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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유나의거리] 길 위의 사람들(17) "떡볶이"

성유나 작가 승인 2019.03.19 10:10 의견 0

▲ 떡볶이 ⓒ 성유나 작가

떡볶이를 처음 먹어본 때가 초등학교 5,6학년 즈음 이었던 것 같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천'씨 성을 가진 친구의 집이었다. 말수가 적고 순하게 생긴 친구였다.

친구 집에 들어서는 순간 기가 죽고 말았다. 출판사 별로 '전과'가 늘어져있던 거실엔 쇼파가, 탁자에는 바나나가 놓여있었다. 친구의 오빠는 나를 보자마자 바나나 한 개를 건네줬다. 우리 집에서는 바나나 두 개로 넷이서 반씩 나눠 먹었었는데.. 손에 통채로 쥐어진 바나나와 오빠의 친절에 당황하고 말았다. 오빠가 없는 나는 키도 훤칠하고 중저의 목소리를 가진 친구 오빠 앞에서 수줍어졌다.

친구 오빠는 배고프지 않냐며 부엌에 들어가더니 무엇인가 냄비채로 들고 나왔다. 반으로 갈라져 빨간 고추장에 버무러진 굵직한 가래떡. 그것이 떡볶이의 첫 인상이었다. 한 입 먹는 순간 니글거리고 매운 맛에 입안에 떡을 머금고 있었다. 친구는 맛이 왜 이러냐는 말과 함께 젓가락을 내려놨고 나는 떡을 삼키고는 맵다고만 했다.

▲ 떡볶이 ⓒ 성유나 작가

그 때 이층에서 오빠들이 무슨 냄새냐며 내려왔다. 두 명이었다. 친구는 오빠가 셋인 집의 외동딸이었다. 떡볶이를 만들어온 오빠는 막내오빠였다. 니글거리는 맛의 주범은 MSG였다. 조미료 맛 때문에 형들에게 핀잔을 들은 막내 오빠는 "괜찮은데.." 하며 홀로 남은 떡볶이를 먹어치웠다. 처음 바나나를 쥐어주던 다정한 모습은 어디가고 기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보니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중학교에 들어가며 친구와는 헤어졌다. 그 이후로 친구집에 갈 일이 없어 오빠를 볼 기회는 없었다. 그래도 오빠는 떡볶이의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사람이었다.

▲ 떡볶이 ⓒ 성유나 작가

점심을 먹기 위해 홀로 포장마차를 찾았다. 떡볶이에 김말이까지 시켜 먹다가 배가 불러서 남기고 말았다.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힐끗 보더니 "이 맛있는걸 왜 남겨요"하고는 남은 양념까지 싹 비웠다. 문득 친구의 막내 오빠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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