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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13)] 2월 혁명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2.23 09:00 의견 0

라스푸틴의 예언은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죽는다든가 너희들이 나를 추락하게 만들면, 6개월이 지나기 전에 너희들은 네 아들과 황제의 관도 잃게 될 것이다.”

“내가 없어지면 모든 것이 붕괴될 것이다.”

라스푸틴의 예언은 적중했다.

암살 후 8주만에 2월혁명이 발발했다. 10월에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볼셰비키 정권이 등장했다.

운명의 장난이라 할 수 있는 일은 드미트리 대공과 유스포프 공작은 암살 주역이었기 때문에 황제의 도시에서 혁명의 도시로 변하고 있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탓으로 황족 중, 혁명에서도 살아남은 몇 명이 안되는 행운아가 되었던 것이다. 제 명대로 살고 죽었던 로마노프 왕족들이다.

근년에 와서 영국 비밀 정보국이 라스푸틴을 살해하는 데 공모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영국 스코틀랜드 야드의 고위 수사관 출신인 컬른(Richard Cullen)이 현대적 수사기법으로 라스푸틴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밝혀낸 것이다.

라스푸틴이 독일제국과 러시아와의 개별 평화협정을 지지하고 또 그가 당시 대 독일전쟁 정책에 관해 니콜라이 2세를 통해 실제로 지휘봉을 쥐고 있었다고 파악했던 영국이 라스푸틴 제거 공작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만약 독일제국과 러시아가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동부전선에 투입된 35만 명의 독일제국 병력이 서부 전선에 이동 배치되는 상황으로 전환된다. 그렇게 되면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결정적으로 감소한다.

펠리스 유수포프의 대학동문으로 친구인 영국 비밀 정보부 요원인 레이너(Rayner)는 라스푸틴이 암살되었던 그 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레이너가 유수포프의 암살 음모를 미리 알았고 뉴스를 기다렸다고 했으며 암살 다음 날 유스포프는 레이너와 함께 식사를 했다고 했다.

영국의 BBC 다큐는 현대적 범죄 과학 수사 기법을 통한 증거에 의해 기존 유수포프의 진술에 입각한 라스푸틴 살해 사건의 버전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라스푸틴의 시체를 찍은 사진은 이마 중심부에 제3의 탄환에 의한 상처 부위를 보여주었다. 이 상처 부위는 전형적인 전문 킬러의 총격에 의한 상처로 분석되었다. 아주 근접한 거리에서 치명적인 확인 사살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공동 암살범으로 밝혀진 러시아 두마(의회) 의원 푸리쉬케비치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라스푸틴의 뒤에서 저격했고 이 이마 상처는 다른 총탄 상처로 확인 사살 상처였던 것이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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