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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집엄마 이야기(2)] '까페 휴'와 '섬집엄마' 그 사이 이야기

윤준식 기자 승인 2021.11.02 02:32 의견 0

2018년부터 4년째 남해의 섬 마을을 찾아가는 공연을 하고 있는 <달다방 프로젝트>. 섬을 찾아 이야기를 채록하고, 주민들과 함께 연극을 기획하고 공연하기까지 모든 이야기를 팟캐스트를 통해 전해드립니다.

정부지원 사업인 '신나는 예술여행'이라는 프로젝트를 활용해 공연을 보기 힘든 낙도를 찾아가는 시도를 하고 있어 균형발전과 로컬 활성화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번 2회는 <섬집 엄마>라는 작품이 나오기까지 진행된 연극 실험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섬집 엄마> 연습장면 (달다방 프로젝트 제공)


시사N라이프 윤준식 편집장 (이하 ‘윤’): 지금 꽹가리 소리도 나고 뭔가 좀 배우들이 막 달리는 소리도 나고요. 뭔가 좀 신나고 흥겨운 느낌이 나는데요. 이 연극은 학교 운동장 같은 데서 해야 되는 연극이 아닐까 싶은데요?

달다방 프로젝트 김정아 대표 (이하 ‘김’): 저희가 야외극으로 만들고 있어서 악기소리나 이런 것들이 라이브로 연주가 돼요. 보통은 악사들을 모시고 다니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인데 저는 ‘배우의 의한, 배우를 위한, 배우의 공연’을 만들고 싶은 거죠.

윤: 요즘 ‘악사’라는 표현 잘 안 쓰는데 악사라는 말 정말 오래간만에 들어봅니다. 지금 어떤 연극 준비하고 계시나요?

김: <섬집 엄마>라고 해서요.

윤: 이게 제가 말씀드렸던 그 작품인 거군요.

김: “문화예술의 분포 밀도가 비슷해야 된다”는 말씀으로 연결하신 그 작품이에요. 저희가 섬마을 돌아다니는 공연이고 “이왕이면 그분들의 이야기로 공연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2018년에 창작 초연을 했고요. 그 이후 3년 동안 섬마을을 돌아다녔었고, 올해는 섬마을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매칭형’으로 임대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진행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공연은 섬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로 만든 작품이어서 섬마을 어른들은 내 얘기가 무대 위에서 펼쳐지니 당연히 반응들이 다르겠죠? 이밖에도 저는 배우들 같은 경우에도 섬을 경험하는 것과 경험하지 않는 것은 배우의 감성적 연결고리에 굉장히 큰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어요.

저희를 도와주고 계신 분께서 작년에 후원을 해주신 금액이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금액을 좋은데 잘 써야 되는데 언제 쓸까 하고 묵혀둔 상태였거든요. 근데 올해는 주신 돈으로 그러면 저 한번 가보자 해가지고, 지금 섬마을 공연 1회를 준비 중에 있어요. 지금 그 연습을 하고 있는 거죠.

윤: 2018년도 공연이 <섬집 엄마>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달다방 프로젝트> 얘기 첫 번째로 <카페 휴>를 2013년에 공연했다 하셨는데, 그러면 2013년 이후로 2018년까지 한 5년 정도의 시간 동안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신 건가요?

김: 제가 배우예요. 그래서 사실은 캐스팅이 돼서 제가 움직이는 작업들을 해야 되는 사람인 거죠. 그러다가 2015년에 저희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하는 DIY 같은 건데 그러니까 ‘너네들 공부해 공부하는 거에 지원을 좀 할게.’ 뭐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판소리에 보면 ‘아니리’라고 있잖아요.

윤: ‘아니리’, ‘발림’, ‘추임새’ 이런 거 말이죠?

김: 근데 ‘아니리’를 분석을 해보면 우리나라의 장단음이 잘 들리게 구성이 되어 있어요.

윤: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 무대 위에서 객석까지의 전달력을 위한 말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이 ‘아니리’ 때문에 국악을 하신 분들이 연극으로 넘어오게 되면 “화술에 ‘쪼(조를 강조한 표현 - 조調; 곡조)’가 있어. 그래서 그거 말처럼 안 들려 말처럼 펴!” 이렇게 얘기하시거든요? 그런데 그 ‘쪼’가 어쩌면 ‘1 화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윤: ‘1 화술’이라는 건 또 뭘 의미하는 건가요?

김: 화술이라고 하는 건 어떤 규정된 말하기의 방법을 배우잖아요? 그런데 “한 사람에겐 한 사람의 화술이 있다”다는 의미예요.

윤: 아. 그래서 ‘1 화술’이라고?

김: “1인 1화술이라는 걸 접목시켜 우리가 한 번 해보자”고 해서 화술 선생님으로 정말 잘하시는 선배님 한 분을 모시면서 ‘아니리’의 구조를 공부하고, 우리나라 장단 공부를 하고, 화술 공부를 해서 현대극에 얹어보는 작업을 해 본 거죠. 그때 연출님이랑 <왈츠로 움직이는 여배우, 탱고로 움직이는 남자 배우>로 2인극을 한번 만들었고요.

진행을 하면서 “나는 이걸 좋아하는 애였구나. 우리나라 가락이랑 리듬이 배우의 움직임에 들어가 있는 작업들을 좋아하는 애였구나. 관객과 노는 걸 좋아하는 애구나” 이런 거를 확신한 거죠.

2015년 진행된 신 프로젝트 (달다방 프로젝트 제공)


윤: 여기까지 들어보면 <달다방 프로젝트>가 회사 조직이 아니라, 말 그대로 프로젝트였던 거네요. 그러니까 <달다방으로 오세요> 연극을 올리기 위한 프로젝트였던 것... 2012년과 2013년에 <카페 휴> 공연이 끝나고 난 후, 그 프로젝트는 동면 상태에 들어가고 그때부터는 배우 김정아로서의 삶을 살고 있으셨던 거네요. 이어 2015년 워크숍 얘기를 하셨는데, 뭔가 계기가 되니까 그 얘기를 꺼내신 거 같아요. 2013년에서부터 2018년 사이에 딱 중간이네요. 2015년이면?

김: 2016년, 2017년도에 저희가 <술래야 놀자>라고 하는 작업을 했었어요. 그 작업은 통영의 이야기를 가지고 공연을 만든 거였는데, 그때 연출님이랑 작가분들이랑 시도했던 게 우리나라 전통 놀이를 무대 위의 막과 막 전환에 써보면 어떻겠냐?

윤: 오, 신기하네요.

김: 그런 시도를 2016년에 <술래야 놀자>라는 작품으로 했어요.

윤: 어떤 전통 놀이가 막과 막 사이에 들어가게 되는 건가요?

김: 지금 이게 <섬집 엄마>에도 들어갔는데, ‘우리 집의 왜 왔니?’라든가 ‘술래잡기’라든가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이런 것들이 이제 들어가죠. ‘고무줄 놀이’도 들어가고... 어찌 됐든 광대 놀음이라고 하는... 막과 막의 인물이 바뀌잖아요? 외국에서는 ‘게스트스’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갑자기 모자 하나 딱 쓰며 갑자기 할아버지 되고, 선글라스 딱 끼며 심봉사 가 되고 그러잖아요? “그런 걸 하기 전에 놀이성을 좀 넣어보면 어때?”라는 걸로 시도해 봤었던 거예요.

https://www.youtube.com/watch?v=Vp9IsD10iSk

윤: 소위 멀티 배우들이 극중 조연이나 단역을 그렇게 하잖아요?

김: <카페 휴>때 ‘휴’라고 하는 정령이었었던 남자 배우를 기억하세요? 그 친구가 11명의 멀티 연기를 했었어요.

윤: 그랬나요. 왜 기억이 안 나지?

김: 바리스타 역할을 한 사람과 ‘휴’가 같은 인물인지 다른 인물인지 잘 모르게 했기에...

윤: 바리스타 이름이 ‘휴’가 아니라 ‘휴’라는 존재가 따로 있었던 거군요.

김: 인형의 정령으로 ‘휴’가 따로 있었고, 제가 역할을 했었던 그 바리스타는 꿈을 쫓는 아르바이트생이었었죠.

윤: 멀티 배우로 유명한 작품이 <김종욱 찾기>잖아요? <김종욱 찾기>가 배우 3명으로 돌아가는 아주 가성비 좋은 대학로 환경에 딱 맞는 청춘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인데, 남녀 주인공 빼고 남자 배우 한 명이 배역 30여 개인가를 소화하잖아요? 저도 <김종욱 찾기> 한 번 봤는데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카페 휴>에서도 ‘휴’ 역할의 배우가 11가지 배역을 맡아서 했던 건데 그게 또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술래야 놀자>에도 녹아 들어가서 또 뭔가를 고민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던 거네요?

김: 저는 배우가 한 역할로 깊게 표현해 내는 것도 즐겨요. 그런데 제가 하는 공연들... 제가 막 표현하고 싶은 공연들은 열심히 잘 노는 공연인 것 같아요. 배우가 ‘샥샥샥샥’ 바뀌는... 여성도 했다가 남성도 했다가 할아버지도 했다가 할머니도 했다가 애기도 했다가...

윤: 연극을 ‘플레이(Play)’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배우도 플레이-놀 수 있는 극을 선호하신 거군요?

김: 이왕이면 “만들 때 그런 공연들로 만들자”는 길로 가고 있다가 제가 <극단 초인>에서 몸 쓰는 공연을 계속하는 배우로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2017년도 11월에 연습을 하다가 십자 인대가 끊어진 거예요. 수술 때문에 병원에 눕게 된 상황이 된 거죠.
그런데 그 해 한국 문화 예술위원회에서 <신나는 예술 여행>이라는 공모가 나왔는데 ‘발굴형’이라고 해서 섬 마을, 도서 지역을 가는 공연을 만들도록 하는데 “섭외도 너네가 해”라는 공모가 나온 거예요.

윤: 섭외한다는 게 뭘 말하는 거죠?

김: “공연 장소, 그리고 공연 장소에 담당자들과의 소통 이런 것까지 한 번 해봐. 문화예술단체가” 그래서 그걸 지원하게 된 거예요. 누워 있으면서 기획서를 쓴 거죠.

근데 제가 2007년도에 <극단 벅수골>이라고 통영에 있는 극단에 배우로 불려갔었어요. 그러면서 섬마을 공연을 했었거든요?

2018년에 지원한 신나는 예술여행 지원사업. 이때는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라는주제로 진행했다. (달다방 프로젝트 제공)


윤: 섬마을 공연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전에도 있긴 있었던 거네요.

김: 네, 꾸준하게 있었어요. 어찌 됐든 나라에서는 문화 정책으로 지금 말씀하신 낙후된 지역, 혹은 소외된 지역들의 소통을 위해서 애를 쓰고는 있어요. 열심히들 하고 있다고 봐요.

잠깐 딴 데로 세는데, 그게 올해 섬마을 지원이 끊긴 이유 중 하나예요. 지원사업이 너무 많아서. 너무 많은 지원이 섬마을로 가서... 저희도 진행 전에 사전답사를 가잖아요? 처음에는 “(경상도 사투리) 내, 연극 처음 봤다!” 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근데 두 번째 세 번째 해 갔을 때, 특히 관광객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데는 1년에 열 번도 넘게 하는 거예요. 여러 단체들이 막 와가지고... “그저께도 왔다”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기획재정부에서 “너무 한쪽으로 몰린다. 지역 지원은 지역 예술진흥원에서 지역 지원을 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매칭형으로 다른 쪽을 진행했으면 좋겠다 해서 분리가 된 거죠. 뭐

그래서 누워서 그 기획서를 쓰게 됐고, 그게 돼서 2018년도에 연출님이랑 같이 섬 마을 답사를 다니며 어른들의 이야기를 채록 해 그 이야기를 가지고 공연을 준비해 진짜 공연을 만들어서 다시 내려가는 작업을 하게 된 거죠.

윤: 중간에 두 번의 어떤 연극 실험 이야기가 있었어요. 무대 위에서 전통 놀이로 막과 막 사이를 연결해 보는 그런 실험을 한 것과 그 다음에 이제 워크숍 공연 있었잖아요? 그 두 가지가 지금 하고 계신 <섬집 엄마> 작품하고도 연관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카페 휴>에서 <섬집 엄마>로 넘어오는 중간 지점에 그게 있었던 거고, 작품을 구성하는 거로써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 거고요.

그 다음 또 다른 계기로 십자 인대가 파열되어 배우 생활을 못하는 동안에 정부지원 사업을 거치며 외딴 섬들을 돌아다니는 공연 쪽으로 준비를 하게 됐다는 이야기.... 짧은 시간 안에 그 두 트랙의 이야기가 같이 동시에 나오며 이야기가 조금 방향을 잃었던 것 같아요.

김: ‘놀이’나 ‘아니리’로 극을 만들어 가는 데는 예술가가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고, 또 다른 예술가가 또 다른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 구조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예술가는, 창작자는 성장을 해 나가는 거고요.

지금의 저는 그 안에서 “취향이라는 거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선을 그은 상태인 것 같아요. 천재성을 갖고 태어나는 예술가, 창작자들이 있겠지만, 저희는 경험을 통해 어떤 경험이 내 몸에 묻었을 때 즐겁고 행복한 것들로 조금 더 크게 발현되는 것들이 있어요. 어찌 됐든 그게 ‘놀이’였었던 것 같아요.

통영의 이야기를 가지고 공연을 하나 만들어보는 걸 제안을 받았을 때, 저희 연출님이 방향성을 제안했고, 저는 자료 조사부터 같이 공동 창작을 진행을 했는데, 그때 되게 많은 실험을 했었어요.

연습시간에 노는 게 반이었어요. 8시간을 연습을 하면 4시간을 놀았어요. ‘말뚝 박기’에서부터 시작해 “어릴 때 놀았었던 거 다 갖고 와 봐”해 가지고 ‘공기놀이’, ‘줄넘기’, ‘고무줄 놀이’, ‘땅따먹기’ 이런 것들을 시도하면서 막과 막을 전환할 수 있는 놀이가 뭐가 있을까를 실험했었던 거죠.

이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배우가 인물을 잊고 놀아요. 인물을 입고 놀아야 되는데, 자꾸 배우가 아닌 김정아가 막 놀게 되는 거예요.

윤: 그러니까 극중 배역으로서 노는 게 아니라, 김정아가 놀고 있는 게 돼버린 거네요.

김: 첫 시도였기 때문에 그런 실수들이 좀 많았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섬집 엄마>에서 배우들이 광대로서 인물을 입고 놀아야 되는데 자꾸 자기들이 놀거든요. 이 경계 안에서 저희가 훈련을 계속해서 해 가고 있는 거죠.

그리고 ‘아니리’ 같은 경우에는 마당극처럼 야외에서 하는 공연은 매체 연기와 다르게 전달력이 조금은 다른 것 같아요. 배우의 ‘통소리’를 무대 끝까지 던져야 되고, 저기 계신 분을 (아니리로) 이리로 모시고 와야 되고 그러기 때문에... 조금은 연기술이 ‘매체 연기와 다른 작업으로 말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것들은 사실 되게 어렸을 때부터 접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새롭지는 않지만 저희가 다시 인식하고 형식화하는 거에서 조금은 우리 극에서의 형식을 세밀하게 약속해 가는 작업들을 하고 있는 거죠.

윤: 그러면 그런 워크숍을 통해서 그게 적용된 게 있는 건가요?

김: <섬집 엄마> 같은 경우에는 광대들이 엄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엄마가 꿈을 찾았었던 10대, 막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20대,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는 30대... 이걸 광대들이 엄마로 변해서 진행을 하는데...

술래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면 엄마 역할은 누가 할 건데? 가위-바위-보 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우리 집에 왜 왔니? 왜왔니? 가위-바위-보!” 해가지고 술래가 잡히죠. 술래로 잡힌 사람이 엄마 역할을 해요.

그러다가 “나 엄마 도저히 못하겠다고! 힘들다고! 그래서 나 그만 할래!” 그러면, “술래를 바꿔” 그래가지고 다음에 다른 놀이를 하죠.

윤: 그러면 극중극 느낌이 나도록 연출이 되는 거? 이거 꼭 봐야 되겠네? 연기가 이루어지고 있다가 갑자기 배우들이 그 배역에서 빠져나오면서 “나 이제 이 역할 안 할 거야”라고 하면서 역할을 이어갈 사람을 찾아가는 방법으로 이런 전통 놀이를??? 그러면마당놀이와 똑같이 경계가 희미해지는 거네요. 놀이를 통해서 배역을 정할 때는 극에서 빠져나온 거잖아요?

그래서 1막과 2막이 끝났다... 그러니까 놀이를 중간에 등장시킴으로써 무대 설비가 바뀌지 않는데도 관객은 이야기가 하나가 끝났고, 다음 얘기로 넘어간다는 걸로 자연스럽게 무대로부터 멀어질 수 있도록 해주는 거네요. 이야~ 재밌네요. 점점 흥미진진해지는데...?

그 다음 ‘아니리’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섬집 엄마>하고 연결되나요?

김: 김선미 선생님이라고 저하고는 동갑내기 친구인데, 배우로서 고민이 많았어요. 창극을 하는데, 창극하는 친구들이 일반극으로 넘어오게 되면 그 말투가 너무 이상한 거예요.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서로의 고민을 막 이렇게 얘기하다가 “나는 그게 특이해서 따라하려고 그래도 따라할 수가 없는 말투인데, 그 말투를 살려서 하면 얼마나 좋아? 살릴 수 있는 역할을 만나면 되지?”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그러다가 “그러면 이걸 같이 공부를 한번 해보자” 그래서 워크숍을 했었던 거죠. 배우들의 말투가 조금 더 확장성을 갖게 되면서 ‘아니리’ 쪽으로 말을 하게 돼요. 우리나라 말의 말도 사실은 그냥 이렇게 평이하지 않거든요.

https://www.youtube.com/watch?v=mKJzZCsL0e4

윤: 예전에 성조가 있었다고 그러잖아요? ‘훈민정음’ 보면 점 찍혀 있는 것들이 성조를 말하는 거잖아요?

김: 이거는 지금 ‘말모이 연극제’에서도 많이 시도하고 있는 건데, 우리나라의 음가가 살아 있는 것들을 들어보려면 사투리 연구를 하라고 그래요. 사투리에는 아직도 되게 많이 살아있거든요.

윤: 말투의 높낮이로 경상북도 사람이냐, 경상남도 사람이냐 지역을 알 수 있다고.

김: 저는 서울 촌사람이어서 따라하려면 노래처럼 열심히 들어서 음가를 따요. “언니, 네가 그때 그랬다 아이가?”, “그때 그랬다 아이가”의 음가를 따 가지고 외우거든요. 원래 그 지역에서 살았었던 사람들은 그 리듬과 템포로 말하는 거죠.

다행히도 요즘에는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하게 되었고요. 예전에는 표준말 못하면 똥배우 취급당했거든요? 배우가 말도 못한다 그러고... 지금은 특기로 사투리 있는 사람을 뽑아요. 그 정도로 이제 인식이 전환이 많이 됐다고 생각해요.

무대 언어는 매체 연기하고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압축이에요. 인생 20년을 살아내는 거를 1시간 안에 압축해서 보여줘야 된다면, 분명히 그 안에는 압축과 과장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것들을 말로써도 표현할 수 있게, 그리고 말과 몸이 붙을 수 있게...

예를 들어 매체 연기에서는 화가 난다면 얼굴 근육을 쓴다면, 무대 연기 같은 경우에 몸까지 같이 가줘야 되거든요. 그래야 관객들이 입체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 연극을 계속 하려면 말과 몸짓이 붙어 있는 행위가 붙어 있는 연기술을 조금 더 붙여보자...

윤: 그게 <섬집 엄마>로 오게 된 이유를 이제 이해가 됐습니다. 왜냐하면 <섬집 엄마>가 소위 낙도, 외딴 섬... 각 지역에서도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있는 분들이잖아요? 사투리가 격할 정도로 살아있는 지역들이잖아요. 거기에서 공연을 하는데 그 언어에 대한 연구, ‘아니리’의 연구가 도움이 된 거군요? 이제 연결이 됐습니다.

그리고 마당극 구조로 넘어가도록 도와준 게 ‘놀이’를 극과 극 사이 연결점에 썼다는 것... 섬과 같은 곳에서 무대가 갖춰지지 않은 경우에는 야외에서 해야 되니까. 사진 보니까 방파제에서 연극하신 것도 봤거든요. 그게 그 두 가지 기술적인 것들이 바탕이 되어 <섬집 엄마>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거군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이 바다를 무대로 한 극을 구현했고, 외딴 섬을 대상으로 한 공연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달다방 프로젝트 제공)


김: 배우로 캐스팅돼 경험했었던 것들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그대로 그냥 머문 상태로... 저는 그게 아쉬운 거죠. 야외에도 무대를 세워요. 그래서 배우가 ‘야외성’을 그대로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섬집 엄마> 같은 경우에는 바다가 무대여야 해요. 무대의 배경이 반드시 바다 쪽이어야 해요. 그걸 살려줄 수 있는 무대 구조를 갖고 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무대 배경으로 프레임을 갖고 오게 되었고요...

섬에 들어갔는데 그 섬의 그 풍경들이 무대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만들어져 있는 공연을 가져가면, 가져간 사람들도 힘들고... 사실 교통편도 안좋은데 이고지고 너무 많은 것들을 들고 가야 되거든요. 그런 것도 좀 힘들고 그래서... 이왕이면 “그 지역 그대로, 그 풍광 그대로, 그 소재 그대로를 살릴 수 있는 것들을 무대 위로 녹여보자”는 고민을 많이 했던 거죠.

근데 사실은 더 많이 덜어내고 가도 되는 공연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짐이 1톤 트럭 분량이어요. 더 덜어내서 저희 안에 어떤 영감으로 정말 그 지역에 그 돌이, 그 바위가, 그 방파제가 무대 위로 올라올 수 있고, 그게 무대가 될 수 있는 상상력을 구체화해냈으면 좋겠어요. 해가 갈수록 그 고민을 계속 하긴 할 건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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