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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그림자 긴장감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98)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12.06 15:50 의견 0

 앞에서 현재 교회 내 민주주의는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초대 교회의 성격은 분명,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서 합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교회 역시 초대 교회의 모습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양성도 마찬가지다. 교회 내부에서 다양성은 분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른 생각이 있어도 표출하기 힘들다. 물론, 일반 성도들은 그들의 성경적 지식과 제안하는 의견에 대한 성경적 레퍼런스가 부족해서 의견제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하는 말은 “순종하겠습니다.”이다.

순종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지, 자기와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이 목사일 수도 있고, 장로일 수도 있다. 목사와 장로가 다 맞는 것은 아니며, 다 맞을 수도 없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함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순종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표현하고 토론하는 것이 선을 이루어가는 방법이다. 어리기 때문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면, 그 다문 입을 벌릴 수 있을 때까지 교회에 남아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근대화 시기 한국 사회와 교회는 장년층의 경험과 권위가 정답처럼 여겨졌다. 왜냐하면, 후배들이 선배의 자취를 좇아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시대는 에스컬레이터와 같이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 혹은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3차 산업혁명 시대부터, 특히 IMF 이후 세대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처럼 친절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갈 수 없었고,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장으로 부동의 1위가 교사이다.

『늦어서 고마워』에서는 저자의 세대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직장을 찾는 것이 문제였지만, 자신의 자녀 세대는 졸업과 동시에 직업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위에서 끌어주고, 그런 끌어주는 힘을 받아 올라가던 시대에 다양성은 오히려 방해 요소였을 수도 있다. 시대의 정도(定道)가 있었으니, 다른 길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장년층은 청년층에게 ‘리버스 멘토링(reveres mentoring)’을 받아야 할 정도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지만, 스마트폰의 활용에 따라 스마트폰이 여전히 2G폰으로만 사용되기도 한다.

철저히 개인주의화 된 시대에 다양성을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문을 닫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수많은 사람의 의견을 다 받아주지는 못할망정, 순종을 빙자한 침묵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자. 초대 교회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였고, 기본적으로 평등을 강조했다(물론, 노예가 있었고 그들을 부리는 주인이 있었다). 물론, 에드먼드 버크와 같은 보수주의자는 다양성을 자연스러운 위계질서, 즉 다양한 계급의 존재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위계질서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혹, 구분이 있다면 직분으로 나누어져 있을 뿐이었다.

사도 바울은 각 은사에 대해 말하면서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이 초대 교회의 사상이었다. 평등은 곧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같다는 것이 바로 초대 교회의 제안이다. 다양한 구성원이 모이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줄타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줄타기를 사도 바울은 염려했고, 부정했다.

누가 더 잘난 것이 아니라면, A나 B의 의견은 둘 다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시기, 질투, 분쟁이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긴장감은 다양성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닌다.

과거 정도처럼 보였던 길이 있었던 시절에 공동체는 획일적이었다. 소수의 의견은 무시해도 괜찮았다. 솔직히 소수가 빠져나가도 금세 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통일을 강조했고, 다양성을 거부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공동체는 무지갯빛이어야 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다양한 구성원을 흡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리다고 무시해도 되는 시대가 아니다. 그들의 의견도 소중히 여기고 발전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 한다.

수많은 점이 연결되어 그물처럼 얽히고설킨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를 원한다면, 다양한 세대를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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