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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방지위한 어린이집 CCTV, 산으로 가나?" - 관계법령 바꾸고 보조금까지 지원했더니...

윤준식 기자 승인 2015.11.14 00:47 | 최종 수정 2019.07.16 17:22 의견 0

보건복지부는 올 초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연이어 논란이 되자 관련 규정 개정을 거쳐 어린이집 폐쇄회로 텔레비전(이하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한편, 조속한 CCTV를 위해 설치비를 지원하기로 했으나 이를 둘러싼 CCTV 시공업체들의 과열경쟁만 발생해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지난 4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5월 18일자로 공포되었는데 영유아보육법 부칙 제1조에서 공포 후 4개월이 경과한 날을 시행일로 정하고 있고 부칙 4조에서 시행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CCTV 설치해야 함을 명시한데서 기인한다.

 

전국의 4만 3천여개에 달하는 국·공립 어린이집, 민간 및 가정 어린이집은 12월 중순까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기준에 맞춰 CCTV 설치를 완료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어린이집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보육실, 공동놀이실, 놀이터, 식당, 강당 등에 1대 이상씩 설치하도록 해 가정 어린이집과 같이 규모가 작은 어린이집이라 하더라도 최소 3~4대의 CCTV를 설치해야 하며 카메라 1대 운영에 관련한 제반비용을 35만원씩으로 산정해 전체 금액 중 80%를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으로 설치와 시공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러다보니 시공업체 입장에서는 어린이집 1개소당 100~140만원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고 규모가 큰 어린이집의 경우 CCTV가 16개소 이상 들어가기 때문에 전국적인 소요를 따져보면 최소 450억에서 800억에 달하는 단기 특수가 발생하면서 아동학대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본 취지와 달리 시공업체들의 과열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문제는 CCTV 설치와 시공만을 주업으로 하는 업체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서비스망을 갖춘 거대통신사와 보안업체까지 통신료나 경비용역 비용 할인을 조건으로 내세우며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영업행태 중 가장 큰 문제점은 보건복지부의 가이드라인을 악용한 미완성 견적서를 가지고 상담에 임하고 있다는 데서 드러나는데, 이는 보건복지부가 CCTV의 화소수나 화질에 대한 기준, CCTV 시설관리와 녹화자료의 관리에 대한 기준만 제시할 뿐 특정 업체의 제품을 특정하거나 관리용역방식을 특정할 수 없다는 허점을 파고든다는 것이다.

 

어린이집 원장에게 대략적인 사양과 금액만 명시한 견적서를 팩스나 이메일로 보낸 다음 자신들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리베이트로 제공하는 식으로 계약을 유도하는 식이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영유아교육법 개정해 CCTV 설치를 의무화했으나 특수를 노린 업계의 과도한 영업으로 그 취지를 벗어날 우려가 있다 <p class=(자료사진출처: pixabay)" width="640" height="426" />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영유아교육법 개정해 CCTV 설치를 의무화했으나 특수를 노린 업계의 과도한 영업으로 그 취지를 벗어날 우려가 있다 (자료사진출처: pixabay)

 

 

익명을 요구한 CCTV 시공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이런 방식에는 2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정상적인 납품가와 시공비용으로는 그 금액을 맞출 수 없다는 점과 카메라나 DVR 장비의 수요를 맞추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런 파격적인 영업이 가능한 것은 앞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뒤로 이익을 남길 수 있어서일 텐데 통신료나 경비용역료로 보전이 가능한 대기업 계열 업체는 가능할지는 몰라도 CCTV와 DVR 설치·시공으로만 먹고사는 군소업체에선 불가능한 금액”이라 밝혔다.

 

“견적서 상에 메이커와 모델명, 정확한 제원을 명시하지 않은 이유도 자신들이 장비 수요를 맞추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것일 수 있다”며 “국내 재고가 모자랄 경우, 중국으로부터 급하게 물량을 끌어온다거나 규격미달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을 가정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메이커와 모델명, 제원을 지금 명시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규격미달의 제품을 사용할 경우, 녹화된 영상의 품질이 낮아 아동학대를 예방한다는 취지가 퇴색되며, 해외에서 급하게 물량을 끌어올 경우 관련 법을 어겨가며 국립전파연구원의 인증을 거치지 않은 CCTV 시스템이 설치되는 최악의 가정도 해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얼마 전까지 서울 도봉구에서 어린이집 원장으로 근무 했었다는 정 모 씨에 따르면 “원장들이 전자제품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어린이집 연합회의 추천이나 주변 어린이집들의 평판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하는 수준”이라며 “지식부족으로 견적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업체에서 유리한 조건 제시만 보고 원장들이 계약을 했다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한다.

 

정씨는 “CCTV 설치와 관리에 대한 책임을 원장들이 지도록 되어있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어린이집에 예산을 지급한 후 어린이집으로부터 예산사용에 대한 근거와 증빙으로 결과보고를 받을 뿐이라 업체선정과 사후관리를 책임져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계약, 시공, 관리 중 문제가 발생하면 업체와 직접 계약한 원장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져야 하고 이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씨는 “이미 정부가 예산을 지급한 상황 속에서 규격에 미달된 장비가 시공되면 원장이 책임지고 재시공해야 하고 시공업체가 계약을 지키지 않아 무상기간에도 고장수리를 받을 수 없을 경우에도 원장 스스로 대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업체들의 영업이 과도하게 들어올수록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앞에서 설명한 개정 영유아보육법이 정한 완료기일인 12월 중순을 1개월 남짓 남겨둔 시점이라서 쉽게 수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어린이집 측에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불리한 여건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어린이집 원장 등 관계자들은 확실한 제품명이 명시된 비교견적을 받고 업체의 성실성과 계약이행 의지를 판단해 계약을 진행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또한 법 개정의 본래 취지가 살아날 수 있도록 시공감리를 겸한 행정지도를 통해 시공업체들의 과열경쟁과 혜택을 앞세운 과도한 영업이 근절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업계 스스로도 과도한 영업을 자제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특히 CCTV와 관련없는 대기업 통신업체들은 중소업체를 위한 일감나누기에 나서는 등 자정활동이 필요하다.

 

최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으로 인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지자체간 갈등이 빚어지며 CCTV 이슈가 학부모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있는데 자녀들의 학습권 및 인권과 관련있는 문제이니만큼 이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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