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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19)] 축제의 벌판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3.16 09:30 의견 0

러시아의 10월 혁명 100년을 맞아 공식 기념식은 없어지고 기원일조차 퇴색해 가고 있다.

‘성스러운 악마’라고 낙인 찍혔던 라스푸틴은 소련 해체 후의 러시아 인에게 이제 성스러운 예언자적 영적 스승으로, 레닌의 혁명은 레닌의 쿠데타가 되고 있으며, 성인 레닌은 피 묻은 살인마 레닌으로 그 정체가 드러났고, 소련 시절 자애로운 아버지로 여겨졌던 스탈린은 피에 굶주려 수천만 명을 살육한 괴물이 되어간다.

차르와 농민의 아들 라스푸틴은 러시아 정통 귀족주의의 변화된 문화와 러시아 정교의 신앙심의 토대와 이념을 지켜왔던 계승자로 다시 재평가되어 가고 있다.

이번 글에서 라스푸틴은 이 글 마지막 문장에만 등장한다. 오늘의 주제는 대참사 이야기다.

알렉산데르 3세가 사망(1894년 11월 1일)한 후 18개월의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1896년 5월 26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26세의 나이로 즉위식을 열었다. 차르의 즉위식은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 내에 있는 우스펜스키 성당(성모승천성당)에서 개최되는 전통에 따라 이곳에서 열렸다.

러시아 정교의 의식은 화려하다.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 황제이며 신의 은총에 의한 모든 러시아인의 전제군주임을 알리는 상징으로 왕관을 직접 머리에 올려 썼다.

니콜라이 2세의 즉위식 4일 후인 5월 30일 국민 축제가 모스크바 근처의 코딘카(Khodynka) 지역의 야외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이 야외 페스티벌 장소는 러시아 군 군사 훈련 장소로 사용되는 벌판이었다. 이 광활한 벌판은 깊이 약 3 미터, 길이 약 90미터의 참호가 곳곳에 파여져 있었다. 일차 대전까지의 전쟁은 보통 참호전으로 수행되었다. 그래서 군사 훈련을 위한 참호가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계획한 대로 진행되었다면, 오전 10시부터 40만 개의 황제 즉위 기념 선물이 축제에 참석한 러시아 국민들에게 배분되어야 했다. 황제 즉위 축하 선물은 식료품 한 꾸러미 등 여러 가지로 준비돼 있었다. 그 중에는 고급스러운 에나멜 세공으로 황제의 문장이 새겨진 ‘황제의 컵’도 포함돼 있었다.

150개 장소에서 뷔페 음식이 축제 참가자의 식사로 제공될 예정이었다. 10개 장소에 대형 임시 무대가 설치돼 음악과 연극도 공연되는 등 볼거리가 많은 축제가 러시아 국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TV가 없던 시절이라 모두들 축제 현장에서 공연을 보고 즐겁게 하루를 보내겠다는 기대 속에 설레임을 갖고 있었다.

점심식사가 끝날 시간인 오후 2시에 니콜라이 황제가 친히 이 축제의 장소에 나와서 러시아 국민들과 어울릴 예정이었다.

요새는 새로 출시되는 아이 폰을 사기 위해 며칠씩 매장 앞에 진을 치고 숙식하며 기다리는 모습이 TV에 뉴스로 보도된 적이 있다. 이와 같이, 모스크바와 그 인근의 러시아 사람들은 이미 하루 전에 이 축제의 벌판에 모여들었다. 누구든지 푸짐한 선물 보따리를 받을 생각에서 밤을 축제의 현장에서 보내고자 했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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