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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지않는창업] “용접 시편에 담은 희망” 금성정밀 최금남 대표

- 준비기간 6년 6개월, 차근차근 기술을 익히며 제조업 창업 준비
- 열정과 끈기로 창업멘토를 만나고, 발로 뛰는 영업과 온라인 병행으로 매출에 성공

윤준식 기자 승인 2022.05.03 17:53 | 최종 수정 2022.05.03 17:56 의견 0
최금남 대표 (사진: 윤준식 기자)


초롱초롱 강렬한 눈빛. 최금남 대표와 마주하면 느끼게 되는 첫인상이다. 2013년 한국에 온 새터민 출신의 최금남 대표가 지금과 같은 금속가공업을 하게 된 것, 틈새시장에 적합한 아이템을 찾아 빨리 자리를 잡게 된 것을 살펴보면 한국에 와서 만난 여러 가지 인연의 힘과 운명같은 이끌림도 작용했지만,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마음가짐이 이었기 때문이다.

“스마트스토어, 쿠팡에서 ‘금성시편’ 검색해 보시면 내가 이 분야 최고에요!”

‘시편(試片)’이란 “시험 분석에 쓰기 위하여 골라낸 광석이나 광물의 조각”이라는 뜻으로, 최금남 대표가 만들고 있는 용접 시편은 용접 기능사들의 시험재료로 쓰이는 철판 조각과 카본 파이프 조각이다.

이 비즈니스에 임하는 최 대표의 의지와 생각은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금성정밀> 스마트스토어 판매자 정보란의 “단가는 최저, 품질은 최상!”이라는 슬로건이 눈에 띈다. 다른 내용이 없어서 이 슬로건이 우선 눈이 띄는 것도 있지만, 누구나 최 대표와 대화를 해보고 나면 이 열 글자의 말이 던지는 의미가 묵직하게 다가올 것이다.

남쪽에서의 생활은 10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최금남 대표는 북에 있을 때도 금속을 다루는 일을 해왔다. 전차병으로 15년 가량 복무했고, 이후 몇 년 동안 공장에서 비행기 부품을 생산했다. 공장을 그만 두고선 구리 장사, 은 장사, 금 장사도 했다.

“쇠를 다루는 데는 남들에게 뒤지지 않아요. 24톤짜리 경땅크를 몰 때도 그 무거운 바퀴를 혼자 뗐다 붙였다 할 정도였는데, 요만한 파이프 쏠아 만드는 것쯤이야...”

용접용 시편 (사진: 윤준식 기자)

아내와 둘이서 운영하는 공장이라고 겸손하게 이야기하지만, 실제 공장을 들여다보면 규모와 장비를 보고 적잖이 놀라게 된다. 창업 후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지만 가내 수공업 형태의 수준은 훨씬 지나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공장의 티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기술이 있어도 제품을 만들어 내는 방법과 영업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잖아요? 단가를 산출해야 견적을 내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1년이 걸렸어요. 1년 만에 ‘이거 승산이 있구나’해서 여기다 공장을 지었어요.”

지금의 공장은 2번째 공장으로, 김해 안동에서 임시가설된 천막 2개로 된 공간에서 1년간 운영해보며 기초적인 경험을 쌓았다. 작년 8월 말에 지금의 자리에서 공장을 시작했으니, 자리를 잡는데 소요된 시간이 실제로는 2년 채 안 되는 셈이다. 최금남 대표의 창업 이야기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시편 작업 중인 최금남 대표 (사진: 윤준식 기자)

2013년, 목숨을 건 탈출 끝에 남쪽에 왔지만 한국 생활은 낯설고 막막했다. 횡단보도도 편의점도 마트도 그가 생활하던 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어느 누구도 안내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두렵고 안타까운 심정에 문 밖을 나서지도 못해 가족들과 끌어안고 밤새 울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장의 생계가 걸려있는 상황 속에서 그렇게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떨치고 일어나 거리로 나갔다. 처음에는 무작정 길을 따라 걸으면서 전주에 붙어있는 구인광고를 뒤졌다. 그러다가 문득 대중들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최 대표의 사정을 들은 목사님이 지역의 구의원을 연결시켜 주었다. 구의원에게 자신의 안타까움을 한참 토로했더니 이번에는 아파트 부녀회장을 소개받았다.

“부녀회장에게 ‘북한에서 왔는데 일가친척도 없고 일자리를 어떻게 구할지, 물건은 어떻게 사야할지 아무 것도 모른다’며 도와달라고 했더니 베어링을 생산하는 공장을 소개해줬어요. 거기서 자동화설비를 6년 다루며 경험을 쌓았어요.”

금성정밀 공장 내부 (사진: 윤준식 기자)

6년 동안의 회사생활은 지금의 사업을 위한 기초가 되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을 알고 적응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어떻게 돈을 벌고 쓰고, 저축은 어떻게 하고, 평생직업을 위한 계획은 어떻게 세울지 경제생활을 위한 기본을 다지는 시기였다. 그 결과 자신의 기술을 토대로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다.

따져보니 창업을 위해 배워야 할 일은 아직도 많았다. 우선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필요한 기술을 배우며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자리를 옮겨 NC 선반 프로그래밍, 펀칭과 플라즈마 절단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일했다. 하고자 하는 의욕이 강해서인지 3개월 만에 다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또 다른 업체로 옮겨 일하면서 CNC 선반 기술을 배웠다. 여기서도 3개월 만에 필요한 기술을 연마했다. 이렇게 총 6년 6개월... 최금남 대표가 창업을 준비하는데 걸린 노력의 시간이다.

그러나 기술을 익혔다고 해서 저절로 창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조업 창업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꾸준한 니즈가 있는 분야도 탐색해야 하고 무엇보다 상품화에 성공해야 한다.

다행히 좋은 멘토가 나타났다. 아내가 일하던 공장의 공장장과 인연이 연결되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먹어서 없어지는 쌀처럼, 용접 시편은 계속 없어지는 품목’이라며 창업아이템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었다.

다음으로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할 수 있도록 판로를 개척해야만 한다. 처음에 일을 찾을 때 했던 것처럼 발로 뛰며 매출처를 찾기 시작했다.

“6년 넘게 배운 기술로 시편 샘플을 만들어 석 달 동안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서울, 인천, 강원도를 돌았어요. 얼굴에 철판을 깔았죠. 직업학교, 기술학교, 대학을 샅샅이 훑으며 교장 선생님, 교수님, 강사님들을 만나 ‘용접 시편을 제조해서 판매하려고 하는데, 제가 만든 거 보시고 구매 부탁드립니다’ 이야기했죠.”

시편 작업 중인 최금남 대표 (사진: 윤준식 기자)


다행히 조금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내친 김에 교육을 받고 온라인 판매도 결심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쿠팡에 제품을 등록하고 판매를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은 스마트스토어 매출이 월 700만 원 규모에 달한다.

시편 제조와 판매가 이루어지며 공장이 안정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자, 다른 가공 업무도 착착 이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인천공항 확장공사와 수출하는 철강제품 등 450톤 물량에 달하는 가공을 선주문 받은 상태이기도 하다.

최근 영업과 제조로 바쁜 나날이 계속되고 있지만 최금남 대표는 미래를 향한 꿈을 새롭게 꾸고 있다.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왔지만, 북한이 열리는 날 다시 들어가 북한의 발전을 위해 제조업 공장을 설립하는 일이다. 남북한의 교류가 다시 활성화되는 날이 오면, 낙후된 상태의 북한을 개발하기 위해 건설업과 제조업의 활약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 예상해서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금성정밀>처럼 소재와 부품을 생산하는 작은 공장들이 많이 지어지고 운영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때문에소규모 제조업 창업의 성공 경험과 역량이 바람직한 선행사례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의 바램이 이루어지는 날이 속히 오길 함께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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