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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32편: 어떤 택시 기사 이야기

조인 작가 승인 2020.09.06 20:16 의견 0

나이가 들면 몸이 달라진 걸 느낀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날 밤을 새워도 다음 날 크게 불편하지 않고, 몇 시간 꼬박 앉아서 일해도 무리했다는 느낌이 없다. 다만, 몸은 느낌보다 솔직하다. 

혈압이 올랐고, 체중이 늘었고, 잔병이 생겼다. 특히, 통풍이 생겼는데 발작할 때면 참지 못하고 새벽에 응급실을 찾게 된다. 얼마 전에도 새벽에 갑자기 발작해서 별짓을 다 하다가 세 시간 만에 병원에 갔다. 진통제를 투여하고 진통소염제를 들고 와서 집에 오자마자 먹었다. 한 반나절 고생한 후에야 조금씩 통증이 덜해졌고, 이후 병원을 찾아 진료받아야만 했다.

“겉으로 볼 때는 통풍이랑 관계없을 거 같은데요.” 
“벌써, 수년째 고생하고 있습니다.” 
“운동하세요?” 
“네. 운동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술, 담배는 드시죠?.”
“전 술 담배는 평생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간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일반적인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결국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시절부터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그런데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몸이 정신보다 정직하다고 밖에.

“어쨌든 일반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치료 방법이 잘 드니 통풍이 맞습니다.”
“네.”

‘일반적이지 않은 환자라? 도대체 일반적인 건 뭔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내가 오히려 일반적인 게 아닐까?’

진료를 받고 나오면서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불렀다. 화면을 보니 1분 이내에 도착한다고 뜬다. 택시가 도착했다. 우버가 아니라도 택시를 마음대로 부를 수 있다. 오히려 요금이 들쑥날쑥 한 우버보다 기본요금이 정해진 택시가 더 합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택시 기사가 환하게 맞아준다. 그러더니,

“요즘, 검찰 개혁 때문에 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택시 기사들이 다양한 언론 플레이에 관심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검찰 개혁’을 들이대니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검찰 개혁하면, 기사님 살림살이 나아지십니까? 차라리 최저시급이나 잘 준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하기야 그렇죠. 그런데, 최저시급은 잘 지켜지고 있지 않나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 주변에 있는 편의점, 그리고 다른 도시에 있는 편의점 몇 군데만 돌아도 그렇지 않은 걸 쉽게 알 수 있는데요.” 
“아닙니다. 제가 천 군데는 돌아서 확인한 것입니다.”

택시 기사가 거짓말을 한다. 굳이 잠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한테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거짓말 한 게 멋쩍었는지 과거 이야기를 한다.

“제가 경제학과를 나왔어요. 그리고 20년 넘게 대기업 노조에 있었고요.” 

답이 나왔다. 기사는 자기가 기사하고 있을 사람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느 기사와 다르다는 걸 보여 주려고 거짓말하는 것이다. 본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승객한테 지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가 속했던 노조는 노동자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 노동자 위에 있었던 조직이었음을. 노조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노조 위원의 추천이 있어야 가능한 게 현실이다. 노동자를 위한 조직이 어느새 노동자보다 자기들 이권을 위해 굴러가고 있다는 게 사실 아닌가?

“그런데, 왜 거짓말하세요? 천 군데 돌았다는 건 거짓말이잖아요?” 
“거짓말 아닙니다. 2천 군데는 돌았어요.” 

거짓말이 더 커진다. 여기서 간단히 산수를 해보자. 택시 기사가 하루에 몇 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시급 받는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근거리에 거주하는 사람일 테니, 택시 탈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2천 군데라고 했으니 하루에 한 명씩 만났다 치더라도 7년 정도는 꾸준히 만나야 한다. 그렇게 꾸준히 만났다 하더라도 기사가 “시급 제대로 받아요?”라고 질문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렇게 따져보면, 1주일에 한 명이나 될까? 그러면 기간이 일곱 배로 늘어나니 거의 50년 정도는 택시 운전을 해야만 한다. 혹, 일부러 시급 현황을 조사하고 싶어서 편의점과 식당에 가서 밥 먹으면서 물어봤다고 한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본인 운행루트에 있는 식당과 편의점 수준일 테니 인원이 크게 늘지 않는다. 

결론은 거짓말이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나는 평범한 기사가 아니야!’라는 쓸데없는 자존심의 발악인 셈이다. 

“제가 호남지역을 빼고는 다 일해봤어요!”

느닷없이 나한테 다양한 지역 경험을 운운한다. 

“저도 호남을 제외하고 제주도까지 다 일해봤습니다. 혹시, 제주도에서 일해 보셨다고 하니, 물어볼게요. 제주도 대졸자 초임이 얼마인 줄 아세요?” 
“허허. 모릅니다.” 
“최저시급이 안됩니다.” 
“그러면, 신고하면 될 텐데.” 

노조 간부로 살면서 일보다는 규정 등을 살폈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대접받으면, 그 아래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몇 마디 나눠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은 신고하고 싶어도 신고하기 힘든 사람들이 더 많다. 노동청에 가면, 약자 편을 들어준다고 들었다. 그러나 대체로 합의를 권한다. 물론, 받을 돈 받는 게 신고자들의 목적이어서 돈만 제대로 받을 수 있으면 신고를 철회한다. 

그러나 따져보면, 돈은 제대로 받는 게 당연하고, 신고했으니 위법상황에 맞는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못할까? 공무원들이 착해서? 아니다. 그렇게 하면, 대부분 소상공인이 영업을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한 건물주가 열심히 세금 신고를 했더란다. 그랬더니 어느 날 세무서에서 건물주를 불러서 한마디 했다.

“다른 데와 비슷하게 하세요. 혼자만 그렇게 하시면, 나머지 건물주들이 힘들어요.”

결론적으로 법을 잘 지키기보다는 불법적인 균형에 맞추라는 말이다. 법치 국가라는 무대 뒤 편에는 평등한 위법 국가가 존재한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이 말한 화려한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실상처럼.

택시 기사는 대기업 노조에 있었으니 하청 기업이나 소규모 기업의 상황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제발 거짓말하지 마세요!”

나는 정말 택시 기사의 거짓말에 화가 났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짜증 내면서 말했다. 그러면 그 입을 닫을 줄 알았다.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팩트로 가격해도 우기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아마 이 택시 기사는 계속 돌아다니면서 경제학과 나온 자신의 경력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난 대학 나온 사람이고 대기업 노조에 있었던 사람이야! 나 무시하지 마!’ 

택시 기사라고 해서 무시당하는 게 아니다. 그가 거짓말하기에,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진실이 잘못됐음에도 바로 잡으려 하지 않기에 신뢰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노조 시절이 그립고, 택시 기사가 볼품없다고 느껴졌으면, 택시 운전을 하지 않으면 됐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계속 일해야 하는 상황이니, 스스로 하찮게 여겼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노조 간부 역할도 별로 좋지 않았다.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 입장을 두둔하다가 결국, 쫓겨난 것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후반 부에는 직립보행(直立步行)하는 돼지가 등장한다. 네 발로 걷던 돼지들이 인간 흉내를 낸다. 원래 동물들이 단합해서 그들을 착취했던 인간을 쫓아낸 것인데, 인간 흉내를 내면서 새로운 착취자가 된 것이다. 노조가 타락하면 기업 간부 흉내 내는 돼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역사를 안다. 그 돼지들이 지배한 농장은 붕괴했다. 노조의 간부였던 택시 기사와 동물 농장의 돼지는 뭐가 다를까? 돼지는 직립해도 돼지며, 아무리 인간을 흉내 내려 해도 꿀꿀 소리 이외에는 나오는 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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