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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공유경제 (sharing economy)(中)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77)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10.18 15:40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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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공개념과 관련해서는 헨리 조지를 빼놓을 수 없다. <진보와 빈곤>이라는 걸작에서 경제 문제와 빈곤층 문제는 지대(地代)와 관련 있다고 하면서, 토지세를 강조했다. 제목에 붙여진 진보는 경제적 진보를 의미하는데, 생산력의 향상으로 실제로 생산물이 늘어나서 부(富)가 증가하는 것을 말하며, 빈곤은 부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빈곤한 계층이 더 늘어나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헨리 조지는 노동과 자본은 경제활동과 관련한 긍정적인 요소라고 이해했고, 반면에 지대는 이러한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본의 결과물을 훼손시키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로 여겼다. 그래서 토지세를 주장하게 됐는데 그가 말한 토지세를 걷게 되면, 사회 빈곤과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국가에서 추진하는 모든 사업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제2의 기계 시대>에서는 현대 국가에서 투여되는 비용이 헨리 조지가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비판적으로 해석 한다).

헨리 조지의 사상은 당시에도 파격적이었고, 세상이 바뀌어서 자유와 평등을 더 강조하는 지금에도 이상주의로 간주 된다. 그리고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에 대한 비판도 많다. 대체로 행동경제학이 등장하기 전 경제학은 경제의 주체 인간을 대단히 합리적으로 존재로 전제했기에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헨리 조지는 종교적 이상주의까지 더했으니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 반론자들이 볼 때 어불성설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50년 이 지난 지금, 세상의 복잡성은 헨리 조지가 상상도 못 할 만큼 진행됐으니 그의 핵심적인 사상은 과거 십계명과 같은 교리처럼 해석될 수 있을 뿐 실질적인 적용은 더 어려울 듯 하다.

그의 사상은 당시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에게 영향을 줘서 실제로 톨스토이는 토지를 농노들에게 나누어 주는 실천을 했고, 성경적 방법을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아울러 그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부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헨리 조지의 사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지금까지 토지세를 걷는 자본주의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덧 붙여서 톨스토이와 같이 지주, 즉 위에서부터 시작한 개혁의 한계는 아래에서 받아들일 수준이 되지 않았을 때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이론, 좋은 실천 방법이라도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천의 타당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효과는 무의미 한 수준이 된다. 오히려 낭비인 경우도 있다. 톨스토이의 실천도 농노들이 받아들였을 때는 토지 공개념과 평등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저 선량한 지주의 자선으로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공유경제와 관련한 사상이 검증되기 시작하는 데 대표적인 경제학자가 엘리너 오스트롬이다. 그녀는 2009년에 여성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으며, <공유의 비극을 넘어>을 통해 도덕적 해이의 문제로 비판받았던 공유경제 개념을 뒤집어엎었다. 그녀는 공유경제 실현 가능성의 타당성을 충분히 검증했고, 이후 스마트 기기들의 개발과 발전으로 - 스마트폰, 빅데이터, 광속인터넷 등 첨단 기술이 등장 - 본격적으로 공유경제를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가 세계적으로 도래했다.

공유개념의 현실 가능성이 증명되고, 실현 할 수 있는 기술도 있지만, 현재의 모습은 평등을 실현하기 보다는 승자독식의 문제를 낳았고, 부의 분배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로또와 같은 일확천금을 바라면서 많은 사람이 스타트업에 발을 들여놓고, 간절히 성공을 바란다.

‘에어비앤비(airbnb)’나 ‘우버(uber)’와 같은 영광을 맛보기를 원하면서 가장 똑똑하다는 청년들이 공유경제를 바탕으로 한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물론, 이런 시도들이 많아야 좋은 기업이 나타나고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로또'의 가능성은 한 사람이 여러 번 번개에 맞을 확률이라고 하지 않던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스타트업은 대부분 실패한다.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장병규의 <장병규의 스타트업 한국>에서는 (수학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논리지만) ‘스타트업의 평균은 실패’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스타트업의 실패와 성공이 국가의 경제나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은 크게 생산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각에 따라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무료로 영화를 감상하고, 음악을 듣고, 학습 도움을 받고 등 모든 것이 다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현재 GDP 개념으로 측정할 수 없는 생산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불평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점점 나빠지고, 부의 독점에 따른 저항도 만만치 않게 벌어진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초유의 대통령 탄핵도 비선 실세의 권력과 부의 불법적인 행태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볼 수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공유경제가 사이비 공유경제이기 때문이다. 공유의 의미는 자원의 공유이면서 그 부에 대한 공유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모델로는 협동조합과 같은 개념에 가까울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협동조합 몬드라곤에서는 최고 운영자 월급과 막 시작한 사업자 급여 차이가 3배 이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유니콘 수준으로 성장한 기업 CEO의 소득은 회사 직원의 급여와 따지기 힘든 수준이다. 즉, 공유경제가 아니기 때문에 보편적 공유경제가 전파되기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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