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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_이야기(1)] 기본소득이라는 ‘공유부’

칼럼리스트 박대선 승인 2021.10.18 15:47 의견 0

연일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재난상황을 미디어가 보도합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에게 공통의 감각이 있다면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견딜만하다고 얘기했던 사람들이 점점 견디기 어렵다고 합니다. 1년에 600억 마리 닭뼈와 셀 수 없는 플라스틱 섬, 높아지는 수위에 따른 방사능 오염물이 지구에 흔적을 남기고 인류의 세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기본소득은 일정 금액(현금)을 정기적으로 각 단위에 속한 누구나에게 조건 없이 직접 지급합니다. 인권, 젠더, 복지, 사회정의, 4차 산업혁명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필요성을 드는데, 땅이나 물, 공기, 나무처럼 생각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그저 생존에 필요한 마스크 한 장에 기본소득을 비유해봅니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 한 모금,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글 한 줄, 갇혀서 일하는 이에게는 손바닥하늘일 테지만 저는 이 갈증이 제대로 해소되기엔 현 문명이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딛고 설 땅 하나가 없어서 목숨을 끊는 분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이에 ‘공유부’ 운동을 아이디어로 제시하고 싶습니다.

‘공유부’란 “국가가 모든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공적 소유’ 즉 퍼블릭 오너십(public ownership) 개념과 달리 커먼 오너십(common ownership)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치나 국가예산 이야기를 떠올리겠지만, 당장 모두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지역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공유부’가 있습니다. 빨래터, 모정 등이 그 예입니다. 가족에게 둘러앉은 식탁, 부부라면 결혼기념일과 선물, 옛 추억, 마을이라면 두레, 기금(통장) 등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빨래터와 모정을 현대 정부는 어떻게 인식하고 무엇을 하고자 하나요? 애석하게도 개개인의 노력으로 불공정, 불평등한 문명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입니다. ‘생존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소득’을 정부가 보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요즘 기본소득을 떠드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명이 만들어놓은 해법이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인재상황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걱정이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피차 기대어 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동안 기만을 통해 생존해 왔음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자꾸 마음이 가라앉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돌파할 수 있고 기만 또는 기망이라는 괴물에게 잡혀먹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실질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현재 정부에서 일괄 현금으로 환산해 지급하자는 기본소득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과 이어진 세계의 불평등 문제도 떠오릅니다. 여전히 실질적 자유가 소수의 특권으로만 남는 이 문제야말로 사회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성은 교집합에서 시작합니다만 역으로 관계가 없다면야 기본소득이나 공유부는 불가능합니다. 사실 그뿐이겠습니까? 복지 정책이나 교육은 무슨 소용일까요? 왜 이른 아침부터 부랴부랴 출근을 하며, 밤늦도록 학원가는 곳곳이 불야성인가요? 주거, 연애, 이웃을 포기하면서 그래야 하는 걸까요. 국가나 사회가 나를 지켜줄 수는 없겠지만 기왕에 사회와 국가가 존재한다면 ‘나’라도 사회를, 정부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사람이기에, 작은 권리이기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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