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공유경제 (sharing economy)(上)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76)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10.16 17:55 의견 0

‘공유경제’ 그 자체는 함께 나누는 경제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어떤 부분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각기 다른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필자가 사용하는 공유경제는 ‘Sharing economy이며, 이렇게 표기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눔이라는 언어가 주는 건 자선의 의미도 있지만, 실제로는 “내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더 크다. 성경에서는 모든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선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눔은 하나님 것을 공평하게 나누겠다는 신앙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공유경제는 초대 교회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혹은 ‘오병이어(五餠二漁)’의 정신이 바로 공유경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행전을 보면 모든 물품을 나눠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나눴다고 말한다. 필요 이상 사용하려 하고 몰래 축적하려고 했던 사람을 강하게 정죄한 걸 보면, 자원을 철저히 공유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적인 나눔은 각 지역으로 퍼져있는 디아스포라 교회와 연관됐다. 예를 들어 재정이 넉넉한 교회가 그렇지 못한 교회를 후원했다(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 나누어진 건 아니고, 물질적으로 후원한 교회가 좀 더 영향력이 컸다. 당연히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는 다른 디아스포라 교회와 비교할 때 우월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적 트렌드는 공유경제가 될 것이다. 이미, 특정 분야의 공유경제는 활성화됐다. 제러미 리프킨은 『한계비용제로 사회』에서 대부분 물품이 공유되어 비용이 거의 제로로 수렴되는 이상적인 경제민주화 시대를 예측했고, 이보다 앞서서 크리스 앤더슨은 『프리(Free)』에서 사실상 생산품의 제로 비용 사회를 전망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여전히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들고, 가끔 사치라도 할라치면 꽤 오랜 시간 동안 저축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공유경제가 활성화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까지 공유경제가 조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주민자치 센터 등에서 가정에서는 구비하기 힘든 공구들을 빌려주는 공유경제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공유경제 1.0은 사이비 공유경제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수익 대부분이 창업자 등 일부 소수에게 입금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태는 일확천금을 생각하는 흔히 말해 ‘로또’를 기대하는 창업자들을 무분별하게 등장하게 하고, 정부 예산도 이런 무익한 부분에 투입되는 현상도 적지 않다. 그 결과 창업 3년 이상을 버티는 스타트업의 비율은 30% 이하이며, 5년으로 기준 삼으면 10% 이하이다. 

성경에서는 공유경제 정신이 구약 시대부터 보이고, 초대 교회에서도 그 정신을 실현했다. 기독교가 억압받던 시절, 그 정신이 계속 유지되었다가 국교가 돼 권력과 부를 독점하자, 공유정신은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성경의 진리가 모든 게 교회 것으로 대체 된 것이다.

이후에는 오히려 기독교 정신이 자본주의의 태동에 영향을 주었다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윤리』와 같은 저작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특히, 칼뱅의 교리는 자본주의의 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칼뱅은 상인들이 믿을 수 있는 교리를 선보였고, 덕분에 ‘부’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본격적으로 인정받는다.

물론, 이들이 말한 자본주의 요소는 소비가 아니라 근면, 성실, 검소한 삶이었다. 덕분에 가난은 게으름의 결과였고,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구약 시대에 분명히 구제가 언급돼 있고, 희년이 존재하며, 신약에도 ‘연보(捐補)’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데도 종교개혁 이후에 기독교는 가난을 정죄한다. 신이 주신 소명에 충실하게 반응한 개인은 절대 가난할 수 없다는 환상이 등장한 것이다. 이제 가난은 죄가 됐다.

과거에 가난한 자와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는 말씀은 새롭게 해석된다. 즉, 성공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정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개인의 게으름이 탓이라는 인식의 토대를 제공한 것이다. 성경은 가난한 자를 죄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부자 나사로가 구원받지 못하고 거지 나사로가 천국에 올라가지 않았는가? 가난이 비록 개인의 게으름으로 인한 것일지라도 구제하지 않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레위기에 등장하는 ‘희년’이 공유와 관련한 대표적 성경적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故) 대천덕 신부가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전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희년과 관련한 서신을 종종 보냈다. 물론, 부동산을 중심으로 부(富)가 축적된 한국 사회에서 희년은 공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