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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독일에서 한국어 강좌 개설되었다는 독일 정부 문서 공개돼

영화 <말모이> 실존인물 이극로 선생, 독일 훔볼트대 유학 중 독일 문교부 설득해 유럽 최초의 한국어 교육 시작

윤준식 기자 승인 2019.10.09 02:01 의견 0
영화 <말모이>의 윤계상 배우. 주인공 류정환의 모델이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이다.

영화 <말모이>에서 배우 윤계상이 연기한 주인공 류정환의 실존 모델인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고루 이극로(1893~1978) 선생이 1923년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에 한국어강좌를 개설한 적이 있다는 독일 정부의 공식 문서와 관련기록이 공개됐다.

국가기록원은 이극로 선생이 독일유학 중이던 1923년, 당시 프리드리히 빌헬름대학이었던 훔불트대학에 유럽 최초로 개설한 한국어강좌 공문서와 자필서신 등을 일반국민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국가기록원이 지난 2014년 독일 국립 프로이센문화유산기록보존소에서 수집한 기록물 6,715매 가운데서 발견한 것으로 앞으로 번역 과정 등을 거쳐 공개될 예정이다.

독일에서 수집한 기록물 중에는 1868년 발생했던 독일인 오페르트의 남연군묘 도굴사건 보고서, 한국주재 독일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정세보고서 등 19~20세기 초 한국 정치·경제·외교 관련 기록물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 공개된 기록물 11매 가운데 5매는 공문서로 훔볼트대 동양학부와 독일 문교부, 이극로 선생이 한국어강좌 개설을 놓고 주고받은 내용이다.

과학예술교육부 장관님 귀하: 이극로는 첨부한 서신과 함께 다음 겨울 학기 동양어 세미나에서 주 3회 그의 모국어인 한국어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교육부의 허가를 부탁하였습니다. 제 정보가 맞는다면 한국어는 독일의 학문뿐 아니라, 독일의 한국과의 무역 관계에 있어서도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이익이 되고, 이극로가 무보수로 강의를 진행한다고 하였으므로 그의 제안을 지지하는 바입니다.  (국가기록원 제공)

이에 따르면, 1923년 8월 10일 훔볼트대 학장대리가 독일 문교부 장관에게 한국어강좌 개설허가를 요청했고, 같은 해 8월 31일 이를 허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극로 선생의 요청으로 유럽 최초로 훔볼트대에 한국어강좌가 개설됐음을 입증하는 귀한 증거물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극로 선생이 1922년 훔볼트대 철학부에 입학해 몽골어를 수강하던 중, 동료 학생들에게 틈틈이 한국어를 가르치곤 했는데 동료들이 대학 측에 강좌개설을 건의하면서 한국어강좌가 성사됐다고 보고 있었다.

지난 2007년 이 기록을 발굴해 낸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장은 “이 떄의 경험으로 경제학 박사였던 이극로 선생이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맡아 <조선어 큰사전> 편찬을 주도하고, 주시경과 함께 한글사업을 완수한 어문운동가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기록은 96년 전 이미 유럽인을 대상으로 한국어강좌가 있었음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독일 학계에 알려진 1952년 한국어강좌 최초 개설을 29년이나 앞당긴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외국인 사무처와의 합의를 통해 이극로가 다음 겨울 학기의 동양어 세미나에서 주당 3회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허가한다. 이에 대한 보수는 그에게 약속 할 수 없다. 강의 참여에 대한 내용은 1923년 3월 초의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한편 나머지 6매는 이극로 선생이 타자기로 작성한 문건 2매, 자필 편지 2매, 기타 다른 문건의 초안으로 추정되는 2매다.

타자기를 이용해 이극로가 직접 작성한 기록은 1925년 1월 30일 동양학부 학장에게 보낸 서신과 자기소개서로, 한국어는 2천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동아시아의 세 번째 문화어이자 문자가 독특해 실용적이면서 언어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극로 연구를 계속해 온 경희대학교 차민기 박사에 따르면 “이극로 선생이 유학한 훔볼트대는 언어학을 기반으로 설립된 대학이어서 언어를 민족구성의 중요 요소로 여겼다”며 “이런 학풍의 영향과 한국어 강의경험이 민족운동으로서의 어문운동에 투신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차 박사는 “학업을 마친 이극로 선생은 프랑스와 독일의 음성실험실로 가 한국어 음성실험 피실험자로 직접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한국어 음성학 이론의 기틀을 마련했고, 해외생활을 통해 맺은 인맥을 통해 조선어학회 재정과 대외관계를 이끌었다”고 덧붙였다.

이극로박사 기념사업회가 펴낸 <이극로의 우리말글 연구와 민족운동> 표지  (교보문고 제공)


◆이극로(1893∼1978)

경남 의령 출생 한글학자, 독립운동가
1920년 중국 동제대학을 거쳐 1922∼1927년 독일 훔볼트대 경제학 박사
1923년 유럽 최초 훔볼트대 조선어강좌 개설·강의, 1929년 조선어사전 편찬위원
1930년 한글맞춤법 제정위원, 1936년 조선어학회 간사장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체포·구금

※ 영화 <말모이>의 류정환은 부유한 친일파의 아들로 묘사되지만, 이극로는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고학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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