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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정신의 수도 대구! 혹은 대구?(1)

대구의 플라뇌르 대프리카를 말하다(57)

조연호 작가 승인 2019.04.18 12:00 의견 0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대구는 보수의 성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진보의 땅이었다.’라고 주장하기도 힘들다. 대구는 선비 정신의 메카였다. 선비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고 주장하는 기개(氣槪)가 있는 사람들이다.

예로부터 경북지역은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의 가장 위대한 학자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 서원이 안동에 있으며, 대구도 유학 정신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즉, 선비정신이 대구를 정의로운 정신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화랑도 정신도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가장 우선했지만, 가족 간의 존중, 친구와의 우정, 사회에서의 용기, 친환경적인 사고 등 인간 삶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가치를 알리고 몸소 체득하고 실천했다. 이후 국채보상운동, 독립운동 또한, 불의 한 권력에 대한 정의로운 항거라는 차원에서 ‘올곧은’ 선비 정신을 담지하고 있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진보적인 후보에게 투표하고, 실제로 정의로운 실천적 저항으로 228 학생운동이 있었음을 볼 때, 대구의 정의로운 선비정신은 한국 민주화 역사에 있어서도 ‘큰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의 대구는 이와 같은 선비 정신을 새롭게 되살려야 한다.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은 창조라고 한다. 그러나 과거에 있었던 것을 이어가는 것은 계승이라고 한다. 현재의 대구는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 없었던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었던 것을 되살려야 한다(이렇게 말하면 필자는 좌파로 몰릴 것이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좌파는 한국에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이 대부분 정치학자들의 생각이다). 보수라고 주장(필자는 현재 보수당이라고 하는 자유한국당을 진정한 의미의 보수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민주당을 진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하는 수구 ‘꼰대’들의 포퓰리즘을 사용한 고함소리에 과거 정의로웠던 대구정신을 잠시 닫고 있는 것이다.

대쪽같이 곧아서 부러질망정 휘어지지 않았던 선비 정신을 잊고 지내는 것이다.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도 과거의 추억과 기억은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물론, 역사를 보다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문학에서 이런 부분을 적지 않게 다루고 있다. 최근에 읽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는 작가가 역사를 부정확한 기 억과 부정확한 자료가 만나서 작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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