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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의 공유와 디아스포라(분산)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90)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11.18 14:25 의견 0

초대 교회는 사도행전에 나온다. 그리고 바울 서신서 전체가 초대 교회와 연관된 것이다. 시기적으로 AD50년에서 AD100년 사이에 작성된 것들이다. 물론, 후에 가감이 되었고 편집됐다고 하지만, 그 본질이 훼손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초대 교회는 모든 성도의 평등을 추구했다. 역할 구분은 있었지만, 생활의 평등(경제적 평등)을 추구했다. 모든 재산을 공유하고 필요한 만큼 나누어 사용했다. 예수의 제자들, 즉 사도들의 권위를 인정했는데, 시각에 따라서는 그들의 권위를 권력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의 모든 제자와 바울의 순교가 사실인데, 그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복음을 먼저 받아들인 자들이지만,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라는 말씀을 직접 들었다. 결론적으로 그들에게 지위의 고하(高下)는 큰 의미가 없었으며, 오히려 책임을 더 과중하게 느꼈을 것이다.

초대 교회의 특징은 우선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평등은 경제적 평등이 기본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들은 공동 재산을 권위나 지위에 따라 사용하지 않고 필요 수준에 따라 분배했다.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도 평등한 세상으로 수렴하기 위해서 발전된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을 보면, 이상적인 공유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도행전 초반부에는 아나니아와 그의 부인이 죽는 과정이 있다. 새로운 제도가 정착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와 같은 시행착오가 존재할 것이다. 당장, ‘승자독식’ 현상만 보더라도 새로운 시대의 폐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과 IMF에서 보고했듯이 신자유주의의 한계에 봉착한 세계는 애초부터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던 ‘낙수효과’에 대한 망상을 버리고‘포용 성장’의 길로 전환할 것을 요청했다. 부의 평등한 분배 없이 경제성장은 있을 수 없으며,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는 가운데 경제적 진보는 어려울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분산이다. 현재 정치·경제 시스템은 중앙집중적인 시스템이다. 모든 자원이 중앙에 집중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조직이 아니고서는 이끌어 나갈 수 없는 시스템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에서는 과거의 역사를 반추하면서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었던 국가의 특징 중 하나로 ‘중앙집권화’라는 요소를 제시한다(물론, 같은 책에서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포용’을 강조하고 있고, 약간의 우연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의 역사가 중앙집권적 체제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방 자치제가 시행되었다고 하지만, 강력한 권력은 여전히 중앙에 존재하고, 서울을 중심으로 ‘소용돌이’ 형태를 보인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은 이러한 중앙집권체제를 거부하고 분산, 그리고 민주화를 강조한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고 현재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세력이 진정으로 정치적 민주화와 포용 경제를 원하는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 교회는(개신교) 현재 분산되어 있다. 물론, 그 내부 조직은 중앙집권적이고, 당회 혹은 담임 목사에게 많은 권한이 위임돼있는 것이 사실이나, 한국 교회 전체를 볼 때 개(介)교회는 흩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역별로 노회도 있고, 교파별로 총회도 있지만, 교회는 개 교회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운용된다. 다시 말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분산이라는 특징을 실행하기 쉬운 단위로 조성돼있는 셈이다(단, 대형 교회는 분산의 개념과 어울리지 않는다).

공유경제의 역사적 기원을 찾아보면, 초대 교회에서 멈추게 될 것이다.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동 소유를 필요한 만큼 나눠서 사용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바로 그렇다. 필요한 것들은 생산물의 ‘한계비용제로’로 수렴한 상태에서 공유해서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디지털화한 모든 상품은 누구나 나눠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경제가 실제로 현실 속에서 춤추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정신이 중요하다. 한국 교회는 초대 교회 정신을 되살려서 그 바탕 위에 기술을 활용하면 된다. 마르크스는 물질에 방점을 뒀지만, 교회는 그 반대이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은 물질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한 시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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