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교회의 한계 : 세속화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60)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09.16 15:30 의견 0

교회의 기본적인 성도 이해는 불쌍한 영혼, 구원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재정에 도움이 되는 구성원으로 취급한다. 물론, 이러한 이해는 무신론자들의 방식일 수도 있다. 무신론자들의 방식은 개인화가 진행되면서 더 보편적인 이해로 자리잡는다. 떠돌아 다니는 동영상과 신에 대한 왜곡 등은 일반인들의 기독교 이해를 방해하고 급기야 믿는 성도마저도 떠나게 만든다. 물론, 일반 성도들의 신앙 수준 문제일 수도 있다.

정보화 시대, 개인의 등장에 교회는 별로 대응하지 못하고 대책 없이 당하고 만다. 재정에 도움이 되는 성도들의 유출은 당장 크지 않았지만, 차세대를 생각하면 근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차세대로 일컫는 청소년들은 개인화를 넘어서 스스로의 정체성마저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문제는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현실을 분석하고 원인도 어느 정도 알지만,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 교회는 연합된 조직이 있지만, 가톨릭처럼 통일된 지침에 따라 운용하지 않는다. 교회마다 상황이 다르고, 수준이 다르니 획일적인 표준을 적용하기 힘들다. 아울러 교회 조직이 파이프라인 형태로 관리했기에 하루아침에 스타트업과 같은 “파괴적 혁신”을 주장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현재 많은 대기업도 조직 운영의 신속하지 못함과 의사 결정의 더딤을 인정해서 아예 스타트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회는 작은 교회를 인수하거나 대안 조직을 흡수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전국에 있는 교회 중 100명을 넘지 못하는 교회가 대부분임을 고려했을 때 위의 내용도 일부 교회에 해당할 뿐이다.

대형 교회는 개인의 등장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없는 구조이고,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교회도 별로 없다. 그러니 해결 방법은 기도, 말씀, 전도, 부흥 등인 것이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닌데, 왜 공감하기 힘든 것일까? 같은 말씀, 기도, 전도, 부흥이라고 하더라도 그 언어의 통시성이 있을텐데 공시성만을 강조하기에 좋은 말들이 한낱 관용구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런 문제들이 정말로 심각하다고 인식될 때쯤에는 교회에 남은 성도가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체감할 때일 것이다. 더 답답한 건 이런 문제들은 현재 많은 비판을 받고 대중의 주목을 받는 목사들이 타계해도 쉽게 극복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절대적인 권력의 수양아들로 양육 받은 자들이 교회의 담임 목회자로 서게 된 지금 앞으로도 혁신을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2세대 목회자가 문제가 돼서 지면을 떠들썩하게 가득 채우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사랑의 교회이다.

옥한흠 목사를 이어 오정현 목사가 등장했는데(교계에서 몸담고 일하는 동안 오정현 목사에 대해 칭찬하는 교역자를 본 적이 없다), 사랑의 교회 성도들이야 어린 시절부터 사울 콤플렉스, 다른 말로 잘 난 사람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겸허히 자랑하는 담임 목사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덕분에 담임 목사는 권력을 내려놓을 수 없다. 그런데, 외부에서 그렇게 오정현 목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사랑의 교회 초빙을 받으면 한걸음에 달려가는 건 코미디 아닌가? 많은 사람이 모이고, 강사비도 넉넉히 챙겨주니 거부하기 힘든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노선을 확실히 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큰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 교회의 재정에 힘입어 행사 강사로 등장하는 모습 역시 교회 뿐만 아니라 사역자들도 철저히 세속화 됐다는 증거 아닐까?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