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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리칼럼(26)]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멘토리 권기효 대표의 로컬 청소년 이야기

권기효 멘토리 대표 승인 2020.10.28 15:05 | 최종 수정 2020.11.01 17:08 의견 0

부쩍 많은 분들께 “잘 지내니?”라는 연락을 많이 받습니다.

무슨 돈으로 돌아다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일은 계속 하고 있는 건지 등등. 저는 의외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올 초 계획한 일들을 과감하게 모두 접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할 일들에 대해 다시 하나씩 정리해보고 있어요. 아직도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진 점들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일들이 계속 작은 점들로 생겨나면서 선과 면이 만들어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너희는 비대면(온라인) 수업 준비 안하니?'

우선 용어 정리부터 필요 할 것 같아요. ‘비대면=온라인’ 인가요? 두 용어는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두 용어가 '만나서 하지 않는 수업'의 뜻으로 같이 사용 되고 있어요.

온라인의 세계가 보편화되고 확장되어 이제는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의 영역이 넓어졌다고 해서 오프라인의 영역이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호보완을 전제로 두 영역의 판이 더 커져야하는데 자꾸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양분해서 비중을 조절하는 것에 저는 불안함을 느낍니다.

멘토리의 핵심은 '관계'와 '연결'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고민하는 지점은 기존에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대체하거나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다른 기관들과 조금 다릅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비대면)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였기에 첫 단추부터 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과감하게 결정을 했어요. 이 결정에는 멘토리의 존재 이유인 청소년 크루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었습니다.

'관계를 더 강화합니다'

또래의 언니, 오빠, 형, 누나들과의 만남은 농산어촌 청소년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포인트를 더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1년에 22주라는 시간을 매주 만나는 것도 과하다는 것을 느꼈기에 진하게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첫 단추를 잘 만들어 컴팩트하게 줄이고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 할 것입니다.

이 방법이 '비대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으로도 얼굴을 마주하고, 집에 있는 백구도 인사하고, 기숙에 있는 룸메도 인사하고, 마이크 안 꺼서 라면 먹는 ASMR도 들려주고, 지각대장 기다리면서 흉도 보고...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얼굴보고 하는 것은 온라인 교안이나 프로세스로는 만들 수 없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이 관계를 만들기 위해 비대면이 아닌 대면의 방식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활용해 강화 할 것입니다. 그렇게 온라인의 영역이 커지는 만큼 오프라인의 영역도 키워보려고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화려함이 아닌 보통을 향합니다'

멘토리가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화려한 성과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능한 친구들을 선발해서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러면 "아니 애들이 그런 일을 해냈어?"라면서 우리는 유명해질 것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유능해지고 싶습니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잘 참여하고 싶었지만 주변인이 되어버린 친구들을 위해 ‘시스템’을 만들어, 보통의 친구들이 유능해 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안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다독여서 움직이게 하는 의지를 만드는 것까지는 하기 어렵지만,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주변인으로 남게 되는 친구들을 무대로 올라가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이제 충분히 가졌습니다.

타인을 유능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말이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유능해지고 싶습니다.

2020년의 하루는 그 어떤 해의 하루보다 길고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그만큼 저와 동료들은 더 단단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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