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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댄스씨어터샤하르 창립20주년작, 창작발레 <레미제라블>이 전하는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

윤준식 기자 승인 2023.07.16 14:55 | 최종 수정 2023.07.17 18:27 의견 0
(댄스씨어터샤하르(DTS) 제공)


<댄스씨어터샤하르(DTS)>의 창작발레 <레미제라블>이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2023년 7월 13일부터 16일까지 공연됐다. 2020년 방방곡곡문화공감 사업을 통해 작품이 첫 공개되었으나 일부분만 공연된 데 그쳤고, 전막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역작 <레미제라블>은 작품이 소설로 출간된 1862년 이래 전세계에서 영화, 드라마, 뮤지컬, 만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와 재해석을 통해 여러 차례 리메이크된 작품이다. 방대한 저작물인 만큼 다양한 주인공들이 등장하지만, 그중 가장 극화하기 좋은 ‘장발장’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품의 내용이 알려지고 있다.

2023년 현재 기준으로는 1980년대에 초연되었던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가운데, 2012년 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 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영화의 파급력이 얼마나 컸던지, 다음해 겨울 공군이 제작한 <레 밀리터리블>이라는 패러디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지금의 세대에게는 빅토르 위고의 서사와 묘사로서의 <레미제라블>보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들로 기억되고 있는 작품이다.

보다 대중적이고 장소접근성이 편리한 영화의 성공은 대사가 없는 넌버벌 퍼포먼스 입장에서는 내용 전달에 큰 도움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에 묻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도달하지 못할 위험성도 있다. 사실 필자가 공연장을 찾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우려가 컸다. 120분 가량의 발레 공연을 통해 빅토르 위고의 메시지는 물론, 연출자가 전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을까? 관객은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러나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필자의 우려는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암전 속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 무대에 빛이 들어오자 무대 좌우측에는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어깨에 걸터 업은 장발장과 장발장을 겨누는 자베르가 대치한다. 이어 장면은 자베르와 장발장의 과거로 돌아간다.

배고픔을 못잊어 남의 식량을 훔친 죄로(당시 시대상으로 따져보면 장발장이 훔친 빵은 한 가족의 한달치 식량에 해당하는 큰 빵이다.) 복역하다 나온 장발장은 은촛대 2개를 훔쳤다가 자베르에게 잡힌다. 이때 미리암 신부가 보여준 용서의 행위로 장발장은 처벌을 피하게 되고, 이때 경험한 사랑으로 인해 새 사람이 된다.

장면은 바뀌어 불쌍한 여인 팡틴과 그의 딸 코제트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팡틴을 도우려는 장발장이 코제트를 찾아내는 것을 끝으로 1막이 끝난다. 2막의 내용은 독자 여러분이 상상하실 내용이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만남과 사랑,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시 조우하는 장발장과 자베르,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품 속에서 세상을 떠나는 장발장의 이야기로 극은 막을 내린다.

장발장과 코제트의 만남 (댄스씨어터샤하르(DTS) 제공)
돈만 밝히는 테나르디에 부부 (댄스씨어터샤하르(DTS) 제공)
팡틴과 동료 여공들 (댄스씨어터샤하르(DTS) 제공)
파리의 시민들 (댄스씨어터샤하르(DTS) 제공)

어찌보면 이런 흐름의 <레미제라블>은 이미 통속적일 대로 통속적이라, 눈물단지를 터뜨리는 신파조의 내용 전개에 빠질 우려가 크지만, 이번 공연은 그런 함정을 모두 피해간다. 발레와 무용에 대한 조예가 없는 관객들에게도 부담없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함께 온 가족들과 미소를 머금고 박수를 짝짝 치며 왁자지껄 즐길만한 무대를 선보여준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이번 무대가 펼쳐진 CJ토월극장 자체가 지닌 하드웨어의 조건도 좋았지만, 이를 충분히 이끌어낸 안무가의 연출이 더 훌륭하다. 무용수들의 연기가 눈 앞에서 펼쳐지도록 첫 장면은 오케스트라 좌석이 위치한 무대 가장 앞쪽에서 시작한다. 상하 엘리베이션이 가능한 특징을 이용해 센 강에 몸을 던지는 자베르 장면을 연출할 때는 앞쪽 무대가 움푹 꺼져 내려가며 강물에 빠지는 자베르, 이승과 저승의 강을 가로질러가는 자베르를 보여준다.

혁명의 혼란을 표현하는 장면은 깃발과 빨간 리본을 활용해 군무의 동선에 힘을 불어넣고 강한 긴장감을 연출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행위에 집중하게 했다. 특히 혁명의 도가니에서 희생되며 스러진 시민들의 주검 사이에서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구출해내는 장면에서는 과감히 무대가 무대 깊은 곳으로 이동하도록 해, 빠르게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보여주는 한편 기사회생하는 마리우스를 보여주며 적절히 긴장감을 해소시킨다.

코제트를 그리워하며 처연한 최후를 맞는 팡틴 (댄스씨어터샤하르(DTS) 제공)
혁명 속에 스러진 시민들 (댄스씨어터샤하르(DTS) 제공)
사랑하는 딸 코제트와 마리우스에게 안겨, 죄를 지을 수밖에 없던 연약한 인간이었던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며 천국을 소망하는 장발장 (댄스씨어터샤하르(DTS) 제공)


사실 연출의 묘는 역순행적으로 구성된 첫 장면과 클라이맥스의 장면이다. 첫 장면에서 보여준 자베르와 장발장의 대치가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다시 보여지고, 은촛대 2개를 장발장에게 건네 준 미리암 신부의 장면 또한 죽음이 임박한 장발장의 이야기 속에 재등장한다. 이렇게 역순행하는 2가지 장면을 통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에서도 보여주는 아가페 사랑과 신의 관점에서의 용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레미제라블> 외에도 <댄스씨어터샤하르(DTS)>는 지금까지 <사운드 오브 뮤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신 소공녀> 등 익히 알려진 작품들을 창작발레로 공연해 왔다. <로봇파파>, <크로키-지하철 1호선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 등 현대사회의 주제로도 작품을 만들어 왔다. 창립 20주년을 맞아 선보인 <레미제라블>을 이후로도 더 좋은 작품활동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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