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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국가론(1)] “규제가 이미 망쳐놨다!” - 심각한 양극화가 시작됐다

윤준식 기자 승인 2019.03.19 14:30 | 최종 수정 2019.07.16 18:29 의견 0

블록체인 지갑을 탑재한 삼성전자 갤럭시 S10이 전세계 널리 호평받고 있습니다. 더불어 2019년 초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블록체인 업계의 약진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또한, 이더리움을 대체할 수 있는 3세대 블록체인 메인넷이 하나씩 등장 중입니다.

 

그러나 정작 블록체인 업계 사람들을 만나보면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지난해 말 비트코인 하드포크로 인한 분쟁 이후에 또, ‘암호화폐 떡락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는 듯할 때마다 각종 이슈가 불거졌습니다.

 

잊을만하면 독버섯처럼 등장하는 사기코인 문제, 거래소 문제, 자금조달 조직 문제 등을 탐사 저널리즘의 시사고발 기사와 프로그램들이 번갈아 다루다 보니 좀처럼 좋은 날은 오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 설 앞두고 발표된 정부 방침: “ICO 제도화에 신중한 입장 견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설 연휴를 앞둔 1월 31일, 국무조정실에서 “ICO 실태조사 결과 및 향후 대응방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가 배포되었습니다.

 

이 보도자료는 1월 29일 개최된 <가상통화 관련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금융감독원이 실시한 ‘ICO 실태조사 결과’와 해외규제 사례, 국제기구 논의 동향을 검토한 결과, “ICO 제도화에 대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 나가겠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말이 점잖아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 나가겠다”지 실제로는 “ICO는 불허한다”, “ICO는 불법이다”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많은 블록체인 업체가 암호화폐 판매와 ICO로 블록체인 메인넷 개발자금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부 발표는 관련 업체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이때까지 겪은 암호화폐의 시세 변동이 큰 악재라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정부의 부적절한 태도가 악재 중 최악의 악재였습니다.

 

당장 시급한 건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비즈니스를 펼치기 어렵게 하는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블록체인 업계나 암호화폐와 관련 없는 일반인들과 이야기할 때 더 느낄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그거, 다 망하지 않았습니까 정부에서 막지 않았어요”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업계 관계자가 아닌 대다수 일반인은 ‘블록체인=암호화폐=코인=사행성=사기’라는 공식으로 블록체인을 이해합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종사한다고 말하면 사기꾼 보듯 쳐다봅니다. 일부 관계자로부터는 직업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냥 IT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얼버무린다는 딱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무엇을 창출할 수 있을까요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할 거라 예견하며 기대했던 블록체인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 4차산업혁명과 관련된 규제샌드박스에 대해서 설명하는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 ⓒ 4차산업혁명위원회 홈페이지


¶ 정부 측의 짧은 시각: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따져

 

당시 국무조정실 보도자료는 많은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국내 상황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은 없고 현상적인 문제점만 직시했습니다.

 

금융감독원 실태조사는 2018년 8월 기준으로 ICO에 성공한 24개 국내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ICO 기업들이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두고 국내에서 자금모집, 투자판단 정보 공개여부, 모집자금 사용내역 공개 등을 놓고 사기 소지 우려를 표명한 것은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블록체인 메인넷 개발과 서비스(실제로 진행한 서비스가 부재) 등과 관련한 부정적인 이해와 판단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블록체인 메인넷 개발이 단시일 내에 끝날 정도로 쉬웠다면, 이들이 ICO로 대규모 자금을 유치했을까요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넉넉한 개발·운영자금을 유치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요 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인넷 개발을 완료하고 블록체인 생태계를 구축해야만 생태계에 적합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고, 사용자가 확장할 수 있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 중 ICON 메인넷을 두고 ‘깡통 블록체인 논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ICON 메인넷 트랜잭션이 저조한 상황이었는데 이를 ‘깡통 블록’이라 칭한 데서 시작한 논쟁이었습니다. 블록체인을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서비스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서비스 활성화에는 어느 정도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참 갑갑하고 안타까운 점은 관계부처 차관회의에 이런 상황을 소상히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관도 소집되었음에도 실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부처별 보도자료에 기재된 담당 부서 중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네트워크진흥팀,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혁신정책과 등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실태는 이야기되지 않았나 봅니다.)

 


¶ 편파적인 국제동향 점검 결과: 좋은 사례는 왜 빼놨나

 

둘째, 국제동향 점검결과가 편파적입니다. 부정적이기만 합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높은 위험성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제적 규율체계도 확립되어 있지 않다”라고 언급하면서 각국의 부정적 사례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미국 증권법은 ICO를 규제하고 있다”, “싱가포르, 스위스도 내국인 대상 ICO는 규제하고 있다”, “EU, 영국, 일본은 ICO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라는 말로 ICO 규제는 타당하다는 듯이 여론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일정부분은요! 미국은 증권법으로 ICO를 엄격하게 다루고 있지만, 의회 차원에서 블록체인 활성화를 위한 출구전략을 만들고 있습니다. 즉, 입법 동향은 ICO 허용 방향을 찾고 있음을 지나치고 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편파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술 더 떠 미국 외 다른 국가들도 ICO에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입장 속에서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해외 사례를 누락 했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바로 ‘몰타’입니다. 몰타 정부는 일찍부터 블록체인 ICO 방안을 마련해서 2018년 11월 1일부터 블록체인 ICO 법안을 발효했습니다. 이제부터 몰타에서는 ICO가 합법적이라는 의미입니다. 몰타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블록체인 기업이 건강하고 투명하게 ICO 할 수 있도록 3가지 법안을 제정했습니다. 몰타의 입법은 ICO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제거함으로써 긍정적인 출구전략을 제시한 사례가 됐습니다.

 

몰타 사례를 쏙 빼놓은 의도가 무엇일까요 왜 대한민국에서는 ICO를 하면 안 되는 양 사실관계를 임의로 편집해서 발표했을까요 대한민국이 몰타와 비교했을 때 부족한 점이 많아서일까요 국회의원이 300명이나 있고, 중앙부처에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서 어려운 고시를 통과한 수재들이 즐비한데 말입니다.

 

몰타는 우리나라와 많이 달라 그랬다고 칩시다. ICO를 규제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인 중국의 사례는 왜 빼놓았을까요

 

중국이 ICO를 규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이난 섬을 특구화하여 해외를 대상으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사업으로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시진핑이 직접 특구를 방문 하는 등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국내는 통제, 해외로는 개방이라는 이중정책을 통해 국제 경쟁력은 계속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유연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공산당 1당 독재 국가인 중국조차도 이러는데 한국은 대체 뭐하자는 겁니까

 

규제가 필요한 문제만을 찾아서 해결해야 하는데, 지금 벌이는 행태는 마치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모습입니다.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합리적 판단과 정책개발 문제를 떠나서 현 정부가 블록체인 전반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2월 26일 개최된 4차산업혁명위원회 제10차 회의 ⓒ 4차산업혁명위원회 홈페이지


¶ 블록체인 산업, 심각한 양극화가 이미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약 1개월 후. 대한민국 블록체인 판도는 심각한 양극화 추세를 보입니다. 블록체인 업계는 대규모 자금이 있는 측과 그렇지 못한 측으로 나뉘어서 부익부 빈익빈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우선, 2019년이 시작하면서 삼성전자, 삼성SDS, 은행,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시장에 대기업 독점 현상이 항상 그랬듯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울창한 밀림 속에 코끼리와 고릴라만 있는 셈입니다. 건강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다양하고 다층적인 구성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으로 ICO에 성공한 기업들은 최근 정부 발표 이전의 기업들입니다. 정부 규제 발표 이후에는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대규모 자금이 없으면 블록체인 메인넷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려고 메인넷 개발을 조기에 종료한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해 볼까요 앞으로 메인넷 개발에 성공해서 공표하는 블록체인 기업은 나타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블록체인 기업은 자금조달이 어려워서 메인넷 개발에 착수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메인넷이 빨리 나온다는 것 자체가 불안요소입니다. 아마도 상당 시간 버그 수정 단계에 머무르거나 기술적 한계로 dApp 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대기업이 만든 블록체인과 경쟁하다가 자연 도태하는 수순을 밟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공공시범 사업 확대, R&D 투자 확대라는 논리로 “병 주고 약 주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불과 며칠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블록체인 초기시장 창출을 목표로 공모한 ‘민간주도 국민 프로젝트’에 3개의 기업 컨소시엄이 선정되었습니다. 각각 이포넷, 현대오토에버, SK텔레콤을 중심으로 하는 컨소시엄들입니다. 딱 봐도 대기업이며, 이포넷도 20년 이상 역사가 있는 IT분야의 중견기업입니다. 즉, 대기업을 위한 처방인 셈입니다.

 

앞으로 블록체인 판은 어떻게 돌아가게 될까요 IMF마저도 조기 극복하게 했던 벤처 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까요 이에 시사N라이프는 독특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글쓰기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글 쓰는 활동가’ 조연호 작가에게 대한민국 블록체인 혁명을 위한 특별기고를 의뢰했습니다. 앞으로 총 6회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시사N라이프>가 기획연재중인 "블록체인 국가론"

[블록체인 국가론(1)] “규제가 이미 망쳐놨다!” - 심각한 양극화가 시작됐다

[블록체인 국가론(2)] 블록체인은 혁명이다 “현 체제에 선전포고하라!”

[블록체인 국가론(3)] 새로운 블록체인 시대를 여는 몰타

[블록체인 국가론(4)] “작은 나라가 강하다!” - 블록체인 6국; 스위스, 몰타, 에스토니아, 싱가포르, 홍콩, 리투아니아

[블록체인 국가론(5)] 블록체인과 민주주의, 투명성

[블록체인 국가론(6)] 블록체인 6개국의 또 다른 공통점: 실용주의, 금융/IT 강국

[블록체인 국가론(7)] 대한민국은 블록체인 강국이 될 수 있을까

[블록체인 국가론(8)] 블록체인 강국이 되기 위한 해법은

[블록체인 국가론(9)] 대한민국의 몰타! 제주특별자치도

[블록체인 국가론(10)] 몰타와 제주도의 차이점

[블록체인 국가론(11)] 제주와 몰타는 다르다

[블록체인 국가론(12)](인터뷰) 한-몰타 비즈니스포럼 배재광 회장(上)

“몰타에게 배우는 혁신” - 세계 최초 블록체인 법안 제정

[블록체인 국가론(13)](인터뷰) 한-몰타 비즈니스포럼 배재광 회장(下)

“혁신 비즈니스 지역 몰타” 유럽, 아프리카 시장 교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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