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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5)] 황태자 알렉세이가 태어났다.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1.26 09:00 의견 0

황후에 대해 모든 것이 불리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에 러시아 혁명 전의 상황은 러시아 황실 반대 세력의 잠재적 힘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적대적 분위기에서 그녀는 그녀의 편이 될 수 있는 황실 가족들과도 가깝게 지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사람들과의 접촉과 행사 참여 등 모든 대외관계를 최소화했다(이 점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매우 닮았다).

거기에다 그녀는 4명의 공주만 생산했을 뿐 제국을 이어갈 후계자가 될 황태자를 1904년까지 낳지 못했다. 확실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황실과 눈치 빠른 음모 술수꾼들이 독일 출신 황후에게 아직 줄을 설 수 없었다. 황후는 남편인 니콜라이 2세를 사랑하며 따랐을 뿐이다.

1904년 황태자 알렉세이가 드디어 태어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대망의 황태자가 혈우병을 갖고 내어났다. 당시에 이병은 매우 위험한 유전병으로 서로 혈족 관계에 있는 유럽의 왕가에서 나타난 병이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룩했던, 알렉산드라 황후의 외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의 네 명의 아들 중 1명은 혈우병으로 생명을 잃었고, 딸들은 영국, 스페인, 독일, 러시아 왕가로 시집가서 후손들에게 혈우병을 퍼트렸던 것이다. 러시아의 황후 알렉산드라의 아들인 왕세자가 유전병인 혈우병을 갖고 태어났던 것이다.

혈액 응고 인자 제제가 개발된 현재에는 혈우병은 수명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치명적이었다. 독일제국의 왕가에서도 이 병이 나타났다. 알렉산드라의 삼촌과 남자 형제도 이 병으로 생명을 잃었다. 알렉세이 왕세자가 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극비에 붙여졌다. 알렉세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러시아의 고명한 의사들은 모두 초대돼 치료를 시도했으나 당시에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었다.

황후는 황태자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민간요법과 신통력에 의존하는 신비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황태자는 한 궁정 출입 귀부인(Anna Wyrubowa)을 통해 기도로 많은 불치병을 치료한다는 승려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i Rasputin)을 소개받았다.

황태자 알렉세이의 혈우병은 국가기밀 중 특급 극비 사항이었으므로 농촌 하층계급 출신 승려 라스푸틴이 궁중에 들어오는 첫날부터 황실 친족과 황실 관료 그리고 일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교계는 무슨 일 때문에 라스푸틴이란 승려가 궁정에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던 탓으로 이상한 방향으로 해석하기도 했던 것이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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