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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18)] 라스푸틴의 부활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3.10 09:30 의견 0

살해되기 전 여자 아이인 공주들은 성적으로 능욕까지 당했다는 증언도 남아 있다. 체키스트들은 야수나 다름없었다.

레닌은 엄중히 명령을 내려 이 살육에 대해 함구하고 모든 증거를 없앨 것을 지시했다.

공산통치 기간 어린이들까지 살해당했다는 어떤 발표도 없었고 또 어떻게 모든 니콜라이 2세 가족들이 죽게 되었는지도 비밀에 붙여졌다. 그러나 볼셰비키들은 그들의 악독한 본성에서 그러한 살육이 있었다는 것을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라 황후의 사촌인 독일제국의 빌헬름 2세는 니콜라이 2세와의 전쟁에서 주적이었지만 이 살육사건과 무관함을 밝히려고 애를 썼다. 1918년 당시 제왕 가족이 이렇게 혹독한 운명에 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빌헬름 2세도 전쟁의 후유증으로 발생했던 독일에서의 혁명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네덜란드로 망명해서 무사했고 외사촌인 영국 왕도 계속해 영국을 통치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전쟁을 시작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르 황제는 종전 후 황제에 걸맞은 모든 대접을 받으며 스위스로 퇴위해 물러갔다. 로마노프 왕가의 비참한 몰락과는 엄청나게 대비되는 것이다.

니콜라이 2세 가족의 몰락은 로마노프 왕가의 멸족을 의미했다. 레닌은 혹독했다. 시체조차 산성 화학 물질을 부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식별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 후 바로 이들의 시체는 숲속으로 싣고 가 파묻었다.

1979년 예카테린부르크 근처 숲 속에서 차르와 차르 가족들의 유골이 발견되었으나 공개되지 않았다. 소련 해체 직전인 1991년 7월 13일 유골은 수습되었다. 그 후 1년이 지나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의 유골임이 명백히 확인되었다.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참혹한 몰살 후 80년이 지난 바로 그날인 1998년 7월 16일 그 유골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베드로 바오로 교회에 모셔졌다.

2000년 8월 20일 니콜라이 2세는 황후와 아이들과 함께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에서 러시아 정교회에 의해 성인 서품을 받았다. 동시에 1100명의 순교자, 특히 소련 공산체제 하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성직자들도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을 그린 성화가 많은 러시아 정교 교회에 걸려 있다.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이 성인의 품위에 올라감과 함께 공산체제의 붕괴 후 라스푸틴은 러시아 민족주의적 흐름의 불가결한 한 요소로 되어가고 있다. 라스푸틴의 부활이 이루어진 것이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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