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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in] 이미 두 세대, 한국라면 60년: 1인당 년간 73개, 5일에 하나씩 먹는 라면생활

라면이 변화시킨 라이프스타일

※ 다양한 인사이트를 담는 '윤준식 편집장의 view-in', 이번 회는 오래간만의 [라이프스타일 관찰노트]입니다.

윤준식 편집장 승인 2023.09.05 17:08 | 최종 수정 2023.09.05 17:14 의견 0

여러분 라면 많이 드시죠? 우리나라에서 라면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몇 년 됐는지 아시나요? 1963년 9월 15일 ‘삼양라면’ 출시가 우리나라 라면의 시작입니다. 사람으로 따지면 회갑을 맞이한 셈이죠.

원래 삼양식품 창업자 전중윤 회장은 1961년 삼양제유 주식회사를 설립해서 식용유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서울 남대문시장을 갔다가 꿀꿀이죽을 먹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꿀꿀이죽은 미군 부대에서 남겨진 식재료들을 섞어서 죽으로 끓인 건데 당시 돈으로 한 3원 정도에 팔았다고 그래요. 당시에 김치찌개가 30원 정도 하던 때였으니까 굉장히 저렴한 금액이었던 거죠.

1963년 9월 15일 출시된 최초의 삼양라면 (출처: 삼양식품 홈페이지)
삼양라면의 변천 (출처: 삼양식품 홈페이지)


◆구황작물을 대신한 대체식품으로 역할

다들 가난하고 배고프니까 위생적이지 않은 꿀꿀이죽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배고픔을 채워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식품을 만들겠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일본 산업 연수에서 봤던 인스턴트 라면을 떠올리게 됐어요. 그래서 라면을 도입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당시 라면 분야에서 제2위 기업이었다고 하는데, 일본 묘조식품(명성식품; 明星食品)의 오쿠이 기요스미 사장하고 인연이 닿게 됩니다. 오쿠이 사장은 전중윤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높게 평가해서 비법이나 다름없던 라면 제조 기술을 전수해주고 제조설비까지 지원해줬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나라 시대 상황을 보면 6.25 전쟁 끝나고 국토가 초토화돼 있었죠. 국토가 초토화되 다 보니 농업 생산량도 적었고, 전쟁 후 베이비붐이 일어나 인구도 급격하게 늘어나서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고 있었어요. 미국의 식량 원조로 대량의 밀이 들어오던 상황이었습니다.

주식이 쌀이었는데 쌀은 부족하고, 그런 상황 속에 밀가루가 들어오게 되니까 소위 분식이라고... 분식(粉食)은 원래 ‘가루 분(粉), 먹을 식(食)’이라고 가루음식을 말하는 건데, 당시 밀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밀가루를 사용한 음식을 분식이라고 하며 오늘날과 같이 말이 굳어지게 됐던 거죠. 여튼 당시는 분식을 장려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 때문에 라면이 급속도로 보급될 수 있었습니다.

◆라면의 원조는 어디?

그럼 라면의 원조는 어디일까요? 요즘 ‘라멘집’들이 많이 생기다보니 일본이 라면의 원조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으신데, 엄밀히 말하면 일본은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인 거고요. 일본 라멘의 기원은 19세기 일본 개항기 중국에서 건너온 국수를 원조라고 보고 있습니다.

일본도 2차 세계대전 속에 미군의 무제한 폭격을 당하면서 국토가 초토화가 됐었죠. 그러다 보니 전후의 일본도 식량 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는데요. 6.25 직후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당시 미군이 구호품으로 밀가루를 많이 제공했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밀가루를 이용한 새로운 식품을 고안하던 가운데 안도 모모후쿠라는 사람이 라면을 발명을 하게 됩니다. 지금 형태의 꼬불꼬불한 라면이 이때 등장하게 된 거죠.

국수를 빨리 익혀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하는 과정에서 국수를 기름에 튀기면 국수 안에 있는 수분이 증발되어, 나중에 튀겨진 국수를 뜨거운 물에다 넣을 경우 면이 익으며 수분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는 원리를 적용한 거라고 합니다.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8월 25일에 등장한 치킨 라면이라 합니다.

◆"라면 먹고 갈래?"

라면이 우리나라에 보급된 지 두 세대나 지나다 보니 의식주 라이프스타일, 생활 문화 속에 깊이있게 정착되어 있는데요. 라면을 소재로 한 유행어를 몇 가지나 알고 계시나요?

우선 가장 최근 가장 뜨겁게 사용되고 있는 유행어가 바로 “라면 먹고 갈래?”입니다. 이게 조금 요즘 청년들 표현으로 얘기하자면 ‘므흣한 느낌?’이죠. 약간 남녀상열지사까지 포함한, 뭐랄까... 이성을 유혹하는 그런 말이 되어버렸는데요.

원래 이 “라면 먹고 갈래?”는 2001년 개봉한 이영애, 유지태 주연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나왔던 대사에서 시작됐다고 그래요. 원래 차를 태워준 유지태에게 이영애가 아주 해맑게 “라면 먹을래요?”라고 하는 대사였는데요. 이게 개그나 예능 프로그램 등 대중문화 밈이 되면서 “라면 먹고 갈래?” 약간 좀 야릇한 느낌의 표현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따져보면 벌써 20년 된 거니까 일상어처럼 된 거지요.

마찬가지로 라면과 관련된 유행어는 한 번 만들어지면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져가는 것 같아요. 대부분 라면 광고의 문구가 유행어가 되는 경우인데요.

◆15세기 세종실록에도 기록된 스토리텔링이 라면으로

제가 되짚어보니까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혹시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는 라면 광고를 기억하시나요? 이게 기억나면 연식이 드러나는 건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튜브 검색하면 볼 수 있으니 연식과는 상관 없습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는 1975년에 나왔던 ‘농심라면’ 광고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코미디언 구봉서, 곽규석을 광고모델로 해 20초의 코미디로 연출했지만, 원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승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광고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 기록되었으니 600년 전의 이야기인데요.

요즘 백종원의 예산시장 프로젝트로 조명받고 있는 충남 예산군에 살았던 이상만, 이순 형제 이야기로, 교과서에도 실렸던 ‘의좋은 형제’의 사연입니다. 형은 “동생네 집에 쌀이 필요하겠지?”, 동생은 “형님네 집에 쌀에 필요하겠지”라며 몰래 쌀가마를 가져다 놨다는 아름다운 형제의 우애를 라면의 네이밍과 광고 카피에 담은 거죠.

농부의 마음이라고 ‘농심라면’ 광고로 딱이었는데, 이게 대박을 치면서 회사이름까지 농심으로 바꿔버리게 된 거죠. 원래는 농심의 전신은 롯데공업이었다고 합니다.

◆라면의 전환점: 짜파게티, 비빔면의 등장

다음으로는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입니다. 이것 덕분에 일요일 짜파게티 또는 라면 끓여 먹는 유행이 생겼습니다. 짜파게티가 1984년에 등장했으니까 지금도 39년째 판매 중인 장수 상품인 거죠.

또 이때 ‘팔도비빔면’도 나왔는데, 이 라면도 유행어를 만들었습니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두 손으로 비벼도 되잖아?” 이 광고도 대박을 쳤고, 지금까지도 가끔 사용되는 추억의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1984년에 나온 짜파게티와 팔도비빔면 덕분에 카레를 넣거나 스파게티 형태로 나오거나 하는 라면의 다양성이 커졌어요. 1963년에 출발한 라면의 역사를 놓고 보면 라면 생활이 20년 정도 정착되니, 라면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식문화가 넓게 확산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원조 일본을 넘어선 K-라면

이제 마지막으로 짚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라면이 원조인 일본을 넘어섰습니다. 이른바 K-라면 시대가 됐는데요. 우리나라에서 라면을 얼마만큼 수출하고 있을까요?

현재 K-라면은 135개국에 수출되고 있는데, 현재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라면만 1조 원 정도 규모가 된다고 그래요. 근데 해외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도 있어서 그것까지 추산하면은 2조 원 정도 규모라고 하니, 라면 산업 자체가 어마어마한 거죠.

당연히 가장 많이 수출되는 곳은 중국이겠죠. 인구가 많으니까요. 그 다음은 미국, 그다음에는 신기하게도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인 일본이 우리나라의 3위 수출국가입니다. 다음으로 필리핀, 태국, 대만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있고요. 요즘은 네덜란드, 호주, 영국과 같은 유럽계통 국가들이 10대 수출국 안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부대찌개에 라면사리 안 들어가면 서운하죠? (사진: 윤준식)


◆1인당 소비 세계 1위가 의미하는 것

다음으로 라면은 1인당 몇 개나 소비되고 있을까요? 라면 몇 개 드시는 거 같으세요? 우선 국가별 생산 규모부터 살펴볼게요. 국가별 생산량도 역시 인구가 많은 중국이 1위입니다. 1년에 440억 개를 생산한다고 하고요. 인도네시아, 베트남, 인도, 일본 순으로 이제 생산량 면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앞서고 있어요. 아무래도 소비량과 관련있는 인구구조와 관련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비량이 많습니다. 연간 38억 개로 소비량만 놓고 보면 세계 8위인데요. 1인당 소비량으로 놓고 보면 매우 높습니다. 1위는 베트남 88개고요, 한국은 2위로 73개, 의외로 일본은 소비량이 낮아요. 1인당 47개로 7위에 머무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1인 소비량이 1년에 73개라고 하는데, 이게 어마어마한 숫자거든요? 73개면 라면 두 상자 반 분량으로 굉장히 많아요. 1인당 73개면, 1년이 365일이니까 닷새에 하나씩 라면을 먹는다는 건데 그렇게 드시는 분은 없을 거에요. 요즘 먹을 것들이 많은데 라면만 끓여먹고 살지는 않잖아요?

근데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부대찌개, 김치찌개, 찌개와 전골류를 먹을 때 라면사리 넣잖아요? 떡볶이 메뉴도 ‘라볶이’같이 라면을 같이 넣는 경우들이 많죠. 그러다 보니까 라면만을 먹는 목적으로 소비되는 것 말고도 라면이 부가적인 메뉴가 되는 요리들이 그만큼 많다는 거죠. 라면이 도입된 지 60년, 두 세대의 세월을 거치며 다양한 방법으로 라면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라면 이야기는 꺼내자면 끝도 없습니다. 언젠가 또 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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