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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50년동안 고도를 기다린 고고와 디디를 찾아서 -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김혜령 기자 승인 2019.05.27 16:25 | 최종 수정 2019.07.17 11:34 의견 0

사무엘 베케트의 원작 <고도를 기다리며>가 한국 공연 50주년을 맞아 <명동예술극장>에서 연일 막을 올리고 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나무 아래에서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수많은 관객들과 함께 50년간 고도를 계속 기다려왔다. 그간 작은 소극장이었던 <산울림 극장>의 고정 레퍼토리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작품답게 커다란 나무 하나와 배우 다섯 명의 단촐한 무대가 넓은 명동예술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 '내일은 목을 매자' 다짐하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꽉끼는 신발을 벗어두고 돌아가지만, 왠지 두 사람의 뒷모습은 그리 쓸쓸하지 않다. ⓒ 국립극단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부조리극이란 ‘반(反)연극 기법’을 통해 왜곡된 상황을 전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기승전결 구조를 띠지 않고 극의 시작과 끝을 왜곡해 시공간이 현실성을 잃고, 극중 인물이 자신에게 주어진 고정된 성격을 잃는 등 연극 자체의 행위를 해체하는 부조리를 만드는 극을 말한다. 이러한 연극의 사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존재와 삶이 부조리하고 무질서하다는 것에서 착안해 등장했다.

극은 무엇이 시작인지도 모르게 시작된다. 암전된 무대에 빛이 들어오며 나무 앞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서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50년 동안 고도를 기다린다. 그들이 고도를 기다리던 곳에서 누구인지 모를 포조와 럭키가 나타난다. 옷차림이나 행색을 보아할 때 포조는 부유하고 힘있는 사람으로 추측되고 럭키는 포조의 종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 두 사람을 만나 하루를 보낸 두 사람은 고도가 보냈다고 말하는 아이를 통해 “고도 씨가 내일은 꼭 온다고 전해 달랬어요”라는 말을 듣고 절망한다.

극 중 의미 없는 대사들이 장시간 끊임없이 나열된다. 모자를 벗어 모자를 툭툭 털거나 신발을 벗어서 무언가 찾는 듯 보이는 행동들이 다소 난해하고 지루할 수 있는 극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 "생각을해라 이 돼지같은 놈아"포조의 하인으로 오랫동안 살아온 럭키는 모자를 쓰고 어느 연구서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낭독한다. ⓒ 국립극단


여전히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모습은 절망으로 가득하지만 그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과정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둘의 대화와 행동에 관객석은 온통 웃음으로 가득 찬다.

서로를 고고와 디디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마음속 깊이 기대며 함께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50년간 고도를 기다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던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 "고도씨가 내일은 꼭 온다고 전해달랬어요."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소년에게 "나를 만났다고만 전해라"라고 말하는 블라디미르의 목소리엔 어쩐지 처연함까지 느껴진다. ⓒ 국립극단


언뜻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사를 곱씹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민이 대사 곳곳에 숨어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에게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희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투영시킨다.

계속 투덜거리며 신발에 집착하는 에스트라공의 모습을 통해 삶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목을 맬까”하고 계속 이야기하지만, 막상 목을 매기엔 두려워 목을 매지 못하고 온갖 핑계를 대는 그들의 모습은 삶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현대인들과 맞닿아 있다.

올해로 3번째 관극과 3번째 리뷰를 해보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오지 않을 고도씨를 기다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 기다려지고 기대된다. 고도를 기다려오던 두 사람의 50년의 여정은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다. 6월 2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시사N라이프>의 <고도를 기다리며> 지난 리뷰들

[리뷰] "우리는 아직도 고도를 기다린다“

http://sisa-n.com/14681

[공연리뷰] 말장난으로 관객들의 철학적 사고를 자극하다 -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http://sisa-n.com/2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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