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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_이야기(29)] 결국 C와 썸을 탔다

칼럼니스트 봉달 승인 2019.04.20 09:07 의견 0

그날 일을 계기로 좀 친해져서 연락을 주고받다 요즘 말로 썸을 타는 사이가 됐다. 내가 살던 방이 C가 다니는 학교와 집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왔다갔다 하며 들르다가 나중엔 자기 물건을 막 두고 다녔다. 사귀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자고 가는 것도 아닌데 왜 물건을 두고 가는지 잘 이해가 안 됐지만 그러려니 했다.

나 혼자 사는 원룸에는 매트리스 하나랑 길바닥에서 주워온 고물 책상 하나, 예전 지하실 한인 용자 아재가 쓰다버린 폐품 펜티엄2 부품을 조립해 만든 그지 컴퓨터 밖에 없었으니 짐 놔둘 공간은 많았다. 뭐가 더 있다고 해서 사는 게 불편한 것도 아닌만큼 상관 않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C가 참 괜찮아 보이는 거였다.

나는 싸가지도 없고 남 배려도 잘 못하는데 C는 인간관계가 두루두루 원만하고 누구와도 잘 지냈다. 또 힘든 시험 기간이 지나자 몰골도 제법 사람 구색을 갖춰가니 예전처럼 이모님 같지 않고 그래도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약대에 다니는 것도 중요했다.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 샷다맨 아니던가. 나도 팔자 좋은 남편 노릇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막상 사귀자는 말을 하려니 좀 그랬다. 부활도 교리대로 안 믿는 재수 없는 놈이 짐 부리기 좋은 위치에 방 하나 잘 잡아 친구 먹은 것일 뿐인데 갑자기 들이대면 황당할 것 같았다.

그때 마침 중국에서 알았던 연광이놈이 미국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며 F1 학생비자 끊고 시카고로 올 테니 신세를 좀 지자고 했다. 한 보름이면 된다길래 일단 이놈이랑 회포부터 풀고 작업은 나중에 하든지 말든지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연광이는 2002년 중국 베이징에서 술 먹다가 알게 됐다. 조그만 게 재주가 많은데다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어울리니 함께 다니다 보면 재미있는 일이 생기곤 했다. 같이 어울리던 경춘이, 똥쩌 등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지금도 생각난다. 군대도 갔다 왔겠다, 졸업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겠다, 아무 것도 걱정할 게 없던 20대 초반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한심했던 시기였다.

그런 연광이가 왔으니 안 그래도 자주 술파티를 하던 청년회장에 이어 내 방에서도 매일 같이 잔치가 벌어졌다. C에게 들이대기는커녕 연광이랑 놀기 바빴고 청년회에도 데려가 함께 낚시를 가서 메기탕을 끓여먹는 등 공사가 다망하는 바람에 하는 일이 아주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보름이 뭐냐 한 달이 지나 두 달 가까이 됐지만 연광이는 나갈 생각을 않고 나 역시 별로 불편한 게 없어서 걍 내비뒀다.

그때 한국서 가장 친한 친구가 뭐라 하지 않았으면 지금 내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싶다. 친구가 안부 전화를 해와서 사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놈이 갑자기 화를 벌컥 내는 거다. 낼 모레면 서른이 될 놈이 그런 처자가 있음 당장 잡을 생각은 않고 술친구나 불러들여 여자가 찾아오기 불편하게 만들면 어쩌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생각해보면 연광이가 온 이후로 C가 내 아파트에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아직 본격적으로 작업한 것도 아니고 급히 서두르기보다는 그저 물 흐르듯 지나보면 알아서 뭔가 되겠거니 했는데 친구 말을 들으니 이게 아닌가보다. 그날 붙잡고 잘 얘기해 2주 말미를 주고 내보내는 걸로 했다.

연광이가 나가자 신기하게 C가 다시 찾아왔다. 한동안 간을 보다 정식으로 교제를 하게 됐다. 사귀자고 들이대니 나이가 있어 가볍게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에 내 마음은 무거워졌으나 정확히 뭘 어떻게 해야 안 가벼운 건지 모르겠어서 그냥 걱정 말라고 그랬다.

그리고 그 뒤로는…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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