다. 이를 여실하게 드러냈던 방송이 있는데, 2005년에 방영된 TBS의 다큐멘터리다. 방송에서는 히로시마 폭격임무에서 과학적 관찰자로 비행했던 해롤드 애그뉴 박사가 남녀 원폭 피해자와 만남을 가졌는데, 출현했던 원폭 피해자들은 해롤드박사로부터의 사과를 받기 원했다.

하지만 2005년 당시 85세의 해롤드 박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다면 그런 짓을 한 일본군을 비난해야 마땅하다”, “당신들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까. 우리와 당신측 모두”라면서 “나는 사과하지 않는다. (미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Remeber pearl harbor! 진주만을 잊지 마라!” (“ヒロシマ 〜あの時、原爆投下は止められた〜” TBS, 2005년 8월 5일)

이후 2016년 5월 미국의 오바마대통령이 미국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평화기념식에서 연설을 했다. “71년 전 섬광과 불꽃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엄청난 죽음이 덮쳤다”면서 “다시는 그런 악마같은 참상이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역시 원폭투하에 대해서는 사죄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미국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 계획을 일본이 몰랐다고 알려져 있지만 ①일본은 원폭투하 2개월 전부터 데니안섬에서 훈련중이던 B-29에 대해 감청 중이었고, ②나가사키 원폭투하는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 NHK 방송을 통해 밝혀졌다.

2012년 8월 6일 ‘NHK 스페셜(활용되지 못한 극비정보)’(NHKスペシャル 原爆投下 活かされなかった極秘情報) 에 의하면 2차 세계 대전시 일본군은 미국의 전파를 육군 특수 정보부에서 도청했다.

이 부대는 원폭투하 2개월 전부터 데니안 섬에서 활동을 개시한 특수임무기의 활동을 추적하였으며, 통신첩보의 대부분은 암호화되어 해독이 불가능했지만 두문(頭文)은 암호화되지 않아 발신자 Call Sign으로 확인됐다. 당시 사이판의 Call Sign은 ‘V4xx’, 괌은 ‘V5xx’, 데니안은 ‘V7xx’이었는데 이제까지 없던 소수의 ‘V6xx’가 활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폭 투하 당일인 8월 6일, 통신첩보를 통해 ‘V675’의 B-29가 히로시마로 향하고 있다는 무선내용을 입수하였는데, 육군은 이를 기상정찰기로 간주하고 방공 경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히로시마 원폭투하 후인 8월 8일, 특수정보부는 데니안 특수임무기 Call Sign을 식별하였던 감청사 다나카 대위를 표창했다. 즉, 이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는 것이다.

8월 9일 새벽 히로시마 원폭투하 때와 동일한 Call Sign인 V675가 또 다시 활동했고, 이 신호를 감청한 감청사 오오타 중위는 참모본부 이노우에 중령에게 보고했고, 이는 육군 참모총장에게도 보고됐다. 하지만 이때 일본전쟁지도부는 항복여부에 대한 회의가 진행중이었고 나가사키 원폭투하는 그대로 방치됐다.

결론적으로 ①일본은 히로시마에 대한 공습경보 등을 내리지 않아 인근 방공호로 대피를 못한 일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을 입었다. ②적어도 나가사키원폭은 사전에 대비할 수 있었다. ③패전 직전 일본은 정보를 모두 불태웠지만 고령이 된 관계자들의 증언 덕분에 일부가 공개되고 있는데, 방위연구소 전사부 이노우에 중령의 비망록에는 “특수폭탄 V675 통신상 사전탐지, 나가사키 폭격 5시간 前”이란 기록으로 보존중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dDxlMAvr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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