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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17)] 녹음기록의 증언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3.09 09:30 의견 0

처참한 모습의 시체를 보았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근처에 가기를 꺼렸을 법하다. 그러나 네바 강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물통을 들고 와서 라스푸틴의 시체가 발견되었던 장소의 강물을 긷고 있는 기이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마치 인도의 힌두교들이 성스러운 갠지스 강의 물을 성수로 퍼가는 모습과 흡사했다.

많은 기적을 행했다는 소문의 주인공 라스푸틴의 시체가 있었던 자리의 강물에서 상트페트르부르크 소시민들은 신통력을 받고자 했던 것이다.

제정 러시아의 영토는 정말 광활하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주주의자 학생 가브릴로 프린시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드를 암살했다.

역사적 액운이라 할까. 그 다음 날인 6월 29일 일요일에는 치니야 구세바라고 불리는 한 여인으로부터 라스푸틴도 예리한 칼에 찔려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

내장 일부까지 상처를 입은 라스푸틴은 바로 수술을 받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기적같은 회생이었다.

라스푸틴의 친구 사조노프는 “만약 포크로프스코에에서 저격을 당하지 않았다면 라스푸틴은 러시아의 일차대전 참전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증언했다.

볼셰비키 정권은 러시아의 유럽 지역 내의 영토 4분의 1을 내주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1918년 2월)을 체결했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제정 러시아의 영토에 속했던 폴란드 및 발트 3국 영토, 우크라이나, 핀란드 지역까지 러시아 영토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볼셰비키 정권뿐만 아니라 모든 공산정권은 민족의 이익보다도 소위 ‘계급이익’, ‘종파적 집권 이익’을 더 중시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좌익적 본질은 한반도, 우리 정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18년 7월 16일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발생한 차르 가족 몰살은 유럽 역사상 최대의 왕족 살육 사건이었다. 살해 작전에 참여했던 소련 KGB의 전신 체카(Cheka 비밀정보국) 요원 그리고리 니쿨린(Grigori Nikulin)은 비밀로 보존돼 있었던 녹음 기록에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남겼다.

“모두가 바로 즉사하지 않았다. 작은 아이(황태자 알렉세이)는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겨냥해 총을 쏘았다.”

“왕위를 계승하는 친척이 당신들을 구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들 모두를 몰살시켜야 한다.”

집행 특수부대 대장인 야코브 유로브스키(Jakow Jurowski)는 죽음을 앞두고 엄청난 공포에 떨고 있는 니콜라이 2세의 가족에게 마지막 선고를 내렸다. 그 후 그는 말했다.

“우리는 위대한 큰일을 해냈다. 왕조를 절단냈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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