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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OB vs YB (10)] ‘황평집’ 그리고 ‘클래직’

칼럼니스트 조현석 승인 2019.06.28 20:25 | 최종 수정 2019.07.04 14:32 의견 0

을지로 입구의 마천루를 지나 을지로 3가 방향으로 가다보면 낡고 커다란 시장과 건물이 보인다. 한때 을지로의 랜드마크였던 세운상가다. 종로에서 충무로까지 직선으로 잇는 긴 세운상가는 1970년부터 지금까지 50여년의 시간동안 을지로의 역사를 함께 했다.

일제강점기, 미국과의 전쟁에서 폭격기의 폭격에 대비하여 일본은 소개공지사업이라는 것을 진행하였다. 소개공지란 아무런 건축물도 짓지 않고 땅을 비워두는 것이다. 경성에서 소개공지를 두었던 곳이 지금의 을지로 3가 쪽이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판자촌이 들어섰다가 1966년 이를 철거하고 지은 건물이 바로 세운상가이다.

세운상가의 세운(世運)이라는 이름은 세계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명칭이라고 한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김수근의 설계 하에 만들어졌는데 그 때 당시로는 세계적인 규모의 건물이었다.

세운상가는 7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현대상가(현 종로세운상가), 아세아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현 삼풍넥서스), 풍전호텔(현 HOTEL PJ), 신성상가, 진양상가 등이다. 세운상가의 아파트에는 그 당시의 연예인들이나 고위관료들이 살았었고, 상가 역시 서울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세운상가 7개 건물들이 모두 이어져 도보로 이동가능하게 하려는 원대한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민간 건설사들이 주체가 되어 공사를 진행한 탓에 계획대로 되지 않고 3층의 보행자 도로는 그 의미를 상실했다. 상가 내에 공공시설을 설치하고 옥상에는 인공정원을 두겠다는 계획 또한 무산되었다. 상가는 점점 쇠퇴하고 전자상가들은 용산으로 이전하며 점차 활기를 잃어 지금에서는 슬럼화 되어버렸다.

지금은 이렇게 위압감을 주는 오래된 건물일 뿐이지만 을지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 필자에게 세운상가에 대해 물으면 늘 “서울의 청킹맨션”이라고 소개한다. 홍콩의 청킹맨션처럼 낡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특유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운상가 근처에는 오래된 역사를 함께해온 맛집들도 많고, 또 최근 세운상가 근처 임대료가 저렴해지고 입지조건도 좋아 힙한 카페들도 많이 생기고 있다. 그 중 오늘 소개할 곳은 황평집과 카페 클래직이다.


¶ OB - 황평집

을지로 황평집은 세운상가 중에서도 진양상가의 북쪽 끝단에 있는 곳이다. 세운상가의 흥망성쇠 역사를 함께 한 세월의 흔적이 입구에서부터 가게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점심시간에는 자리가 없으면 합석해서 먹기도 한다.

황평집의 주 메뉴는 바로 닭곰탕이다. 진양상가와 근처 인현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관광객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와서 닭곰탕으로 허기를 달래고, 닭무침에 소주 한 잔을 넘기곤 한다.

▲ 황평집의 대표 메뉴 닭곰탕 ⓒ 칼럼니스트 조현석


닭곰탕은 스테인레스 그릇에 가득 담아 마늘쫑, 깍두기와 함께 조촐하게 나온다. 이 닭곰탕이 뭐라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까 싶지만 국물 한 술에 고기 한 점 먹으면 생각이 바뀌게 된다. 따뜻하고 담백한 닭곰탕 국물은 닭의 누린내 없이 깊은 맛을 잘 담아내 위장을 달래준다. 소 사골 육수나 돼지 육수와는 다른 닭 육수 특유의 맛과 향이 혀와 위장을 사로잡는다.

푸짐하게 들어있는 닭고기를 함께 먹으면 또 다른 매력에 빠져든다. 닭고기는 쫄깃하게 씹는 맛이 있다. 특히 닭껍질이 우리가 생각하는 물컹물컹하고 느끼한 닭껍질이 아닌 쫀득하고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

닭무침 역시 주당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안주다. 닭고기를 야채와 함께 매콤새콤하게 버무려 나오는 메뉴로 저녁 퇴근 시간에 닭무침에 소주 한 잔,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 YB 클래직

을지로 카페 클래직은 진양상가와 풍전상가 사이에 있는 요즘 을지로의 힙한 카페 중 하나이다. 여느 을지로 카페와 마찬가지로 간판이 작기 때문에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이런 곳에 카페가 있을까싶은 골목으로 살짝 들어가서 계단을 올라가면 고풍스러우면서도 따뜻한 감성을 지닌 카페가 나타난다.

▲ 카페 클래직의 분위기를 만드는 독특한 오브제들 ⓒ 칼럼니스트 조현석


클래직은 독특한 인테리어 소품들이 눈을 사로잡는 곳으로 보는 재미가 있는 카페이다. 보라색의 특이한 조각상, 그리고 욕조를 개조하여 만든 테이블, 양초와 책으로 카페 이름처럼 클래식한 분위기를 살린 테이블, 포스터칼라 통과 페브릭으로 독특한 느낌을 주는 오브제들이 멋스럽게 놓여 있다. 커피를 마시는 내내 보는 재미와 감성 사진을 찍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인테리어만 예쁜 것은 아니다. 부드러운 크림에 작은 당근 하나 꽂아 나오는 당근케이크, 토핑과 크림이 실하게 올라간 드라이 팽드미와 같은 디저트 메뉴들도 먹기가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세팅되어 나온다. 다양한 과일들이 가진 색감을 잘 살려 플레이팅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디저트가 나오면 포크와 젓가락보다 휴대폰의 카메라를 먼저 들게 만드는 곳으로 을지로 감성 핫스팟으로 손꼽히는데 한 몫 한다.

▲ 카페 클래직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시나몬 플랫화이트, 당근케이크 ⓒ 이여진 기자


커피나 디저트 메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맛이다. 카페 클래직은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훌륭하다. 다른 카페에 비해서 약간 비싼 느낌이 있지만 플레이팅의 노고와 아름다움, 그리고 맛을 생각하면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이다.

장마가 다가오는 이번 주말엔 을지로 세운상가로 와서 황평집에서 닭곰탕 한 그릇 배불리 먹고 카페 클래직에서 감성 충전하는 알찬 시간을 보내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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