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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30편: 기본소득

조인 작가 승인 2020.08.17 16:54 의견 0

“코로나 19로 인해서 소상공인들의 삶의 터전이 붕괴하고, 대기업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제 전망도 좋지 않아서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전문가의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언제부터 경제는 ‘코로나 19’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경제 상황은 모두 코로나 탓으로 돌려진다. 사실, 대체로 전염병은 환자를 계속 양산하고 비례해서 일반인들과 기업들의 도산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었다. 이 중에서 여행업과 관련한 업종은 IMF 이후 최대 위기 상황을 겪고 있었다. 

거의 폐업 지경에 이른 수준이어서 도대체 뭘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하다가도 입에 걸쳐져 있는 마스크 안에 자기가 내뿜은 잡다한 냄새가 섞인 숨소리를 맡으면, 아직 숨이 붙어 있다는 안도감에 ‘곧 끝나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간절한 희망도 시간이 갈수록 지쳐가기 마련이다. 일제 35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을 텐데, 독립운동을 하다가 지쳐서 변절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해방되지 않을 줄 알았다.”라고 변명한다. 사실, 해방되지 않았다면, 현재 친일의 잔재를 대대에 걸쳐 지우려 하는 사람들이 더 득세한 세상일 것이다. 그것도 아주 떳떳하게.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들을 비웃으면서 말이다.

“현재 국내 경제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은 ‘기본소득’ 밖에 없습니다.”

불법 선거로 정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지사가 해결책으로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원래 새롭고 신선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걸 좋아하는 지사였지만, 현재 상황에서의 ‘기본소득’은 불리한 정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묘책이었다. 

사실, 지사 혼자만의 발언으로 그쳤다면 새벽 산 정상에서 외치는 “야호~”와 같이 돌아오는 건 메아리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어서 서울시가 받고, 울산이 받다 보니 기본소득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한 사람들까지도 실행해야 할 정책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단체장이 너, 나 할 것 없이 ‘기본소득’을 외쳤댔다. 

“재난기본소득이야 말로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실제로 기본소득의 효용성은 세계적으로 입증된 바 있습니다. 단, 정서적으로 ‘무임승차’, ‘도덕적 해이’ 등과 같은 비판을 넘지 못하기에 쉽게 실현하기 힘들었을 뿐입니다.” 

며칠 ‘기본소득’이 언급되더니 어느 순간 ‘재난’이라는 말이 덧붙었다. 무조건 주자는 의미에서 특수한 상황에만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으로 명칭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원래 하나를 더 하기가 어려운 법이지 다음에 더 추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만 ‘기본소득’이지 여러 조건이 더 붙어서 ‘기본’과는 거리가 먼 개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명칭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100만 원을 지급하자고 했던 지사도 결국, 본인이 단체장으로 있는 지역에만 1인당 10만 원씩 주기로 했는데, 그것도 현금은 아니고 지방 화폐로만 준다고 했다. 

“그래도 국가에서 돈을 준다니 다행이네요.” 
“그러게요. 세금이나 받아 갈 줄 알았지. 돈을 준다고 하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에요.”
“그만큼 힘들다는 말이겠지.”

국민도 국가에서 돈을 준다고 하니, 마다할 생각은 없다. 절박한 상황이니 양잿물이라도 준다면 마셔야 할 판국이다. 그러다 보니, 원래도 알지 못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제 기본소득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고 일시적으로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완전히 정착했다. 그나마도 외우기 어려운 시민들은 “정부에서 주는 거!”나 혹은 “지방에서 주는 거!”로 통용하기도 했다. 거리에는 코로나 19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인 처방 ‘긴급재난지원금’을 선전하는 현수막이 지저분하게 주렁주렁 달리고, 신청하는 방법과 시기를 안내하는 메시지가 스마트폰을 울리고 방송에서도 관련 보도가 끝없이 이어진다. 

“여보세요. 어머니, 제가 지금 경기도 도민으로 돼 있어요. 그러니 제 몫까지 꼭 받으세요. 곧 배부할 모양입니다.” 
“그러게 그런데, 언제 준 다냐?” 
“안내가 있겠죠.” 

3월 말에는 배부할 것처럼 보였지만, 4월을 넘겼고 심지어 5월이나 돼야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떠돌았다. 

“줄 거면, 빨리나 줄 것이지. 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래저래 따져서 주니. 원...”

다들 PC 앞에 앉으면, 직장인들조차도 긴급재난지원금 검색에 여념이 없었다.

“박 대리 얼마나 받아?” 
“그러게요. 검색하려 해도 접속이 안 되네요.” 
“에고 공돈 생긴다고 하니, 다 모니터 앞에서 재난지원금만 쳐다보고 있는 거구먼.” 
“그런가 봐요.”

“어머니, 알아보셨어요?” 
“주긴 준다는 거 같은데, 지금 가봐야 사람도 많고, 그렇다고 내가 인터넷을 알아서 신청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사람 많을 때 동에 가봐야 더 위험하니까 잠잠해 지면 움직이세요.”

국가에서 처음으로 돈을 준다는 말에 한껏 기대 부풀어 있지만, 부푼 기대를 채우는 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처음으로 시행하는 것이어서 시행착오가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겠지만, 신속하게 처리해서 최대한 신속하고 편리하게 국민이 사용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놈의 ‘처음’은 ‘코로나 19’ 때부터 시작해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곧 학생들 개학도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하니, 역시 처음이어서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예측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을 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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