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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프로야구] 세월의 무게 넘어 달성한 통산 100승, 두산 유희관

칼럼니스트 지후니74 승인 2021.09.21 12:15 | 최종 수정 2021.09.23 09:16 의견 0

정규 시즌의 막바지로 접어든 2021 프로야구에서 의미 있는 기록이 달성됐다. 두산의 베테랑 좌완 유희관이 통상 100승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두산의 프랜차이즈 선수이기도 한 유희관은 9월 19일 키움전에서 6이닝 6이닝 6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의 선발 호투와 함께 시즌 3승에 성공했다. 유희관에게는 시즌 3승과 함께 통산 100승이 달성된 순간이었다. 5월 9일 KIA 전에서 통산 99승에 성공한 이후 거의 5달 만의 승리이자 100승의 완성이었다.

그만큼 유희관의 올 시즌은 험난했다. 2020 시즌 후 유희관은 FA 자격을 얻었지만, 계약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시점에 두산과 가까스로 계약에 성공했다. 2013 시즌부터 2020 시즌까지 8시즌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두산의 대표적인 선발 투수로 활약했던 그였지만, 시장의 반응의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의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원 소속팀 두산 역시 주력 선수들의 다수 FA 자격을 얻은 탓에 유희관의 계약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이런 시장 상황에 유희관은 그동안의 커리어와 좌완 선발 투수라는 장점이 반영되길 기대했지만, 상황은 그에게 호의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유희관의 선택지는 두산 외에 없었다. 두산의 조건에 따르는 것 외에 선수 생활을 지속할 길이 없었다. 결국, 유희관은 보장금액보다 옵션이 훨씬 더 많은 1년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시장은 유희관이 이루어놓은 실적보다는 미래 가치를 더 중요시했다. 유희관은 130킬로 정도의 직구로 한때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 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2015 시즌에는 18승, 2016 시즌에는 15승을 달성하며 최 전성기를 열었다. 그 시점은 두산이 왕조 시대를 열어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 두산에서 유희관은 주축 투수였다. 만약 그 시점에 유희관의 FA 자격을 얻었다면 대형 계약의 주인공이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출처= 두산 베어스 홈페이지)

이후 유희관은 점점 급격한 내림세를 보였다. 매 시즌 10승 이상을 기록하긴 했지만, 방어율 등 세부 지표에서 적신호가 보였다. 구위로 타자를 압도하는 유형이 아닌 만큼 나이에 따른 에이징 커브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던 유희관이었고 특별한 부상도 없었지만, 상대 팀들이 그에 대한 공략 해법을 찾았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유희관이었지만, 점점 평범한 투수가 됐다. 그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그 입지는 갈수록 줄었다. 그렇게 30대 중반을 넘어선 FA 투수는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의 기록에는 넓은 잠실 홈구장의 이점에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 능력을 자랑하는 소속팀 두산의 프리미엄이 더해졌다는 의견이 많았다. 세월의 흐름을 그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21 시즌 유희관은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그런 의지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시즌 초반 유희관은 5선발 투수로 시작했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이닝 소화능력도 떨어졌고 방어율 등 세부 지표도 1군 선발 투수로는 부족했다. 두산은 4, 5선발 투수 자리에 고민이 있었고 유희관이 그중 한자리를 채워주길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FA 계약이 늦어지면서 시즌 준비 기간이 부족한 부분도 영향을 주었지만, 날카로운 제구와 타자의 허를 찌르는 볼 배합과 경기 운영 능력으로 버텼던 그의 투구가 통하지 않았다. 느려서 강했던 유희관이었지만, 이제는 느려서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유희관은 시즌 중 2군에서 조정기를 거쳐야 했다. 프로 데뷔 후 그에게는 매우 낯선 경험이었다. 그 기간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두산은 불안한 선발 투수 자리를 채울 투수로 젊은 투수들을 먼저 선택했다. 유희관은 2군에서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유희관으로서는 조급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 기다림이 그를 지치게 하고 스스로를 내려놓게 할 수도 이었다.

하지만 유희관은 후반기 다시 1군 선발 로테이션에 이름을 올렸다. 두산이 부활을 기대했던 우완 에이스 이영하가 좀처럼 제 페이스를 찾지 못하면서 두산은 선발 로테이션을 재편해야 했다. 이영하는 불펜으로 이동했고 신예 곽빈과 김민규 등이 선발 투수 로테이션에 들어왔다. 그리고 채우지 못한 자리를 유희관이 채웠다. 유희관으로서는 자칫 올 시즌 채울 수 없었던 통산 100승의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었다. 투구 내용도 전반기보다 뛰어났다.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9수에 걸리는 듯 보였지만, 유희관은 9월 19일 그의 커리어에 있어 너무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유희관의 통산 100승은 두산 프랜차이즈 좌완 투수로는 최초의 기록으로 구단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유희관은 통산 100승 달성과 함께 후반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 치열한 순위 경쟁 속에서 한 명이 투수가 아쉬운 두산이다. 유희관이 선발 투수로 일정 역할을 한다면 불펜진의 부담을 덜 수 있기도 하다. 두산의 불펜진은 후반기 다소 힘이 떨어진 느낌이다. 4, 5 선발 투수 쪽에서 이닝 소화능력이 떨어지면서 불펜진에 부하가 커진 것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중 한자리에서 이닝을 더 소화해 준다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이는 가을 들어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두산의 질주에 탄력을 더할 수 있다.

두산은 4, 5위권 경쟁을 하고 있지만, 최근 10경기 6승 3무 1패의 호성적으로 5할을 밑돌던 승률을 크게 끌어올렸다. 3위도 한 번 노려볼 수 있는 희망도 생겼다. 그렇지 않더라도 두산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만 한다면 미란다, 로켓, 최원준의 강력한 선발 투수 3인에 뛰어난 구위의 투수들이 즐비한 불펜진이 있어 단기전 경쟁력이 뛰어나다. 가을에 더 힘을 내는 베테랑들이 즐비하다. 시즌과는 전혀 다른 팀이 될 수 있는 두산이다. 유희관이 통상 100승을 기점으로 일정 역할을 해준다면 마운드의 새로운 옵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히 유희관이 과거 18승 투수의 모습을 재현하는 건 어렵다. 세월의 무게는 여전히 그를 짓누르고 있다. 매 경기 기복이 한 층 더 심해질 수 있는 나이다. 포스트시즌 엔트리 진입도 장담할 수 없다. 지난 시즌 유희관은 포스트시즌에서 선발 등판 후 1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물러난 경험이 있다. 유희관은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카드다. 그의 컨디션이 최고일 때 마운드에 오른다면 경기 흐름을 달라지게 할 여지는 남아있다.

유희관은 야구 외에 타 구기 종목에도 재능이 있고 타고난 예능감에 입담도 있다. 프로 스포츠에서 필요한 엔터테이로서의 자질도 있다. 느린 공으로 리그 최고 수준의 투수로 올라선 독특한 이력도 있다. 그렇게 유희관은 독특한 캐릭터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쌓인 그의 승리 기록은 통산 100승의 결과로 이어졌다. 최근 크게 떨어진 위상과 함께 100승 달성이 위태로울 수 있었지만, 유희관은 다시 1군 선발 투수로 돌아왔고 중요한 목표를 이뤘다. 최근 그의 투구 내용을 떠나 큰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결과다.

통산 100승의 유희관이 앞으로 그의 선수 이력에서 얼마나 더 많은 승수를 쌓을 수 있을지 사그라들어가는 선수 생활의 불꽃을 얼마나 더 태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올 시즌 후 은퇴의 길을 걸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도전에 나설수도 있다. 얼마전까지 유희관은 전자의 가능성이 컸지만, 통산 100승은 새 가능성을 열어줄수도 있다. 시즌 후 어떤 일이 생기든 유희관의 올 시즌 두산에서 해야 할 역할이 남아있다. 또한,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경력도 끝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칼럼니스트 지후니74 /출사를 즐기며 프로야구 롯데를 응원하는 소시민
※필자와의 협의하에 본명 대신 아이디로 필명을 대신합니다.
※본 칼럼은 필자의 블로그에도 동시연재중입니다. (https://gimpom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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